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재론

실재론

다른 표기 언어 Realism , 實在論

요약 인간 인식의 대상이 인간의 지각이나 사고에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철학적 견해.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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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본질과 영역
  2. 서양 실재론의 역사
  3. 주요논점과 평가

대상의 독립적 존재를 의심하는 것은 일상적으로 보면 이상할는지 모르나 철학적으로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관념론자들은 이를테면 자주색은 마음 외부의 세계에 성질로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순수한 자줏빛 단색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어떤 상황에서는 열이 차갑게 느껴지고 회전이 진동으로 느껴진다. 결국 성질들은 관찰자의 마음이 대상에 부과한 것이다. 그렇다면 대상에게 남은 속성이란 무엇인가? 대상의 모든 성질이 정신적인 것이라면 그런 대상이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주장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실재론자들은 이 사항들을 감안하더라도 대상이 마음에서 독립하여 존재한다는 주장에는 어떤 의미가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인식론).

본질과 영역

실재론은 마음에서 독립하여 존재하는 것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근본적으로 '본성 실재론'과 '사물 실재론'으로 나뉜다. 본성 실재론에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사물 세계와는 구별되는 어떤 존재이다. 플라톤에서는 이 존재가 개별 사물들이 관여하는 형상(形相) 또는 이데아(예를 들어 인간됨·책상됨)이고 아리스토텔레스에서는 본질(to ti en einai[사물의 무엇임])이며 중세 실재론 또는 보편 실재론에서는 사물의 절대적·종적·유적 본성이다.

플라톤(Platon)
플라톤(Platon)

또 과학적 관찰에서 추상한 법칙이나 이론 모형일 수도 있다. 사물 실재론에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경험의 구체적·개별적 대상이고 이 대상은 우리가 보지 않을 때에도 언제나 주요속성을 가지고 있다. 고대와 중세의 철학이론은 실재론이든 개념론이든 유명론이든 대부분 개별적·감각적 사물의 독립적 존재를 인정한다. 이런 점에서 이 이론들은 모두 사물 실재론이다. 이 실재론도 여러 종류가 있을 수 있다. 상식 실재론은 세계의 외재성을 단순·명백하게 주어진 것으로 생각한다. 신(新)실재론은 외적 대상 자체를 마음이 파악하는 유일한 실재로 본다. 비판적 실재론은 대상을 이중화해서 마음이 직접 만나는 것은 외적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 대응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표상적 실재론은 이 대응물이 외적 대상의 표상이라고 여긴다.

이와 같이 실재론은 여러 종류가 있으므로 실재론에 대비되는 철학적 견해도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본질(또는 사물의 종적·유적 본성)이 이름 이외의 어떠한 실재도 갖지 않는다고 보는 유명론이나 그런 보편성이 마음속의 개념으로만 실재한다고 인정하는 개념론과 달리 실재론은 사물의 종적·유적 본성이 마음 바깥에 독자적으로 실재한다고 주장한다. 또 관념론과 달리 실재론은 감각대상과 그 성질의 존재가 사고에 대해 외적이라고 주장한다.

대상이 연결되지 않는 감각단편들의 사적(私的) 묶음이라고 보는 현상론감각론과 달리 실재론은 대상의 기초를 실재적인 통일적·지속적 실체에 둔다. 또 과학철학에서 과학법칙과 과학이론을 과학자가 자유로이 선택한 구성물 또는 실재를 묘사할 목적으로 고안한 구성물로 보는 협약론과 달리 실재론은 법칙과 이론이 실제로 대응하는 사물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서양 실재론의 역사

서양에서 'realism'이라는 용어는 19세기초에 처음 나타났지만 과거의 철학 전통에 대해서도 소급해서 적용되어왔다.

플라톤의 실재론에서 사물의 본성은 사물의 이데아(또는 형상)이며 감각적·개별적 사물보다 더 실재적인 존재를 갖는다. 물론 이 존재가 구체적·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관념적인 것이라는 점에서 플라톤의 철학은 관념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보편, 즉 종적·유적 본성은 독자적 실체성을 갖지 않고 마음속에서만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사물의 실재적 형상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는 '온건 실재론'이라 불린다.

중세초에는 보편 문제에 대한 접근이 논리학 분야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곧 신학적 주제를 포함하게 되었고 이것은 다시 형이상학적 연구와 결합되었다. 사물들의 본성 또는 공통 본질은 다음의 3가지 관점에서 음미되었다.

① 감각적 사물 속에 존재한다. ② 마음속에 존재한다. ③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존재한다. 캔터베리의 안셀무스기욤 드 샹포는 플라톤적 실재론을 주장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보편의 문제를 3가지로 정리하여 보편은 본질의 면에서는 개별 사물 앞에(ante rem) 있고 개념상으로는 사물 뒤에(post rem) 있으며 현실적으로는 사물의 속에(in rem) 있다고 주장했다. 후기 스콜라 철학에서는 여러 조류들이 뒤섞이면서 보편의 여러 유형, 각 유형의 지위 등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최초의 유명한 근세 철학자라 할 수 있는 르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공식은 방법적 사고의 뿌리를 사고 자체에 두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사고 밖의 물질세계에 철학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가가 문제로 제기된다. 데카르트와 영국의 경험론자 존 로크는 감각의 외적 기원을 인정했지만 철학적으로 철저하게 정당화하지는 않았다. 로크와 같은 시대의 인물인 니콜라 말브랑슈는 종교적 믿음이 외부세계를 보장한다고 보았다.

18세기 경험론자이자 관념론자인 조지 버클리는 성서의 감각적 우주 묘사에는 물질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므로 성서적 보장은 없다고 주장하고 인식 밖의 감각세계를 부정했다. 경험론의 절정에 이른 데이비드 에서는 인식 주체, 또는 영혼도 사라져버린다. 마음 또는 관념에서 시작해서는 외부세계의 존재를 철학적으로 정당화하기가 불가능하게 되자 토머스 리드를 비롯한 스코틀랜드 실재론자들과 18세기초의 프랑스 예수회원 클로드 뷔피에 등은 세계의 외적 존재를 받아들이는 동인(動因)을 상식에서 구했다.

20세기 전환기에 윌리엄 제임스, 버트런드 러셀, G. E. 무어 등은 칸트의 주관주의와 당시 지배적이던 관념론에 대해 반란을 일으켰다.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

20세기초 철학자들은 자기들의 사고방식을 관념론에 대비하여 실재론이라 불렀다. 1912년 컬럼비아대학교의 W. P. 몬터규와 하버드대학교의 랠프 바턴 페리 및 그밖의 몇몇 사람이 공동으로 〈신(新)실재론 The New Realism〉을 펴냈다. 신실재론은 인식되는 사물의 독립성을 옹호하면서 "인식이 일어날 때 마음 안에 또는 마음 앞에 놓여 있는 인식 내용은 인식되는 사물과 수적으로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인식론은 마음의 사적 경험을 초월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자아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 또 마음이 오류에 빠지는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난점도 있다. 또다른 실재론의 유형은 호르헤 산타야나 등이 저술한 〈비판적 실재론 시론 Essays in Critical Realism〉(1920)에서 제시되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신실재론의 일원론에 맞서 인식론적 이원론을 내세워 인식 속의 대상과 실재 속의 대상은 지각할 때 수적으로 둘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비판적 실재론자들은 직접적으로 주어진 대상을 존재가 아니라 본질로 보는 다수파와 존재로 보는 소수파로 분열되었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다시 표상적 실재론 학파와 직접적 실재론 학파가 구분되었다(표상론). 표상적 실재론은 인식이 직접 대면하는 것을 외부 대상의 정신적 표상이라고 여기는 데 반해 직접적 실재론은 인식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로 여긴다.

주요논점과 평가

여러 가지 이론적·실천적 이유에서 사람들은 실재라고 부르는 것과 단순히 인식의 산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분명히 구분하려고 한다. 보편·감각·지각·과학공식·법칙 등은 인식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발견된다.

인식론적 실재론자들은 이 확실한 출발점에서부터 이것들과 대등하거나 동일한 대상들이 마음 밖에 존재함을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모호한 절차인 것 같다. 실재론은 인식을 인식 자체에게 가장 현재적인 대상으로 여긴다. 즉 인간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자신의 사고과정을 더 친밀하게 알고 있다고 본다. 이런 출발점은 출구가 없다. 이로부터 도달하는 대상은 마음 속의 내적 산물이나 사건일 수밖에 없다. 이때문에 인식론적 실재론은 이미 오래 전부터 활발한 토론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도 계속되고 있는 플라톤적 전통에서는 사물의 본성과 관련된 실재론이 아직 살아 있다. 직접적 실재론의 시도도 이루어지고 있다. 과학 분야에서는 협약론에 대한 반대와 법칙이나 이론에 대해 단순히 도구적 지위만을 주는 것에 대한 반대가 아직도 중요한 논점이다. 또 전자현미경 등 현대 기기의 발전으로 과학적 구성물과 실재의 구조 사이의 대응을 시험할 가능성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 검증과정은 인식에서만 출발해서 실재에 도달하려는 시도라기보다는 오히려 실재와 사고의 비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