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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주거·군사·정치상의 목적을 가지고 선택된 지형과 거기에 설계된 방어적 구축물.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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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럽의 성
  2. 동양의 성
    1. 중국의 성
    2. 인도의 성
    3. 동남 아시아의 성
    4. 일본의 성
    5. 한국의 성

유럽의 성

유럽의 성은 서부 유럽에서 9세기부터 급속히 발달했다.

10세기 프랑스에서 건축한 요새들은 도랑으로 둘러싸인 언덕을 포함하고 있으며 블루아·소뮈르 지역에 있는 성처럼 요새 위에 성주의 강고한 성곽이 있었다. 나중에는 언덕 기슭에 성벽 사이사이로 여러 개의 뜰을 만들기도 했다(베일리). 11세기에는 '언덕과 외벽'의 성이라고 알려진 개인 소유의 요새들이 서부 유럽 전역에 널리 퍼졌다(언덕과 외벽의 성).

성벽의 두께는 성이 세워져 있는 자연적인 조건에 따라 달랐는데, 한 부지 내에서도 지점에 따라 그 두께를 달리했다.

성의 방벽이나 바깥벽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그 둘레에 몇 갈래의 해자(垓字:성 주위를 둘러싼 못)를 두었다. 성문 앞에는 해자를 가로질러 매단다리(도개교)가 설치되어 바깥에서 함부로 해자를 건너지 못하도록 성 안쪽에서 다리를 끌어내리거나 올렸다. 대개 성망루나 외벽을 세워 성문을 감시했으며, 통로에는 내리닫이 창살문, 성문, 돌출총안(돌이나 뜨거운 물을 쏟을 수 있는 구멍)을 두어 통로의 출입을 막았다.

내리닫이 창살문은 일반적으로 철판을 씌운 떡갈나무로 만들었는데, 출입할 때는 돌 문지방에서 들어올리고 막을 때는 도로 내려 닫았다. 총안(銃眼)은 2종류로, 하나는 통로 지붕에 구멍을 만들어 밀려오는 적들에게 탄환이나 돌을 퍼붇게 만들었고, 다른 하나는 성문과 코벨 사이로 튀어나와 있는 것으로 이곳에서 적들의 머리 위로 살상 무기들을 쏘거나 떨어뜨릴 수 있게 지었다.

언덕 기슭에 위치한 외벽은 처음에는 울타리로 둘레를 쳤다가 나중에는 성벽과 돌탑으로 둘러쌓았다.

거의 같은 시기에 서유럽에서 성채의 보다 밀집된 형태인 직4각형 형태의 아성이 세워졌다. 그 예로 프랑스 로슈에 있는 내성(內城:1020경)과 잉글랜드 로체스터에 있는 아성(牙城:1130경)을 들 수 있다(→ 샤토). 이런 내성이나 아성은 성의 요충지로서, 만약 포위 공격을 당하여 바깥 요새가 함락되면 전체 수비대가 이곳으로 퇴각해야 했고 따라서 방어시설 중에서 가장 튼튼하고 세심하게 건설된 부분이었다.

여기에는 우물도 있었고, 개인 거주지와 사무실, 서비스실까지 갖추어져 있었으며, 오랜 포위 공격에도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장비를 갖추고 있었다. 가끔 이 성채는 바깥의 방어시설과 연결지어 세우기도 하는데, 상황을 내다보면서 작전을 지휘할 수 있도록 외벽으로 향해 지어놓고 다른 쪽 면은 성에 이어진 벌판과 연결되어 도피로로 이용되기도 한다.

제3차 십자군 전쟁(1189~92)을 겪고 나자 새로운 성은 깎아지른 언덕 꼭대기에 세워졌으며, 성채 뒤로는 곧바로 낭떠러지였다. 주요 방어시설은 성으로 향한 길목에 집중 배치되었으며, 여기에는 종종 전방요새 방어선이 2~3개 선에 걸쳐 구축되었다. 홀과 가정집, 예배당 등의 거주시설은 모두 성벽 안의 뜰에 지었다. 아성(대체로 주거지는 없애고 마지막 방어선으로만 되어버린)은 이전의 것들보다 작아진 대신 보다 견고한 형태로 세워졌다.

화학무기의 사용이 15~16세기에 걸쳐 급속히 늘어나자, 군사용 시설도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1494년 이탈리아로 진군한 프랑스 군대는 총포를 사용하여 엄청난 속도로 성을 차례로 제압했다. 중세 성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현대적인 군사 요새의 시대가 열렸다. 모든 시설은 일정한 한 구역에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이 전유럽에 걸쳐 새로운 요새를 건설하는 지배적인 설계원리가 되었다. 새로운 요새의 나지막한 방벽은 보루와 철각보 위에 설치된 포와 대포로 둘러싸여 방어되었다.

새로운 군사용요새의 건설이 비록 급속하게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여러 해에 걸쳐 확대되었고, 마침내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군사용 건축과 가정용 건축은 완전히 분리되었다. 전자는 군주용 군사적 통제하에 있는 요새로 되었고, 후자는 요새화하지 않은 궁전이나 대저택, 장원, 프랑스식 저택 등으로 발달했다.

동양의 성

중국의 성

BC 2000년경 중국 황허 강[黃河] 유역에는 이미 성곽도시가 있었다.

중국에는 주거와 촌락을 방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오래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성곽도시와 도성이 일찍부터 발달했다. 중국의 성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하나는 성곽도시이고 또다른 하나는 순전히 군사시설물로서 모든 성채가 여기에 해당한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만리장성을 들 수 있다. 도성의 대표적인 것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주의 호경(鎬京), 진의 셴양[咸陽], 한의 장안(長安), 위의 뤄양[洛陽], 촉의 청두[成都], 오의 건업(建業), 수의 대흥(大興), 당의 장안, 송의 변, 원의 대도(大都), 명의 금릉(金陵), 청의 베이징[北京]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성내에는 일반민중의 집이 있고 왕의 궁성, 집무처인 황성, 왕의 개인적 거처인 이궁 등이 있었다. 주의 호경은 1면이 약 4㎞인 정4각형의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중앙에는 궁성이 있었다. 북위시대의 뤄양은 그 성벽의 주위가 약 35㎞였다. 당의 장안은 동서 약 10㎞, 남북 약 8㎞의 성벽에 둘러싸인 도시였다. 청의 도성인 북경은 내성(內城)과 외성(外成)으로 나누어져 그 총면적이 약 64㎢로서 여러 개의 성문이 있고 내부에는 궁성(자금성)과 황성이 있었다.

도성 방어의 주체는 성벽으로, 그 폭은 기저부가 5~10m, 상부는 2~5m 정도가 보통이었으나 청조 시대의 베이징 성벽은 부분적으로 기저부가 20m 이상되는 것도 있었다.

높이는 7~10m가 보통이나 난징·베이징의 경우는 20m에 이른다. 성벽의 위에는 보랑(步廊)이 설계되어 있어 흉벽(胸壁)이 있었으며 후대에 와서는 요소(要所)에 탑이 설치되었다. 성문은 통행을 위해 필요했으나 방어면에서는 약점이 되었으므로 노문형식(櫓門形式)이 많았다. 그중 규모가 큰 것은 5층 이상 되는 것도 있으며 측방탑(側防塔)을 설치하여 튼튼한 문이 되게 만들었다.

성문은 기본적으로 한 면을 바라보고 있었으며 삼문(三門)으로 되어 있었다. 옛날에는 성문 전면에 옹성이라는 성벽의 소곽(小郭)을 설치했다. 또 성문의 내벽에는 똑같은 방어벽을 만든 것도 있었다. 성벽을 구축할 때 사용된 재료로는 옛날에는 흙을 굳힌 것, 그뒤에는 햇볕에 말린 연와(煉瓦)나 구운 연와를 사용했다.

만리장성은 북방민족의 침입에 대비하여 중국의 북변에 세운 방책으로서 축성이 시작된 것은 BC 700년경부터였다.

만리장성
만리장성

진(秦)의 시황제(始皇帝:BC 247~210 재위) 때 완성되어 역대의 왕조에 의해 개축·수리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명대에 구축된 것으로서 진대의 장성은 현재보다 훨씬 더 북쪽에 있는 것이었다. 현존하는 장성의 총길이는 2,500m에 이르는데 세계 토목사상 최대의 구축물이라 할 수 있다. 고대의 장성은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명대의 장성은 돌과 연와로 외측을 쌓고 가운데는 흙으로 메운 것이다.

그 구조는 베이징 북쪽의 바다링[八達嶺] 부근에서 높이 약 9m, 기저부의 두께는 약 6.5~9m, 상부는 4m 정도이고 북쪽에 면한 흉벽이 있어 상부는 보랑으로 되어 있다. 120m 간격으로 누(樓)가 있으며 통행을 위해 요소에는 성문이 설치되어 있다.

인도의 성

인도는 BC 2500~1500년 인더스 강 유역에 인더스 문명이 흥성하여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등의 성곽도시가 번성했다.

이 문명권은 아리아인이 침입해오면서 쇠퇴했다. BC 1000년경 아리아인은 선주(先住)민족의 성곽도시와 성채를 공략하여 그 세력권을 전인도에 확대했다. 그뒤 인도는 소왕국으로 난립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입, 마우리아 조, 안드라 조, 굽타 조 등의 흥망이 거듭되었으며 북방과 서방으로부터 이민족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다. 11세기에 들어와 이슬람교도의 인도 침입으로 인도의 성곽도시와 성채는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았다.

현재 인도 각지에 남아 있는 성곽도시와 성채는 13~18세기에 건설된 구축물이다. 인도의 성은 성곽도시가 주종이며 천연의 지형을 이용하면서 인공적인 성벽과 보루에 의해 지켜지는 것이 많다. 인도 중부 데칸 고원에 있는 골콘다의 성은 길이 5㎞의 장원형(長圓形)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그 내측의 중심 가까운 곳에 2개의 성채가 있다.

골콘다 성은 다듬어진 돌로 만들어진 성벽과 보루를 유적으로 남겨놓고 있어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인도 성곽도시의 대표적인 예가 되고 있다. 델리 남쪽 아그라는 16세기 무굴 제국의 아크바르(1556~1605 재위)가 건축한 것으로서 성벽의 주위는 약 2㎞이며, 쟈므나 강에 면한 사다리꼴의 성곽도시로 성안의 동측에 크고 아름다운 왕궁이 있으며 그 성벽은 다듬어진 돌로 축조되어 있는데, 무굴 왕조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성벽에는 델리 문과 아마르신 문이 있다. 성문의 울타리는 티크재로 못이 박혀 있으며 성문 위에는 인도풍의 흉벽이 있다. 델리의 거리는 17세기 무굴 제국의 샤자한(1627~58 재위)이 구축한 성곽도시로, 그 성벽은 주위 12㎞에 이르고 그 내곽에 '라르기'라는 크고 아름다운 왕궁이 있다. 그외에도 인도 각지에는 많은 성곽도시와 성채의 유적이 남아 있다.

동남 아시아의 성

동남 아시아 제국에도 중국과 인도의 영향을 받은 성곽도시와 성채의 유적이 있지만 특히 유명한 것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의 성곽도시이다.

면적은 9㎢이고 길이가 12㎞에 이르는 성벽을 둘러싸고 그 주위에 폭 100m가량의 도랑이 있다. 9세기말에 완성된 이 도시는 14세기에 이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했지만, 19세기에 정글의 한가운데에서 재발견되어 그 특이한 구조로 인해 세계의 성곽 중에서도 중요한 유적이 되고 있다. 동남 아시아의 여러 나라는 16세기경부터 유럽의 식민지 경영이 시작되면서 각지에 유럽풍의 성채가 식민지 성채로서 건설되었다.

일본의 성

일본 성의 기원은 확실하지 않지만 삼국지의 기록을 보면 3세기 중엽에 성책을 건설한 기록이 있다.

7세기 무렵에 한국의 산성건축법이 전래되어 성책이 변경에 세워졌다. 지금도 현존하는 고오고이시[神籠石]는 한국의 도성과 매우 흡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나니와도성[難波都城]은 중국 당(唐)의 장안성을 최초로 모방한 도성이다. 중세에 들어와 몽골군의 내습을 방어하기 위해 해안에 장성식(長城式)의 석루를 건설하기도 했다. 근세에 들어와 성은 적의 내습을 막기 위한 본래의 목적 외에 정치·경제의 중심지로서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현재 일본의 대도시들은 그 당시 이런 성을 중심지로 삼아 그 주위에 생성된 부락들이다.

모모야마 시대[桃山時代]는 성 건축의 번성기이다.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1576년 아즈치[安土]의 비와 호[琵琶湖] 동쪽에 성채를 건설했다. 무로마치 시대[室町時代] 말기에 지방의 군정장관들은 2층의 망루와 수수한 주택을 갖춘 소규모의 성을 건설해왔다.

그러나 노부나가는 군사정권가로서 그의 권력을 과시하고 새로운 형태의 전투형 궁궐을 창조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아즈치 성을 건설했다. 이 성은 증강된 7층탑, 깊은 해자, 높은 석벽으로 둘러싸이고 공적·사적 목적에 사용된 주거지('궁궐'을 의미하는 '고덴'[御殿]으로 불림)로 구성되어 있었다. 성의 중심지가 되는 솟아오른 건물은 덴슈[天守:'중요한 탑'이라는 뜻]라고 불린다. 성 둘레에는 가신·상인·노동자의 주택이 사전에 설계된 계획에 따라 지어졌다. 그리하여 성 주위에 도시가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 도시를 조카마치[城下町]라고 불렀고 이 도시는 모모야마 시대와 이후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상업 및 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1583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오사카 성[大阪城]을 건축했고 이후 몇 개의 성을 건축했으며 그의 가신은 각자의 영지에 웅대한 성을 건축했다. 현재 덴슈를 간직하고 있는 성은 후쿠이 현[福井懸]위치한 마루오카 성[丸岡城](1576), 나가노 현[長野縣]의 마쓰모토[松本]에 있는 마쓰모토 성(1595), 아이치 현[愛知縣]의 이누야마[犬山]에 위치한 이누야마 성(1599), 구마모토 현[熊本縣]의 구마모토에 위치한 구마모토 성(1599), 기후 현[岐阜縣]의 히코네[彦根]에 위치한 히코네 성, 효고 현[兵庫縣]의 히메지[姬路]에 위치한 히메지 성, 시마네 현[島根縣]의 마쓰에[松江]에 위치한 마쓰에 성 등이다.

오사카 성
오사카 성

니조 성[二條城:1602 건설, 1626 재건설]만이 고덴[御殿]을 간직하고 있다.

한국의 성

한국의 성은 주로 성곽이며 그 성곽을 분류하면 도성·산성·행성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역사적으로 위만조선초의 왕검성(王儉城)과 백제의 위례성 등이 있으나 그 형태는 알 수 없다. 한국의 축성술(築城術)은 신라시대부터 발달하기 시작했으며 그 지방의 지형에 따라 독특하게 발달했다.→ 성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