자수

자수

다른 표기 언어 embroidery , 刺繡

요약 직물 위에 수를 놓아 장식하는 기술. 자수는 고대로부터 시작해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세계에서 널리 사용되어 온 공예이다. 기본적인 기법에는 크루얼 자수, 프티푸엥, 크로스스티치 자수, 퀼팅, 깃털자수, 퀼 자수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길쌈·바느질이 존재했으며 신라시대 불교의 부흥 및 조선시대 관청수공업의 발달과 함께 번성했다.

목차

접기
  1. 개요
  2. 역사
  3. 한국의 자수
    1. 역사
    2. 기법
    3. 전승

개요

직물 위에 실이나 끈 등을 바늘과 같은 도구에 꿰어 수를 놓아 장식하는 기술. 기본적인 기법에는 크루얼 자수, 프티푸앵, 크로스스티치 자수, 퀼팅, 깃털자수, 퀼 자수 등이 있다.

역사

고대 이집트 무덤의 벽화에서 의복·의자덮개·걸개·천막 등이 자수로 장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이집트 미술). 고대 페르시아 때부터 있었던 퀼팅은 마라톤 전투(BC 490) 때 입었던 갑옷에 이용되었다(아케익기). 그리스의 병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BC 7~6세기와 그 이후의 그리스인들은 자수로 장식한 옷을 입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초기의 자수작품은 BC 5~3세기에 스키타이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비잔틴 제국은 330년에서 15세기에 이르기까지 호사스럽게 금으로 장식된 자수품을 만들었다(비잔틴 예술). 당(唐 : 618~907)나라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중국 자수들이 발굴되었으나, 현존하는 유명한 중국 자수들은 대부분 (淸 : 1644~1911)나라 황실의 비단 의상에서 볼 수 있다. 인도에서도 자수는 일찍이 사용되어 무굴 제국인 1556년부터 많은 작품들이 남아 있으며, 17세기말에서 18세기초까지 동인도무역회사를 통해 많은 양이 유럽으로 유입되었다. 또한 양식화된 식물과 꽃의 도안은 영국 자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네덜란드의 동인도제도에서도 17, 18세기에 견 자수품을 생산했다. 이슬람 국가인 페르시아에는 16, 17세기 이후의 자수품만이 남아 있는데, 그당시 〈코란〉에서 동식물의 생생한 형태 묘사를 금지했기 때문에 모양을 양식화하여 기하학적인 형태로 표현했다(이슬람 예술). 그러나 18세기 들어서는 여전히 형식적이긴 하지만 꽃·잎·줄기를 다소 실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18, 19세기에는 레슈트라고 불리는 일종의 패치워크가 생산되었다.

중동지역에서 20세기 전반에 생산된 자수 중에는 요르단에서 만들어진 여러 색깔의 농민 자수가 있다. 투르케스탄 서부에서 18, 19세기에 생산된 보하라 자수는 밝은 색의 꽃가지 무늬를 덮개에 수놓은 것이다. 터키에서는 16세기부터 금사와 색깔 있는 견직물을 이용하여 석류나무 같은 양식화된 소재로 정교한 자수를 놓았으며 특히 튤립을 소재로 한 것이 많다. 18, 19세기에 그리스의 여러 섬에서 생산된 기하학적 무늬의 많은 자수들은 지역마다 그 형태가 다르며, 특히 이오니아 및 스키로스 제도의 것은 터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북유럽의 자수는 르네상스 시대까지 주로 교회와 관련되었다. 현존하는 것으로 천사가 수놓인 케이프는 샤를마뉴 대제가 메스 대성당에 기증한 것으로 카롤링거 왕조의 자수를 대표한다. 10세기에 금실로 수놓은 성 커스버트의 영대(領帶)는 더럼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는데 현존하는 초기 영국 자수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11세기의 바이외 태피스트리는 사실은 영국에서 만들어진 노르만족의 자수품이다. 십자군을 통해 1쌍의 동물이 서로 마주보는 양식화된 사라센족의 도안이 전파되었고, 유럽에서는 비잔틴 양식의 영향에 힘입어 문장 자수를 만들어냈다(문장학). 안티오크의 약탈(1098)과 콘스탄티노플의 약탈(1204)은 자수품의 약탈을 낳았고, 이는 '속죄' 헌납으로 나중에 교회에 기증되었다. 이 시기 이후로 문장 자수는 조형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캔터베리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는 영국 에드워드 흑태자의 튜닉에 잘 나타나 있다.

영국 자수의 최전성기는 1100~1350년으로, 전유럽에 '영국 자수'(또는 오푸스 앙글리카눔)가 널리 알려졌다. 1561년 엘리자베스 1세는 브로더러사에 인가장을 내려 더욱 실용화시킴으로써 자수를 한 걸음 더 발전시켰다.

16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자수는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으며 장식 도안을 자수에 사용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 시기에는 자수가 전문직이라기보다는 비전문적 기술이었고, 17세기에 들어서면서 그 변화가 보다 뚜렷해졌다. 크루얼 자수 양식은 니들포인트나 캔버스 자수와 마찬가지로 대략 17세기부터 시작되었다. 바느질법과 도안을 기록하는 데 사용되었던 자수견본은 자수본 서적의 등장 이후에는 주로 장식용이 되었다.

17, 18세기 북아메리카의 자수는 도안이 단순하고 바느질법이 실을 절약하는 목적으로 변형되기도 했으나, 크루얼 자수 같은 유럽식 기술과 전통을 반영하고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는 자수견본이나 자수를 놓은 그림과 검은 테두리 그림들이 매우 유행했다. 19세기초 영국과 북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자수 형태는 베를린 모자수로 알려진 일종의 니들포인트였다(베를린 모자수). 후기의 양식은 미술공예운동에 영향을 받아 예술 자수가 되었으며, 거칠고 염색하지 않은 리넨 위에 수놓았다.

남아메리카 국가들의 자수는 스페인 자수의 영향을 받았다. 중앙 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진짜 깃털을 사용하는 깃털자수 양식을 발전시켰고, 북아메리카의 어떤 부족은 염색한 호저(豪猪)의 털로 가죽과 나무껍질에 수를 놓은 퀼 자수를 발전시켰다(아메리카 인디언). 자수는 또한 아프리카 서부의 대초원과 자이레에서 장식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한국의 자수

역사

한국의 자수는 길쌈·바느질 등과 함께 오랜 역사를 지니면서 발달해왔다. 기록에 의하면, 일찍이 삼국시대 이전부터 자수가 있었으며, 신라의 진덕왕은 손수 비단을 짜서 수를 놓았다고 한다. 또한 이 시대에는 불교가 크게 일어나 불상 및 불구를 장식하는 데도 금수(錦繡)가 쓰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 자수는 더욱 발달했는데, 불사용(佛事用) 자수가 번성함은 물론 왕실을 중심으로 한 귀족들의 복식과 부채·방석·안장덮개 등 생활용구에도 수장식이 곁들여졌다. 또한 이 시대에 감상자수가 등장하여 〈고려도경〉 등의 '수도'(繡圖)가 제작되었다.

이후 조선시대에는 관청수공업조직이 가장 발달했던 시기로서, 여러 가지 관련 공장조직(工匠組織) 외에 수방(繡房)의 조직이 있었다. 이들 공장조직과 수방의 상호 연관 아래 '궁수'(宮繡)의 기반이 마련되었고, 규범화한 양식과 고도의 기능에 의한 자수품이 제작되기에 이르렀다. 또 한편으로는 민간의 아녀자들 사이에서 '민수'(民繡)가 유행했는데, 정착화한 규범에 따라 제작되는 궁수에 비해 훨씬 개성있고 다양한 자수가 이루어졌다. 이 시대에도 역시 복식자수·생활자수·불교자수·감상자수 등이 성행했다. 특히 관직에 따라 다른 흉배와 십장생·화조 등을 소재로 한 병풍자수는 조선시대 자수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기법

한국 자수의 바탕천은 흰색 또는 청홍색의 비단이 가장 많이 쓰였다. 수실은 반푼사와 꼰사가 쓰였다. 주요기법으로는 자릿수·자련수(刺練繡)·평수·이음수·징검수·매듭수·사슬수 등이 사용되었다. 자수공정은 다음의 여섯 공정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원하는 바탕천과 색실, 밑그림을 준비한다. 둘째, 바탕천을 수틀에 고정시킨다. 셋째, 밑그림을 그린다. 넷째, 그림에 따라 수를 놓는다. 이때 겹수의 경우, 심을 넣는다. 다섯째, 수가 끝나면 수틀을 뒤집어 막대로 가볍게 쳐서 먼지를 턴 다음, 뒷면에 풀칠을 하여 실밥이 흩어지지 않게 한다. 여섯째, 그늘에서 말린 다음 수틀에서 뗀다.

전승

자수장은 1984년 중요무형문화재(지금의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로 지정되었고 기·예능보유자에 한상수(韓尙洙)·최유현(崔維賢)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