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마리아

다른 표기 언어 Mary 동의어 Saint Mary, Virgin M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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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미상
사망 미상

요약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Saint Mary, Virgin Mary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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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성서에서의 마리아
  2. 교리적 명칭
  3. 문화적 중요성
성모마리아
성모마리아

사도시대 이래 그리스도교 교회의 공경의 대상이었으며, 서방의 예술·음악·문학에서 자주 다루어져온 주제이다. 마리아는 성서에 언급되어 있지만 그 언급 자체가 너무 빈약해 일관성있는 전기를 구성하기는 어렵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마리아를 일컫는 명칭, 즉 강생의 보증, 성모, 새 하와, 하느님의 어머니, 영원한 동정녀, 무원죄, 승천 등을 통해 마리아 교리의 발전을 추적할 수 있다. 하느님의 메시지에 대해 마리아가 보여준 겸손과 복종은 모든 시대 그리스도교도들의 전형으로 생각되어왔다.

〈신약성서〉 복음서에 나오는 이 갈릴래아 처녀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과 신학은 마니피캇에 언급된 예언(루가 1:48,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을 성취하는 마리아상을 구성해왔다(→ 그리스도교).

성서에서의 마리아

마리아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수태고지인데, 이것에 의하면 그녀는 나자렛에서 살고 있었고 요셉의 약혼녀였다(루가 1:26 이하). 마지막으로 언급된 구절은 〈사도행전〉 1장 14절에 나오는데 예수가 승천한 후 마음을 모아 기도에만 힘쓴 사람들 중에 마리아도 있었다.

또한 마리아는 복음서의 다음과 같은 사건에 등장한다. 즉 성수태고지, 예수의 선임자인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이자 마리아의 친척인 엘리사벳을 방문한 일(루가 1:39 이하), 예수의 탄생과 성전에서 아기예수를 바친 일(루가 2:1~24), 동방 박사(Magi)의 방문과 이집트로 피난간 일(마태 2:1 이하), 예수가 12세 되던 해 유월절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일(루가 2:41 이하), 가나의 혼인잔치(요한 2:1 이하), 예수가 가르치고 있을 때 그를 만나려고 한 일(마르 3:31 이하), 예수의 십자가 밑에 있었던 과부인 마리아를 요한에게 위탁한 일(요한 19:26 이하) 등이다.

이런 장면들을 실제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인다 해도 이것으로 전체적인 마리아의 모습을 구성할 수는 없다. 단지 그녀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설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즉 마리아가 성수태고지에서 그녀에게 부여된 특권을 받아들인 것, 예수의 십자가 밑에 마리아가 서 있었던 것, 부활절에 예수의 무덤을 보러온 '다른 마리아'(마태 28:1)가 그녀가 아니라는 사실(전통적인 해석에 의하면 마리아는 예수가 누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시신이 그곳에 없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봄)은 마리아의 모습을 그려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예수의 생애에서 유년시절과 죽음 사이에 일어난 이 3가지 사건은 마리아의 인간적인 특성을 나타내며, 심지어 마리아는 예수의 본래 임무가 무엇인지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초기시대 이후 이러한 장면이 상징하는 주제들은 수세기에 걸쳐 발전하고 첨가되어 마리아에 대한 사상과 명상의 기초를 이루어왔다. 여러 그리스도교 종파들과 신학자들의 마리아에 대한 해석은 서로 다르다. 즉 마리아론의 발전과 첨가가 어디까지 확산되는가를 정하는 데 있어 각기 다른 입장을 취했다. 그러므로 그런 발전을 역사적으로 고찰해보면 그 시대의 마리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신학이 어떠했나를 대충 알 수 있다.

교리적 명칭

그리스도교 문헌에서 마리아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4장 4절에 나오는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라는 구절이며, 이것은 복음서에 쓰인 어떤 구절보다도 앞서 씌어졌다.

〈구약성서〉 〈욥기〉 14장 1절과 〈마태오의 복음서〉 11장 11절에 나오는 이와 유사한 구절을 통해 이 구절은 사람의 본성을 말하는 히브리적인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에게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란 표현을 쓰는 것은 그가 실제로 사람이라는 것을 주장하려는 의도이며, 그가 완전히 인간적인 생활을 했다는 것을 거부하려는 시도(2세기 이원론적 종파인 영지주의의 다양한 체계에서 보여지며, 몇몇 영지주의자들은 빛이 창문을 통하듯 예수도 마리아의 몸을 통과한 것이라고 주장했음)에 반대하는 것이다.

"여인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란 구절이 '남자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게 아니라'는 뜻을 반드시 내포하기라도 하듯 그 구절을 다른 의미로 읽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므로 그 구절로 인해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이 진실로 사람으로 태어난 표시 혹은 보증이 되었다. 고대세계에서 인간 부모는 그 사람이 진짜 인간인가를 판가름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었으므로 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 어머니는 처음부터 예수가 인간임을 보증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몇몇 학자는 '사도신경'에 나오는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라는 구절의 원래 의미는 예수가 실제 사람이라고 한 교회의 주장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한 주장은 그리스도교 역사에 나타난 마리아에 대한 모든 이론에서 더이상 축소시킬 수 없는 기본이론이 되어왔다.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역할은 헌신과 교리에서 그녀에게 부여한 다른 역할보다 중요한 것이다. 동정녀 탄생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인간으로서의 예수를 부각시키기 위해 인간 어머니를 가진 인간의 아들인 예수와 그가 인간 아버지를 갖지 않았다는 사실 사이의 모순을 지적한다. 동정녀 탄생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인성(人性)은 동정녀가 강생의 보증으로 그녀의 역할을 받아들임으로써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가 1:38)라는 구절이 가능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로마 가톨릭 신학에서 마리아에게 부여된 구원의 협조자(Coredemptrix:인류를 구원하는 일에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하는 것)라는 명칭에 대한 유일한 자료이다. 그러나 구원의 협조자란 말은 마리아가 더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을 의미해왔으며 이런 참여의 정확한 본질은 가톨릭 신학자들간에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신약성서〉에서 마리아에 대한 가장 풍부한 자료는 〈마태오의 복음서〉 및 〈루가의 복음서〉에 나오는 유아시절의 이야기이다.

두 복음서가 주장하는 요점은 예수가 어떤 인간의 작용없이 마리아의 자궁에 잉태되었다는 것이다(마태 1:18 이하, 루가 1:34 이하). 그러나 〈마태오의 복음서〉 1장 16절에 나오는 본문의 변형문과 그중 몇몇 구절은 '요셉이 예수를 낳았다'로도 해석될 수 있다는 데 대해서 어떤 학자들은 그러한 주장이 원래 마태오 자신이 얘기한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신약성서〉 중 〈마태오의 복음서〉 및 〈루가의 복음서〉에만 예수의 탄생에 대한 구절이 나온다. 사도 바울로도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으며, 〈마르코의 복음서〉도 성인 예수로부터 시작하고, 역사 이전의 존재로부터 시작하는 〈요한의 복음서〉도 '……태어난 사람들'보다는 오히려 '……태어난 사람'으로 읽히는 1장 13절의 변형문을 제외하면 동정녀 탄생에 대한 암시가 없다.

마태오도 그 기적에 대해 어떤 신학적 의미를 부가연관지으려는하지 않으나 〈루가의 복음서〉 1장 35절에 천사가 한 말은 아기의 신성을 그 어머니의 처녀성과 연관지으려는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성서시대 이후의 그리스도교 문학에서 마리아에 대한 가장 큰 논쟁거리는 그녀의 처녀성에 관한 것이었다. 〈신약성서〉에 기초해서 볼 때 마리아가 완전히 처녀인 상태에서 예수를 잉태했다는 사실은 교회의 모든 정통 교부의 일치된 가르침이었고, 이 가르침은 초기 그리스도교 신조에 신성한 것으로 포함되었으며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와 종교개혁 이후의 신자들뿐만 아니라 16세기 종교개혁가들의 신앙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개신교).

〈신약성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해석들 중 하나로 그와 아담을 대응시키는 공식이 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입니다"(Ⅰ고린 15:22)라는 것인데, 즉 이 대응은 아담의 불복종으로 인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그리스도의 복종으로 인해 죄로부터 구원이 성취되었음을 가리킨다(로마 5:12~19). 〈루가의 복음서〉 1장에 나오는 수태고지의 이야기에서 이와 비슷하게 하와와 마리아의 대응관계를 제시해볼 수도 있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것은 곧바로 그리스도교가 생각해볼 문제가 되었다.

2세기말경 교회 교부인 이레네오가 처녀이면서 하느님의 말씀에 불복종한 하와와 처녀이면서 복종한 마리아를 대응시켜 쓴 글이 남아 있다(→ 아담과 이브).

"죽을 운명이 불멸의 것으로 되기 위해 아담은 그리스도로 반드시 회복되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처녀성을 지닌 한 처녀가 복종함으로써 처녀의 불복종을 없애고 원상태로 돌리기 위해 하와는 마리아에게서 회복되어야 했다."

이레네오는 이것을 논쟁거리로 삼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그 대응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으며, 이것으로 보아 그렇게 대응시키는 것이 그 자신이 생각해낸 것이 아니라 전승에 속하는 것 같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는 이것에 대해 큰 존경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런 대응은 마리아와 그녀의 복종으로 인해 인류의 구원 사업에 그녀가 적극적인 분담역할을 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모든 인간은 아담으로 인해 죽었고 하와도 그 죄의 행위에 참여했으나 모든 인간은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되었고 마리아도 이런 구원을 가능하게 한 삶에 참여했다는 것이다.

마리아에 대한 최초의 커다란 논쟁은 '하느님을 낳은 사람', 즉 '하느님의 어머니'의 의미인 테오토코스(Theotokos)란 명칭을 그녀에게 적용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이 명칭은 3세기 혹은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예배 때 사용함으로써 생겨난 것 같다. 이것은 4세기에 교리로 정해진 그리스도의 완전한 신성 교리로부터 논리적으로 추론한 것이었으며 그 교리를 옹호한 사람들이 또한 그 추론을 이끌어낸 사람들이었다. 19세기 영국의 신학자 추기경 존 헨리 뉴먼은 그리스도는 최고의 피조물일 뿐만 아니라 신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고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결정함으로써 마리아를 최고의 피조물로 보며, 예배하고 명상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4세기말경에 이르러서는 테오토코스란 명칭이 교회의 여러 영역에서 정착하는 데 성공했다.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네스토리우스는 이 명칭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사이의 구별을 흐리게 한다는 이유에서 테오토코스의 사용을 반대하고 '그리스도를 낳은 사람', 즉 '그리스도의 어머니'라는 의미인 크리스토토코스(Christotokos)란 명칭을 선호했다. 네스토리우스의 이런 반대 의견은 그의 다른 가르침과 함께 431년 에페소스 공의회에서 단죄되었다.

마리아가 예수를 잉태할 때 처녀였다는 〈신약성서〉의 주장으로부터 여러 가지 추론이 생겨났는데, 거기에는 예수가 탄생할 때도 마리아는 처녀로 남았으며(virginitas in partu), 예수 탄생 후와 그녀의 남은 생애 동안 줄곧 처녀로 남아 있었다(virginitas post partum)는 교리도 포함되어 있다.

'사도신경'의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란 구절은 최소한 예수가 탄생할 때도 마리아가 처녀로 남아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듯하다. 마리아가 예수를 어떻게 낳았느냐에 대한 가르침은 2세기 위경인 〈야고보의 원복음서 Protevan-gelium of James〉에 처음으로 나오는데 그것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추적하기는 어렵다. 그래서인지 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역사가들은 서로 모순되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교회에서 금욕적인 이상이 성장함에 따라 마리아를 영원한 동정녀로 보는 견해를 더욱 지지하게 되었다.

〈신약성서〉에는 이에 대한 언급이 없으며, 교회 교부들이 그 교리를 지지할 때 인용한 〈구약성서〉의 구절들(에제 44:2, 아가 4:12)은 이미 그 교리를 받아들인 사람들만이 확신하던 것이었다.

마리아가 영원히 동정녀라는 교리는 몸과 영혼의 완전한 순수성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신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그녀는 또한 다른 죄로부터도 자유롭다는 것이다. 펠라기우스(그의 가르침은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이단으로 단죄되었지만, 그는 마리아의 무원죄를 주장함)에 반대하여 의 보편성을 입증하려고 한 북아프리카 출신의 위대한 신학자이며 주교인 아우구스티노는 서방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신성한 거룩하신 동정녀를 제외시켜야 한다.

주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나는 죄의 문제에 대해 1가지라도 의문을 제기하고 싶지 않다. 결국 의심할 여지없이 죄가 없는 예수를 잉태하여 낳은 특권을 지닌 그녀에게 어느 정도의 무한한 은총이 내렸는지를 우리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나 마리아의 무원죄가 의미하는 것을 더욱 명료하게 만든 것은 원죄(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죄)와 본죄(생활하면서 짓는 죄)를 구별한 탓이었으며, 이것 역시 아우구스티노가 서방 신학에 구축해놓은 것이었다.

4세기와 5세기에 몇몇 동방교회 신학자는 마리아에게 본죄를 덧붙이려고 했으나 동방과 서방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그녀가 어떤 죄도 없다는 견해를 받아들였으며, 16세기 종교개혁가들도 이런 견해를 표현한 적이 있다. 그러면 마리아는 원죄로부터 또한 자유로운가? 서방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중세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마리아가 임신한 것은 모든 사람의 경우에서처럼 그녀의 순수성이 손상된 것이었지만, 하느님은 결국 그녀의 원죄를 소멸시켰다고 가르침으로써 이 문제에 대해 대표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13세기 영국의 스콜라주의 신학자인 둔스 스코투스가 체계화하여 결국 1854년 교황 비오 9세가 로마 가톨릭 교리로 선포한 '원죄 없으신 잉태'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이 교리에 의하면 마리아는 그녀의 생애에서나 태어날 때나 순결했고, 그녀가 임신한 첫 순간에 원죄의 모든 오점이 없어졌으며, 이것은 인류의 구원자인 그리스도를 통해 전능하신 하느님이 그녀에게 내린 유일한 은총이며 특권이다.

원죄 없으신 잉태가 공포되었을 때 성모승천에 대한 많은 청원이 교황청으로 들어왔다.

로마 가톨릭교도들은 성모승천을 믿었으며 성모승천대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20세기 동안 800만 명 이상이 그 청원에 서명했으나 로마 교황청은 그 교리가 성서와 그리스도교 전승의 초기 자료에 기초해서 정의내리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에 주저했다. 마리아가 죽을 때의 상황과 장소에 대해 교회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내용이 없고(고대 이오니아 도시인 에페소스에서는 마리아를 흔히 '잠에 빠진' 모습으로 그렸음), 매장지로 알려진 곳이 없으며, 성해(聖骸)에서 믿을 만한 기적이 일어나지도 않았다(오히려 마리아보다 정도가 덜한 성인들의 성해에서는 많은 기적이 일어남). 그러나 그러한 주장이 교리를 세우는 데는 충분하지 않았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그 생각을 지지하는 최초의 교리나 전례상의 증거도 역사상 최근에 나타났다.

결국 1950년 교황 비오 12세는 "하느님의 순결한 어머니이며 영원한 동정녀인 마리아는 그녀의 초기 삶의 과정을 통해 볼 때 몸과 영혼이 승천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공포하여 그 교리를 공식화했다.

문화적 중요성

가톨릭 교회가 동정녀 마리아에게 부여한 공식적인 특례나 명칭 외에도 그녀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로마 가톨릭 교회나 정통 교회 신자들의 마리아에 대한 신앙심, 예를 들면 축일·예배·묵주기도 등의 형태를 보면 그들의 삶에서 마리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를 알 수 있다.

때로는 너무 열중한 나머지 다른 교리가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의 로마 가톨릭 신앙은 마리아론이 고립된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이라는 다른 2개의 그리스도교 교리의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마리아에 대한 이야기는 예수에게서 이끌어내는데, 이것이 테오토코스의 기본 개념이었다. 또한 마리아는 '최초의 신자'로, 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신앙시되었다.

그러나 마리아의 문화적 중요성은 어떤 교리적·제도적 울타리를 훨씬 넘어선다. 그녀 자신도 결코 예견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모든 세대들은 진정으로 그녀를 축복받은 사람이라고 부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