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건축

인도건축

다른 표기 언어 Indian architecture , 印度建築

요약 인도·파키스탄 등지에서 형성·전개된 건축.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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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기본요소
    1. 개요
    2. 건축자재
    3. 아치와 돔
    4. 특별한 형식
    5. 문과 창
    6. 기둥
    7. 기술에 관한 문헌
  2. 초기 인도건축
  3. 힌두왕조시대의 인도건축
  4. 카슈미르 시대의 인도건축

넓은 뜻으로는 인도 문화권인 스리랑카, 인도차이나 반도 및 인도네시아의 불교·힌두교·자이나교 건축을 포함한다. 이슬람 왕조가 성립된 13세기 이후의 건축은 이슬람의 영향이 짙어 이슬람 건축으로 따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카주라호(Khajuraho)
카주라호(Khajuraho)

기본요소

개요

인도건축은 조각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는 고유의 건축에 기원을 두었지만 여러 시기에 걸쳐 외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베다의 제례의식에서는 조각상이나 사원이 필요없지만 비(非)베다적 신앙, 예를 들면 나가(뱀)·야차(夜叉 yaksha : 나무의 요정)·여신 등을 섬기는 제례의식에서는 신상을 모시는 항구적인 신전이나 목조사원이 있었던 것 같다. 힌두교의 공양에서는 꽃 공양을 받기 위한 제단이 필수적인 것이었는데 성수(聖樹) 밑에 있는 제단은 야차 차이티아(yaksha chaitya)라고 한다.

차이티아라는 말은 일종의 성스러운 곳을 뜻한다. 이보다 발전한 형태로, 간단한 지붕과 담장으로 둘러싼 공간 안에 제단이나 상징, 또는 조각상을 갖춘 곳은 신의 집을 뜻하는 데발라야·데바가라·아야타나 등으로 불린다.

건축자재

초기 인도건축은 거의 전부 목조였으며 그 여러 형식은 후세의 벽돌조나 석조건축물에도 충실하게 모방되었다.

돔, 볼트 천장, 맞배꼴 창, 차양, 기둥, 주름꼴 처마 등 여러 가지 형태는 목조 원형에서 발전한 것이다. 20세기 들어서까지도 토다족의 오두막집은 볼트 천장, 맞배꼴 벽이 있는 사원과 놀랄 만큼 비슷하다. 일부 인도건축은 1개의 커다란 바위로 만들어진 것도 있다. 신전건축의 경우, 큰 바위덩어리에 구멍을 뚫어 필요한 방을 만든다든가(그결과 건축물 내부만 생김) 또는 바깥쪽에서 바위를 깎아냄으로써 사원을 조각하는 방법을 썼다.

이 예로는 석굴사원으로서 주목할 만한 유적이 여러 개 남아 있다.

아치와 돔

이슬람 시대 이전에는 아치와 돔이 거의 제구실을 못한 것 같으나, 때때로 큰 바위 건축에 쓰였고 초기 부조에서도 볼 수 있다.

특별한 형식

불교와 자이나교 건축에 쓰인 특색 있는 형식으로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한국의 탑에 해당하는 스투파 또는 토프, 다가바로서, 고대 인도인의 분묘이다.

BC 2~1세기의 예를 보면, 돌을 쌓아 속을 메워 만든 스투파에 조각이 새겨 있고 주위에 담장(vedika)이 둘러져 있다. 스투파의 중요한 부분은 복발(覆鉢 anda, garbha)인데 속이 채워져 있다. 내부에 사리안치실을 둔 것도 있지만 일단 완성된 뒤에는 들어갈 수 없다. 불교 스투파의 초기 형식은 복발이 반구형이었지만 점차 더 높은 형식으로 발전했고, 아름다운 미얀마의 세다공 파야처럼 끝이 높고 뾰족한 모양까지 나왔다.

미얀마의 스투파 중에는 기단이 매우 높고 그 옆에 예배당이 있는 형식도 볼 수 있다. 또하나의 특색있는 형식은 측면 복도가 있고 안쪽에 반원형 성소를 배치한 차이티아(예배당)이다. 이 형식은 초기 불교 석굴의 차이티아 이래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초기 굽타 왕조시대나 이후 시대의 벽돌건축 또는 석조건축의 예에서도 볼 수 있다.

인도건축 특유의 형식으로는 천장이 뚫린 성수사원이 있다.

보통은 4각형 또는 원형의 열주(列柱) 홀과 회랑, 볼트 천장을 갖추고 있는데 천장 한가운데에 구멍이 뚫린 상태로 성스러운 나무를 둘러싸고 있다. 성수사원의 보기 10여 개가 불교 부조에 나타나 있다.

과 창

초기 건축의 출입문과 창은 목조형식을 재현하여 장식한 팀파눔(반원벽)을 위쪽에 두고 맞배꼴이나 파꽃 모양의 아치를 갖추고 있다.

스투파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탑문(塔門 torana)이 있다. 이 문은 한 개 혹은 여러 개(보통은 3개)의 틀(architrave)과 이를 지탱하는 수직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밖에도 부조에서 많은 예를 볼 수 있는데 산치의 유적이 가장 훌륭하다. 이와 똑같은 형식의 예를 석굴사원 또는 구축(構築) 사원의 출입구 벽면에 새겨진 부조로 확인할 수 있다(나시크 제3굴).

맞배창 또는 채광창(gavaksha, kudus)은 초기의 건축요소로서, 또 후기 건축장식으로 가장 특색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그 모양을 따라 '말굽형 아치'라고 부른다. 많은 경우 아치 양쪽 기둥 머리 부분 바로 위에 자리잡은 한 쌍의 마카라(괴상하게 생긴 물고기)의 입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마카라 문'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아치의 꼭대기 부분이 뾰족하게 솟아 전체적인 아치의 생김새는 파꽃 모양을 닮았다.

기둥

용도에 따라 두 종류가 있는데 그 하나는 외기둥(stambha)으로, 사원의 신에 걸맞는 상징을 갖고 있고, 또하나는 사원이나 세속건축의 구축적 기둥(khambha)이다.

갖가지 형태가 있는데 주신(柱身)은 목귀와, 8각형 단면에 이음매 없는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다. 주두(柱頭) 역시 다양하나 전형적인 초기 형태는 3부분으로 되어 있다. 하부는 연꽃을 거꾸로 세운 화관형, 중앙부는 등을 맞댄 4마리의 동물입상(보통은 사자나 수소), 상부는 구석에 작은 소용돌이 모양을 지닌 볼록한 사다리꼴이다. 하부 바깥쪽의 모서리가 둥글게 되어 있거나 때때로 홈이 팬 사다리꼴을 한 것도 자주 볼 수 있다.

성스러운 건축은 보통 담장 또는 벽(prakara)으로 둘러싸여 있다.

기둥에 납작하고 얇은 석판을 여러 장 포개 이은 벽은 베스나갈의 슝가 왕조시대 비슈누파의 한 신전에서 볼 수 있다. 초기 불교나 자이나교 건조물의 담장은 받침돌, 수직 기둥 등으로 이루어졌고 목조 건물의 형태를 기초로 했다.

기술에 관한 문헌

인도에는 건축에 관한 기술적 문헌인 '실파 샤스트라'가 매우 많았다.

이들 문헌의 일부는 굽타 시대 혹은 아주 오래 전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중세에 편찬된 것은 아직도 인도 건축가들의 지침이 되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쓰이는 건축방법에 관한 기술은 응용예술로서의 건축연구에 크게 공헌했다.

초기 인도건축

인더스 문명에서 굽타 시대(BC 2500경~AD 600경)까지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유적은 BC 3000년경의 모헨조다로·하라파 등지의 도시 유적이다.

이들 도시에서는 잘 구운 벽돌을 진흙이나 석고 모르타르를 써서 쌓아 건물을 지었다. 역청으로 안쪽 면의 틈새를 봉한 깊이 1.8m 이상의 배수구, 코르벨이 딸린 반원형 지붕을 갖춘 신성한 욕조가 있는 사원들, 그리고 배수시설을 갖춘 탄탄한 주택이나 가게도 있다.

바르후트·산치·아마라바티의 부조에 나타난 건축형식은 이미 마우리아 왕조 이전 몇 세기 동안 널리 쓰였다고 추정된다.

항아리 모양 기초를 갖춘 기둥으로 받치고 맞배꼴 벽 또는 아치형 벽으로 이어지는 반원통형 천장, 창이 달린 여러 층짜리 건물, 틈새가 벌어진 벽돌조 흉벽, 2겹으로 된 둥근 지붕이 있는 원형 신전, 기둥으로 받친 볼트 천장과 건물 내 법당을 갖춘 사원, 지붕이 없는 성수사원, 중정(中庭) 주변에 작은 방을 배치한 승원, 기단 위에 세운 스투파, 1개의 돌로 된 기둥, 그리고 벽이나 담장 등이 그것이다.

마우리아 왕조(BC 321~185)의 유적으로서 가장 일찍 발굴된 바라바르 언덕의 석굴사원은 아소카 왕 시대에 지은 것인데 당시의 석상 등과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세련된 것이다.

로마스 리시형 목조건축에서 유래한 석굴사원 입구의 정면은 경사진 기둥과 파꽃 모양의 아치, 피니얼(꼭대기 장식) 또는 곡선을 그린 들보 등을 갖추고 있다. 아소카 왕의 수도 파탈리푸트라(파트나)의 유적에서 발굴된 거대한 목조 성벽에서는 길이가 106m나 되는 넓은 목조 바닥, 거대한 상부구조를 받치기 위해 만들어졌을 일련의 목조기단, 80개의 세련된 기둥들이 늘어섰던 넓은 공간의 자취, 장대한 석조 주두, 아치에 쓰인 얇은 돌, 석조 돌출부 받침장식 등의 단편들이 발견되었다.

슝가·쿠샨·안드라 왕조(BC 185~AD 320) 건축의 뛰어난 면모는 바르후트·마투라·아마라바티의 여러 부조, 폐허가 된 건물이나 발굴된 차이티아, 그리고 승당(vihara)의 초석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당시의 유명한 석굴로는 바자의 차이티아, 비하라·카를리나·나시크 등지의 거대한 차이티아, 오리사의 우다야기리 및 칸다기리의 자이나교 승당이 있다. 스투파 중에서는 바르후트·산치·아마라바티에 있는 것이 유명하다(현존하는 것은 산치의 탑 뿐임). 한편 간다라 지방에서는 탁실라와 아프가니스탄(얼마 후에는 또 투르키스탄으로 퍼짐)을 중심으로 그리스-불교 양식의 조각으로 풍요롭게 장식된 스투파의 수많은 유적과 폐허가 된 비하라가 남아 있다.

스투파에는 문과 담장이 있다. 산치의 유적에서는 스투파의 온전한 문, 담장을 볼 수 있으며 아마라바티의 스투파(스투파 자체는 현지에 없음)나 담 등의 모습은 첸나이 박물관에 소장된 부조로 충분히 알 수 있다. 후세에 중국의 순례승들이 가끔 언급한 유명한 건물은 페샤와르 근처에 있는 카니슈카 탑이다.

중국인의 기록에 따르면 기단이 5층이고 높이는 45m, 목조 상부구조는 120m가 넘고, 25개의 구리로 만든 지붕을 얹은 철제 기둥은 27m가 넘었다.

굽타 왕조시대(320~600경)의 건축으로는 돌과 벽돌로 지은 불교건축 및 힌두교건축이 있는데 모두 특색이 있다. 산치의 소사원은 각 부분 상호간 균형잡힌 비례와 초기 굽타 시대의 특징을 지닌 장식을 예시하고 있다. 발굴된 사원 중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괄리오르 주(州) 우다야기리의 힌두교 석굴사원, 에롤라의 비슈바카르마 차이티아, 바그의 석굴사원이 있다.

또 남방에 있는 초기 차루키야 시대의 바다미·아이홀레·파타다카르 등 유적건축은 굽타 시대나 그보다 조금 뒤에 건립된 것이다. 450년경 건립된 라드칸 사원은 고대풍의 평판(平板)과 기둥을 늘어세운 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약 100년 뒤의 두르가 사원은 차이티아처럼 반원형 법당을 갖춘 형식인데 북방의 나가라형 시카라가 설치되어 있다. 매우 흥미로운 반원형 법당이 있는 벽돌조사원이 숄라푸르 지방의 테르 또는 키스토나 지방의 체자룰라에 남아 있다.

디오갈의 유적은 모두 석조이다.

비타르가온의 벽돌조 탑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란다의 승원은 5세기말 바라디티야가 창건했다. 현장(玄奘)은 여기서 높이 90m를 넘는 거대한 벽돌조 사원을 보았다. 부다가야 가까이에 있는 칸치의 커다란 힌두교 사원은 그 세부의 많은 부분이 승원과 비슷하다. 첨탑은 곡선을 이루고 있지만 굽타 시대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힌두왕조시대의 인도건축

굽타 시대 이래의 유적은 3개의 주요한 양식, 즉 북인도 양식(나가라 또는 인도아리아 양식), 중인도 양식(베사라 양식 즉 데칸 지방의 후기 차르티야, 호이샤라, 소랑키, 마이소르, 구자라트), 남인도 양식(드라비다 양식)으로 대별되며, 이밖에 카슈미르의 건축과 라지푸타나의 일반 건축이 독특한 지역적 특징을 지닌다.

북인도 양식은 곡선 윤곽의 라티나 시카라가 두드러진 특징이다. 시카라는 거듭 겹쳐진 주름 모양의 처마와 지붕을 포갠 여러 단으로 되어 있다. 시카라의 설계는 일반적으로 4각형인데 드물게는 원형인 것도 있다. 시카라의 꼭대기에는 세로로 홈이 팬 볼록한 거대한 바위, 곧 아말라사라카가 있다. 신도들의 집회실인 만다파에는 일반적으로 지붕은 없으나 기둥이 있다.

주두는 여러 종류의 볼록한 4각형, 또는 연꽃이나 잎이 넘쳐나는 모양인 단지 장식이 보인다.

석굴사원으로는 뭄바이 부근 엘레판타의 대(大)시바 신전처럼 둥근 아말라사라카 주두가 매우 특징적이다. 원래 북인도 양식인 나가라형이 남쪽까지 퍼져 바다미에는 반원형 법당을 갖춘 두르가 사원이 있다. 이곳에서부터는 북인도 양식과 남인도 양식의 두 양식을 모두 볼 수 있다. 오리사의 여러 건축은 8~13세기의 발전상을 보여준다. 부바네슈바라의 파라슈라메슈바라 사원, 링가라자 사원, 코나라크의 수리아 사원, 푸리의 자간나트 사원 등은 아름다움과 장엄함으로 유명하다.

분델칸드의 카주라호에는 950~1050년에 건립된 일군의 웅장한 사원들이 있다. 높은 기단 위로 솟은 본당이 수직선을 이루어 사찰의 높이를 한층 강조하는 효과를 낳는다. 이 사원들은 조각상으로 덮여 있는데 이 양식은 벵골과 분델칸드에서 시작해 라지푸타나로, 거기서 다시 펀자브(암부 및 카필코트), 캉그라, 쿨루(바이주나트·마스룰루·바자우라)까지 퍼졌다. 현존하는 북인도 양식 사원은 바라나시(베나레스)의 비슈베슈바라 사원, 괄리오르의 여러 유골당, 브린다반의 주갈 키소르 및 마단 모한이 있다. 또 공양을 바치는 법당이나 가트(강가의 목욕장)로는 아하루야 바이 왕비(1765~95)가 건립한 사원과 우물, 에롤라의 그리스타네슈바라 사원이 유명하다.

중인도 건축의 특징은 낮은 건물 높이, 넓은 평면, 별 모양 법당, 중앙 홀 주위에 배치한 3개의 법당, 낮은 피라미드꼴 탑, 정교하게 홈을 판 창, 여러 층으로 쌓아 풍부히 장식한 높은 기단, 그리고 일반적으로 장식이 지나치게 많은 점 등이다(중인도 양식). 달르와르 지방의 도다바사반타나, 마이소르의 도다가다바리·솜무나트부르·베룰르·바라가미·할레비드·슈라바나베르골라 등지의 자이나교의 사원들이 그 주된 보기이다.

바드나가르와 무데라에는 중요한 사원의 유적이 있다. 지방 양식의 현저한 특징은 키르티스탐바 곧 '영광의 탑'을 건립한 점이다. 가장 정교한 것은 치트와르 성에 있다. 라지푸타나의 아부 산에 있는 자이나교 사원들도 유명하다. 이 사원에는 넓은 열주 홀이 있다. 천장은 원형이며 전체가 흰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여기에 쓰인 석재는 아래쪽 평원에서 막대한 노력을 들여 날라온 것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대리석을 깊게 잘라 격자 모양으로 붙인 원형 천장인데 천장 가운데서 늘어뜨린 대리석 장식과 함께 '얼음이 어는 레이스'로 비유된다.

물론 13~19세기에 건립된 사원들이 모여 있는 길나르, 사토른자의 자이나교 사원도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일반 도시의 경우는 다보이, 진지바다에 잘 보존된 유적이 있다. 아마다바드의 후세 수도에 있는 건축물의 대부분은 이슬람 시대의 것이지만 모두 중인도 양식이며 지방의 기술자들이 지은 것이다.

다만 장식선반에 조각상을 두지 않도록 함으로써 이슬람적 용도에 맞게 했다.

남인도 양식은 끊임없이 발전했으므로 세부에 걸친 특색을 찾기는 곤란하나 탑의 각 층을 둘러싼 장중한 주름꼴 처마가 반복되어 생기는 탑이나 첨탑의 수평선이 두드러진 점은 북인도 양식과 매우 대조적이다.

각 층은 작은 정자풍의 건물(pancaram)이나 지붕창으로 장식했다. 많은 경우 벽에는 장식이 없고 폭이 좁은 기둥들이 늘어서 있을 뿐이지만 양식이 발전함에 따라 서서히 공들인 건축이 되어갔다. 기둥은 처음에는 단면이 다각형이었고 주초 부분에는 사자상을, 주두에는 얇고 납작한 머리판과 둥근 돌출부 받침장식을 놓았는데 나중에는 주두에 항아리에서 흘러내린 연꽃 모양을 두게 되었다.

지붕은 항상 4각형·원형·다각형의 돔(stupika)이나 등을 볼트를 올렸는데 '코끼리 등'(gajaprstha)이라고 불린다. 사원은 모두 높은 벽이나 4개의 문(gopura)을 지닌 담장으로 둘러쳤는데 때로는 마투라의 경우처럼 영내를 신성한 사원도시로 꾸미기도 했다.

남인도 양식의 초기 형태(팔라바, 초기 西찰루키아, 초기 팡디아)는 남부 마하발리푸람 및 칸치푸람의 팔라바 왕조시대의 여러 사원과 서부 바다미, 아이홀레, 파타드칼의 초기 찰루키아 왕조시대 사원에 잘 나타나 있다. 초기의 유적은 운다바라의 석굴사원이 있으며 이후 마하발리푸람에 있는 7기의 탑이나 7세기의 석굴사원이 모습을 보였다.

8세기에는 칸치푸람의 구축사원이나 마하발리푸람의 해안사원이 나타났고 나중에 서서히 촐라 시대의 양식으로 옮아갔다.

서부에는 바다미와 아이홀레에 6개의 석굴사원이 있고 그중 2개는 자이나교 석굴, 나머지 4개는 힌두교 석굴이다. 에롤라의 카일라사나타 석굴사원은 언덕 측면에 지어졌고 구축적인 사원의 완전한 양식을 갖추고 있다. 800년경 건립한 난디의 보가난디슈바라 사원은 라슈트라쿠타 왕조 때 지은 남인도 양식 건물의 또하나 중요한 예이다.

촐라 시대(907~1150경)에는 중앙사원의 탑에 전형적으로 나타나 있듯이 주름꼴 처마가 있는 층계가 반복되어 탑이 높아졌다.

왕조의 중심지 탄자부르와 강가이콘다푸람에 있는 11세기 초기의 대(大)비마나가 그 예이다. 팡디아 시대(1251~1310)의 특색은 고푸라가 발달한 것이다. 돌로 된 낮은 단과 벽돌조 상부구조가 있고 그 상부는 회반죽칠을 한 벽돌과 채색한 회반죽 상으로 덮여 있다. 이들 문은 고층건물 같은 외관이어서, 본당이 매우 작게 보일 정도이다.

남인도 양식 후기에는 기둥이 늘어선 넓은 마당(mandapam)이 발전한 것이 특징이다.

큰 바위가 여러 개 놓여 있는 가운데 정교한 돌출부 받침장식을 갖추었다. 이 받침장식은 얄리(괴물의 이름)나 뒷발로 선 말을 타고 표적을 공격하는 기사, 무희, 여러 신(神), 창설자의 초상 등을 나타냈다.

초기 일련의 건축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비자나갈·아바다이야르·코이르·타드파트리 등지의 대신전이다. 후기의 건축으로는 17세기에 세운 마투라이의 나야크 왕조시대 대건축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카슈미르 시대의 인도건축

쿠샨 제국의 속령이었다가 나중에 독립 왕국이 된 카슈미르에서는 8~13세기에 고유의 특성을 지닌 건축이 융성했다. 뾰족한 피라미드꼴 2겹 지붕, 3꽃잎 장식이 있는 맞배꼴 벽, 빛이 통하는 천장, 도리아식 혹은 이오니아식 주두에 세로홈을 판 기둥, 넓은 주랑은 매우 특징적이다. 파리하사프라에는 이중기단과 사방에 돌계단이 있는 대규모 불교 스투파가 있다.

대사원도 있는데 주춧돌 하나가 4.26×3.64×1.82㎥나 된다. 마르탄드에 있는 태양사원의 안마당은 약 67×43㎡나 되고 잠무에 있는 판도라쿤드 사원의 안마당은 약 58×43㎡나 된다. 이들과 비슷한 건축형식은 펀자브의 말로트나 카시아와르의 고프 등의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차이티아의 단면에서 파생된 3엽형 아치는 카슈미르의 중요한 건축양식인데 사르나트나 실푸르 등의 지역에서도 볼 수 있다.

15세기 이래 라지푸트에 전해오는 20~30여 군데의 왕궁, 여러 개의 도시나 가트는 한층 웅대하고 아름다운 세속건축인데 17세기 이슬람의 궁전만큼 복잡한 장식은 아니며 오히려 기념비적인 위엄을 갖추고 있다.

초기의 궁전은 치트와르나 괄리오르에 잘 보존되어 있다. 괄리오르의 궁전(15~17세기)은 꼭대기가 편평한 언덕의 한쪽 끝에 당당히 솟아 있다. 여러 개의 커다란 문이 있으며 이 문들이 궁전으로 통하는 길과 언덕 기슭에 있는 구자리 마하루라는 작은 궁전을 지키고 있다.

다티아와 오르차에 있는 비르 신 디오 왕의 17세기 궁전도 마찬가지로 웅장하다. 암무벨의 궁전과 아지메르 호숫가의 대리석 별궁은 무굴 제국의 건축과 매우 흡사하다. 우다이푸르 마을 전체, 궁전, 별궁(1600경~1740경)은 낭만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17세기 조드푸르 궁전은 마을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서 있는데 대규모의 요새가 이 궁전을 방비하고 있다. 자이푸르의 현대적인 마을, 바라나시의 가트(주로 18세기 건축), 마헤슈와르나 우자인의 가트, 브란드샤르나 마투라 등의 현대건축 등 여러 도시에 세워진 라지푸트 제후의 기념비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