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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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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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북아메리카 원주민
  2. 중앙 아메리카 원주민
  3. 남아메리카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

에스키모와 알레우트족은 예외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의 조상은 아시아의 몽골 인종에 속하는 수렵민으로서 빙하시대말(약 2만~3만 5,000년 전) 베링 해협의 육교를 건너 북아메리카로 이주했으며, 불을 사용하고 개를 기르는 것이나 특수한 의식과 치료법 등의 문화적인 특징이 당시의 아시아 문화와 비슷했다. 구대륙의 다른 문화적인 특징들(예를 들면 목축, 특정 식물 경작, 바퀴와 쟁기의 이용)은 아메리카 대륙에 없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서로 약간의 문화적 차이가 있었다(원시문화). 북아메리카 서부, 그레이트플레인스 지역, 동부지역의 여러 고(古) 원주민 수렵사회는 환경의 차이가 있었음에도 생활은 비슷했다.

주요 식량원은 고기였으며 짐승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었다. 플라이스토세의 포유동물을 도살하는 데 이용했던 도살장 유적지에서 수렵사회 전통에 속한 고고학적인 유물들이 발굴되었다. 가장 독특한 형태의 발굴물 가운데 하나는 뉴멕시코 클로비스 부근 도살장 유적지에서 처음 발굴한 세로 홈이 팬 클로비스의 화살촉으로서 대략 BC 9000년의 것으로 추정된다.

작살 모양의 도구는 맘모스를 도살하는 데 이용했다. 사막문화 부족들은 오리건에서 멕시코 북부지역, 태평양 연안에서 로키 산맥 동쪽에 이르는 지금의 미국 서부지역 전체에 흩어져 있었다. 이들은 대부분 유랑생활을 하는 수렵채집민으로서 동굴이나 바위를 은신처로 삼고 살았다. 씨앗을 가는 데 이용한 맷돌과 같은 유물을 통해 원시농업 기술의 발달 정도를 알 수 있다.

동부 아케익기(Archaic)는 BC 8000~1500년에 지속되었다.

그레이트플레인스와 그레이트베이슨 지역의 춥고 습한 기후가 덥고 메마른 기후로 바뀌었기 때문에 플라이스토세의 동물이 멸종되었다. 사회 유형은 수렵채집생활로 바뀌어 BC 6000년 무렵에는 일반적으로 해안과 강가에서 살게 되었다. 후기 아케익기의 특징은 홈이 파인 돌도끼, 절구공이, 끌, 추 등과 같은 도구의 발달과, 서로 다른 지역의 부족들 사이에 교역제도가 발달한 것을 꼽을 수 있다.

아케익기(BC 8000~3000)에는 홈이 패이지 않은 플라노 화살촉을 써서 사냥했으며, 주요 사냥감은 들소였다. BC 3000~2000년(후기 플라노 시대)에 기후가 온화해짐으로써 일부 부족들은 목초지를 찾아가는 짐승들을 따라 서스캐처원과 앨버타로, 더 북쪽으로는 북극 툰드라 지대로 이주했다.

BC 2000년 무렵 미국 남서부의 여러 부족집단들은 옥수수 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나 원시농업이 원주민 문화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은 1세기 이후였다.

오하이오 강과 일리노이 강 유역의 경우 옥수수 농사는 발전된 호프웰 문화의 경제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BC 200~AD 200). 잉여자원은 특권을 지닌 특정집단의 부로 이용되었으며, 정교한 장례의식에 사용되기도 했다. 200~700년에 한랭기가 찾아오면서 농업발달이 위축되고 문화는 후퇴했다. 700~1200년 미시시피 강 유역에서 촌락 중심의 문화가 발달했는데, 발전된 농업방식과 복잡한 종교의식이 특징이었다.

종교의식에는 전문적인 제조소에서 만드는 의식용품이 사용되었고 사제조직이 의식을 주관했다.

아나사지·모고욘·호호캄 등은 푸에블로족 이전의 문화들로 700~1200년에 남서부지역 전체에 분포했다. 모고욘 문화의 농사기술(특히 작물에 물을 대기 위해 빗물과 시냇물을 이용한 것)은 아나사지 문화에 와서 더욱 개선되었다.

애리조나 남부지역 호호캄 문화는 관개를 이용해 농사를 지었다. 1100~1300년 건조기가 찾아옴으로써 문화발전이 멈추었으며 인구가 줄었다. 1000년 무렵 푸에블로 문화가 시작되었으며, 돌과 아도비 벽돌로 공동주택을 짓는 기술이 발달했다. 작물로는 섬유가 긴 목화와 여러 종류의 옥수수가 있었다.

푸에블로(Pueblo)
푸에블로(Pueblo)

고전 푸에블로 시기(Classic Pueblo period:1050~1300)는 건축기술과 도기제조기술이 크게 발달한 것이 특징이었다.

벼랑에 지은 1~4층으로 된 큰 공동주택에는 20~1,000개의 방이 있었으며, 고유한 지역적 양식의 다채색 도기가 생산되었다. 1300~1700년은 퇴행 푸에블로 시기(Regressive Pueblo period)에 해당한다. 부족들이 남쪽과 동쪽으로 이주한 동안에는 버려진 공동주택이 많았다. 근대 푸에블로 시기(Modern Pueblo period)는 1600년대말 스페인인들의 영구정착과 함께 시작되었다. 푸에블로 문화와 농사방법 가운데 일부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식민지시대 유럽 국가들이 시행한 북아메리카 원주민에 관한 공식적인 정책은 국가마다 달랐다.

스페인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을 그리스도교도로 개종해 지정된 지역으로 이주시키려 했으나, 프랑스인들은 주로 원주민과 교역관계를 맺는 데 관심이 있었다. 초기 영국 법은 불법으로 원주민 영토를 몰수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1763년 선언을 통해 애팔래치아 산맥 서부지역 전체를 아메리카 원주민 영토로 규정했다. 이 정책은 영국 지배가 끝날 때까지 지속되었으며, 뒤에 미국 정부에서도 채택하게 되었다. 지금의 캐나다를 생겨나게 한 1867년 영국령(領) 북아메리카 법에 따라 캐나다가 원주민과 그 영토에 관한 입법권을 독점하게 되었다.

1830년 원주민 이주법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강제 정책이 오랫동안 시행되었다.

1848년 캘리포니아에서 금이 발견되자 백인들이 서부를 향해 대규모로 이주했으며, 수많은 조약을 통해 서부 개척로 주변 영토에 대한 원주민의 권리는 무효화되었다. 1876년 수족과 샤이엔족의 커스터 학살을 포함해 무시무시한 전쟁이 여러 차례 잇따라 일어났다. 1887년까지 대부분의 원주민이 보호구역으로 이주했다. 1887년 도스 일반토지분배법에 따라 원주민은 약 34만 8,100㎢에 이르는 영토를 잃게 되었다. 1934년 인디언 재조직법(Indian Reorganization Act)에 따라 아메리카 원주민의 지위향상을 위한 사업계획이 확정되었다.

1950년대 이후 여러 가지 새로운 정책이 수립되고 시민권을 중시하는 분위기에 따라 원주민 단체들이 생겨났으며, 원주민 문제에 관한 미국민의 인식이 높아졌다.

중앙 아메리카 원주민

중앙 아메리카 원주민이 니카라과에서 멕시코 북부지역에 이르는 중앙 아메리카에 들어온 것은 1만 년 이전의 일이었다. BC 4500년 무렵 농사기술이 발전하게 되었다. 옥수수·콩과 같은 주요작물의 재배기술이 꾸준히 발전한 결과 BC 2000년 무렵 농경사회가 확립되었다. 그뒤 몇 세기 동안 식량공급이 안정됨에 따라 작은 규모의 마을이 큰 도시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도기 및 다른 여러 가지 기술이 발전했다.

1000년까지의 고전기 동안 마야와 같은 문명이 생겨났다. 마야족은 여러 가지 제의를 통해 결합했으며 사제계급의 지배를 받았다. 사제의 기능은 농사주기에 영향을 미쳐 풍년이 들도록 하는 데 있었다. 풍요의 신 틀랄록은 가장 중요한 신에 속했는데, 틀랄록의 상징 재규어는 현재까지 전해지는 조각품에서 주제로 등장한다. 후기 문화에서는 재규어가 더욱 호전적인 독수리로 바뀌었으며,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것이 일반적인 종교의식이 되었다. 중앙 아메리카의 종교국가들은 1000년 무렵부터 톨텍 제국과 아스텍 제국에 밀려났다. 이 두 제국은 스페인이 침략할 때까지 번영을 누리면서 영토를 확장했다. 또 절정기에는 아스텍 제국의 군사력이 중앙 아메리카 거의 전체를 지배할 정도였다.

초기 이주민으로부터 지역에 따라 여러 개로 분류할 수 있는 소(小)문화집단이 생겨났다. 지금의 멕시코 북서부지역 연안, 사막, 산악지대에 한 집단이 살았으며, 또다른 집단 타라스코족은 미초아칸 산맥에 정착했다. 마야족은 과테말라 여러 지역과 유카탄 반도, 멕시코 치아파스 등에 살았으며, 아스텍족은 멕시코 중부 고원과 지금의 멕시코 시 지역에 집중해 살았고, 멕시코 남부 연안과 고원 지역에 5번째 집단이 살았다.

중앙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는 소규모 사회를 구성하며 개별 가족이 기본 사회단위라는 특징을 갖고 있다. 남성과 연장자가 사회를 지배하며, 상속은 부계를 통해 이루어지지만, 부계와 모계 양쪽을 모두 인정한다. 공동체 활동은 농산물과 공예품을 교환하는 시장과 정치기구에 집중되어 있다.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은 종교적인 역할도 겸한다. 또한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지도자들이 마을을 대표한다. 주요 종교형태는 스페인인들이 전파한 로마 가톨릭이지만, 그리스도교 성인들에 대한 의식과 널리 퍼져 있는 애니미즘·미신·점술을 통해 옛 종교의식의 잔재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가톨릭과 아울러 유럽의 기계와 기술을 들여온 스페인의 정복은 옛 사회구조의 근본적인 변화를 알리는 신호였다. 식민지 정복 초기에 예수회에서 북서부지역에 특별 종교구역을 설치했으며, 다른 교파에서는 스페인 정부의 감독하에 개발된 '엔코미엔다'(encomiendas)에 정착했다. 그뒤 엔코미엔다가 해체되고 특별구역이 교회의 보호에서 벗어나게 되자 플렌테이션·목장·광산이 식민지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식민지 태생 스페인인들과 혼혈인들은 1821년 혁명을 통해 유럽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획득하고 새로운 공화국의 정책을 수립했다. 그뒤 산업화·상업화 시기 동안 원주민 사회는 경제적인 손실이 있었음에도 문화적인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점점 고립주의적으로 변해갔다.

멕시코에서는 그후 1910년 혁명을 통해 배타적인 사회·경제·정책이 폐지되었으며, 원주민의 정치적·문화적·경제적인 업적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앙 아메리카 원주민 문제 해결을 위해 중요한 계획들이 수립되었으며, 국민들은 멕시코 원주민의 예술과 전통에 관심을 기울였다. 과테말라에서도 비슷한 정책을 채택했으나 곧 폐지되고 말았다. 과테말라의 원주민 인구가 더 빨리 늘어났지만, 20세기 후반에는 과테말라보다 오히려 멕시코의 원주민이 도시와 농촌 사회에 더욱 완전하게 통합된 듯하다.

남아메리카 원주민

남아메리카 원주민
남아메리카 원주민

고고학적인 기록에 따르면, 남아메리카 문명은 BC 10000년 이후 언젠가 북아메리카와 중앙 아메리카에서 첫 이주민들이 들어오면서 시작되었다.

첫 이주민이었던 수렵채집민은 지금의 티에라델푸에고, 아르헨티나, 칠레 남부지역, 그란차코 중남부 평원지역, 안데스 중부지역에 정착했다. 그후 수렵채집민 사회는 훨씬 더 발전한 농경사회에 밀려났다. 이동 수렵민들은 작은 집단을 이루어 살았는데, 집단의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사냥감이 더 풍부한 지역이나 기후조건이 더 좋은 지역으로 자주 이주할 수 있었다. 열대림지대의 농경민과 마찬가지로 이들 수렵민은 친족관계에 바탕을 둔 집단을 이루었으며, 집단마다 연령과 성을 기준으로 서열을 결정했다.

그러나 브라질과 아라와크 연안, 대(大)앤틸리스 제도, 내륙 삼림지대 농경사회에서는 옥수수·콩 등 고유작물 재배에 성공하고 수렵도 함으로써 규모가 더 큰 규모의 안정된 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다.

수렵민 사회와 삼림지대 농경사회에서는 다른 미개사회와 마찬가지로 주변환경을 지배할 목적으로 주술의식을 거행하는 관습이 있었다. 카리브 해 인접지역과 안데스 북부지역 농민들은 군사적·종교적 지도력에 바탕을 둔 좀더 복잡한 형태의 사회조직을 발전시켰으며 그러한 사회조직은 기술적으로 훨씬 발전한 농업으로 유지되었다.

이 부족들 사이에서는 전쟁이 부족사회를 발전하게 하고, 노예와 희생의식의 제물을 제공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초보적인 중앙집권적 지배형태를 수립하고 주술에서 벗어나 마침내 초기단계의 종교로 이행한 것이 이들 사회와 삼림지대 농경사회를 구별짓는 큰 차이였다.

BC 2300년경 남아메리카 원주민 문화 가운데 가장 발전한 문화가 안데스 중부지역에 뿌리를 내린 뒤 수천 년 동안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켰다.

1000년 무렵부터 여러 왕국(치무·티아우아노코·잉카 왕국 등)이 생겨나 16세기초 스페인이 침략할 때까지 번영을 누렸다. 페루에서 칠레 북부지역에 걸쳐 영토를 확장했던 잉카 왕국에는 효율적인 관개시설이 갖추어져 있었고, 국가에서 관리하는 식량생산·저장·배급 제도가 발달해 있었기 때문에 제국의 절정기에는 거의 350만 명의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었다.

사회계층은 세습왕족에서부터 귀족과 장인계층, 평민인 농민 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잉카 문명의 가장 두드러진 발전은 관습에 따른 사회조직이 법률제도로 바뀐 것과 예술품, 특히 금속세공 분야에서 수준 높은 예술품이 생산된 것이다. 이들 4가지 사회문화 유형은 남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역사발전 단계와 일치한다. 획일적인 사회구조의 이동수렵민이 처음 들어온 이후 수천 년 동안 외부세계의 도움 없이 목축·농업 등 여러 분야에서 기술발전이 이루어짐으로써 점점 복잡한 사회구조가 생겨났으며, 중앙집권적인 정부와 엄격한 계급제도가 나타났다. 11세기 안데스 중부 여러 제국들은 BC 500년 무렵으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는 옛 지역 제국들의 원형이 최고로 발전한 형태였다.

16세기 유럽의 정복으로 인해 남아메리카 주민들의 전통문화가 파괴되면서 일부 부족이 거의 사멸했으며 대부분 완전히 식민화되었다.

가장 심하게 파괴된 문화는 주요항로 주변에 있던 사회였다. 한편 항로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사는 안데스 부족들 가운데 일부는 지금까지 고유문화를 보존해왔으며 인구도 꾸준히 증가해왔다. 그러나 잉카 제국의 농사풍습과 정치관습은 스페인식으로 완전히 바뀌었으며 종교도 로마 가톨릭에 밀려났다. 귀족과 장인계급은 어느 정도 식민지 계급구조 상층에 흡수된 반면, 원주민 농민들은 비천한 노예신분으로 떨어졌다.

착취가 덜한 지역에 남아 있는 일부 잉카족은 문화유산의 일부를 보존하는 동시에 현대산업 중심지와 경제적인 교류를 해왔다. 아라우칸인과 같은 다른 남아메리카 원주민은 19세기까지 스페인의 지배에 저항했으나, 그후 동화되거나 보호구역으로 이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