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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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원래 샤토는 봉건적 지역공동체였으나 장원제가 약화된 후 요새 기능을 갖춘 개인저택으로 많이 지어졌다. 벽은 두껍고 창문은 작으며 공격에 맞설 수 있도록 총안을 냈다. 샤토는 주로 바위절벽에 건설되었으며, 성곽 둘레 해자 위의 도개교를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다.
15세기에는 화려한 전원주택으로 변모하여 귀족의 주거 욕구를 채워주었다. 샤토 당부아즈, 샤토 드 블루아, 샤토 드 샹보르, 샤토 다제르리도, 샤토 드 셰농소 등은 과도기 전원주택의 전형적인 예로 중세 성채의 특징을 보여준다.
17세기 무렵에는 반요새의 기능이 사라졌고 우아하고 세련된 전원 별장들이 나타났다. 나중에 영주 저택을 일컫게 되었고 소유주를 가리지 않고 전원주택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샤토
샤토

나중에 이 말은 영주 저택을 일컫게 되었으며 결국 일반적으로 소유주가 누구이든 전원주택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원래 샤토는 봉건적 지역공동체 구실을 했다. 그러나 14세기에 세속적인 번영을 추구함에 따라 많은 제한을 지녔던 장원제가 느슨해졌고, 광대하지만 여전히 요새기능을 갖춘 귀족들의 개인저택이 많이 세워졌다.

대저택과 요새 기능을 모두 갖춘 이러한 복합공간은 흔히 강기슭의 높은 곳이나 전망 좋은 언덕바지에 위치한다. 벽은 두껍고 창문은 작으며 공격에 맞설 수 있도록 흉벽에는 종종 총안을 냈다. 건축형태는 중세 요새 형태를 자유롭게 모방했다. 요새 기능을 하는 샤토의 대표적인 예는 샤토 드 피에르퐁(1390~1400)이다. 위풍당당한 8개의 탑과 돌출총안(아래쪽 공격자들을 향해 화살·돌·탄환 등을 던지거나 쏠 수 있도록 구멍을 낸 개구부), 총안이 있는 흉벽들이 7m 두께로 중정을 둘러싸고 있다. 이 샤토는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절벽에 있으며, 성곽 둘레 해자(垓字)에 걸쳐진 도개교(跳開橋)를 통해야만 들어갈 수 있다.

15세기에 전쟁방식이 바뀌고 봉건제가 쇠퇴하여 새로운 사회질서가 들어섰다. 이제는 요새 기능을 하는 성보다는 화려한 전원주택이 귀족들의 주거 욕구를 채워주게 되었다. 샤토 당부아즈(15세기), 샤토 드 블루아(13세기경 착공), 샤토 드 샹보르(1519~47), 샤토 다제르리도(1518~27), 샤토 드 셰농소(1515~23) 등은 과도기 전원주택 샤토의 전형적인 보기이며 모두 중세 성채의 특징을 몇 가지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샤토 드 샹보르는 직4각형 울타리 둘레에 해자를 만들어 방어 기능을 갖추고 울타리 안에 중심 주거를 배치한 반요새화한 평면을 보여준다. 내부의 주요건물, 즉 내성은 중세 영국 성의 아성(牙城)에 해당하는 것이다. 원추형 지붕을 올린 귀퉁이의 탑과 고전적인 성 난간을 받치고 있는 벽기둥, 지붕창이 달린 급경사 지붕들이 결합하여 건축적 모티프로 이루어진 접속곡을 낳는다. 이처럼 독특하고 환상적인 요소들 때문에 요새화한 고딕식 성, 르네상스 시기의 궁전, 요정의 나라 사이 그 어디쯤 위치할 듯한 샤토 드 샹보르는 루아르 강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샤토로 손꼽힌다. 17세기 무렵 반요새 구실을 하는 샤토는 사실상 사라졌다. 그대신 1642년경 프랑수아 망사르가 대부분 설계한 '메종의 샤토'(지금의 메종라피트) 같은 우아하고 세련된 전원 별장들이 나타났다.→

샤토(chateau)
샤토(chate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