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족

잉카족

다른 표기 언어 Inca

요약 남아메리카 인디언.

1532년 스페인인들에게 정복될 때까지 태평양 연안과 안데스 산맥 고원지대를 따라 지금의 에콰도르 북부 국경지역에서 칠레 중부 마울레 강에 이르는 제국을 통치했다(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의 문명). 12세기에 쿠스코에 수도를 세웠고, 15세기초 정복을 시작해 100년 만에 약 1,200만 명에 이르는 안데스 산맥 주민들을 지배하게 되었다.

다른 안데스인과 마찬가지로 잉카 문명도 남아 있는 문서기록이 전혀 없다. 역사는 공식 직책이었던 '암송자'(暗誦者)를 통해 여러 세대 동안 보존되어온 구비전설(口碑傳說)과, 스페인 정복 이후 이를 바탕으로 구성한 문서기록을 통해 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따르면 잉카족의 기원지는 쿠스코 남쪽 약 24㎞ 지점에 있는 파카리탐푸 마을이었다.

잉카 왕조를 세운 망코 카팍이 부족을 이끌고 쿠스코에 정착한 이래 쿠스코는 잉카의 수도가 되었다. 안데스 산맥의 작은 지역들에 살던 다른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평온하게 살다가 14세기 4대 황제 마이타 카팍 시대부터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하여 이웃 부족들의 마을을 공격하고 약탈했으며, 공물을 거두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를 이어 카팍 유판키 시대에는 처음으로 쿠스코 계곡 너머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었으며, 8대 황제 비라코차 잉카 시대에는 정복한 마을에 수비대를 주둔시킴으로써 영구적인 정복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잉카 왕조시대는 비라코차 잉카의 아들 파차쿠티 잉카 유판키가 형 잉카 우르콘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1438년부터이다.

파차쿠티 잉카 유판키(1438~71)는 남쪽으로 티티카카 호 주변 저지대까지, 북쪽으로는 지금의 키토까지 정복했으며, 막강한 창카스족과 케추아족의 치무 왕국을 지배했다. 잉카족은 정복한 종족에서 차출된 상당수의 사람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게 했으며, 이를 통해 조직적인 반란을 어렵게 함으로써 정치적인 안정을 확보했다.

지방 총독은 제국의 기초를 이루는 노역세(勞役稅)를 거두는 책임을 졌는데, 노역세는 군대에 복무하거나 공공사업을 하거나 농업에 노역을 제공함으로써 지불할 수 있었다. 토파 잉카 유판키 황제(1471~93) 시대의 영토는 남쪽으로 칠레 중부에까지 이르렀으며, 페루 남부 연안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저항 세력의 기운도 완전히 꺾였다. 토파 잉카 유판키 황제가 죽은 뒤 왕위 계승을 위한 싸움이 일어났으며, 이 싸움에서 우아이나 카팍(1493~1525)이 승리하여 왕위를 계승했다.

우아이나 카팍은 북부 국경을 안카스마요 강까지 확장했으나 스페인인으로부터 감염된 전염병으로 죽었다. 우아이나 카팍이 죽자 다시 왕위 계승을 위한 싸움이 일어나 스페인인들이 페루에 도착한 1532년까지 계속되었고, 마침내 1535년 잉카 제국은 무너지고 말았다.

잉카 사회는 상당한 계층분화가 이루어져 있었다.

황제는 귀족 관료의 도움으로 통치했으며, 가혹하고 억압적인 권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뛰어나게 독창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기술과 건축이 상당히 발달해 있었다. 아직까지 안데스 산맥 전역에 관개시설·왕궁·신전·요새가 남아 있다. 농업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며, 주요작물은 옥수수·흰고구마·호박·토마토·땅콩·고추·코카·카사바·목화였으며, 기니피그·오리·라마·알파카·개를 길렀다. 라마 털과 면화를 의복재료로 썼으며, 집은 돌과 아도비 진흙으로 지었다.

남자는 모두 자신이 먹을 식량과 입을 옷을 생산했다. 잉카족은 제국 전역에 광대한 도로망을 건설했다. 도로망은 2개의 남북 종단로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나는 해안을 따라 약 3,600㎞ 뻗은 도로였고, 또 하나는 안데스 산맥을 따라서 내륙으로 나 있는 앞서와 비슷한 길이의 도로였다.

이밖에도 지역 전체를 연결하는 많은 교차로가 있었으며, 짧은 바위 터널과 덩굴로 지탱하는 상당수의 조교(弔橋)도 건설되어 있었다. 시설을 이용하는 것은 정부 업무와 군사적인 목적에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다. 잘 조직된 역마제도를 통해 하루 240㎞의 속도로 결승문자를 이용해 소식을 전했다. 역설적이게도 이 도로망 덕분에 스페인인들은 잉카 제국을 아주 쉽게 정복할 수 있었다. 종교는 애니미즘, 물신 숭배, 자연신 숭배의 여러 가지 특징이 혼합되어 있었다.

신들 가운데 태양신 인티가 가장 중요한 신이었으며, 창조신이자 문화영웅인 비라코차와 비의 신 아푸 일라푸도 있었다. 제국시대에 종교는 국가 종교로서 잘 조직되어 있었다. 정복한 종족에게 태양신 숭배와 제사를 강요했지만 토착종교도 허용했다. 종교의식에는 정교한 형태의 점술과, 인간과 동물을 희생제물로 바치는 의식 등이 있었다. 이런 종교제도들은 스페인 정복자들의 우상숭배 반대로 파괴되었다.

잉카족 후손은 케추아어를 쓰는 농민으로 현재 안데스 산맥에서 살고 있으며, 페루 인구 중 약 45%를 차지하고 있다(케추아족). 단순한 전통기술로 농사와 목축을 겸하고 있다.

농촌 취락형태로는 밭 한가운데 집을 지어 사는 경우와 거주 중심지 밖에 밭이 딸린 표준형 마을을 이루며 사는 경우, 그리고 두 유형을 결합한 형태 등 3가지가 있다. 도회지에서는 스페인인들과 아메리카 원주민 혼혈들이 모여 산다. 인디언 공동체는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으며, 교혼(交婚)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농사는 대부분 협동해서 짓는다. 종교는 로마 가톨릭의 일종으로, 이교적인 정령들과 신들의 체계가 가미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