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페소스 공의회

에페소스 공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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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생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소아시아에서 열린 3번의 회의.

190년 에페소스의 주교 폴리크라테스는 교회회의를 소집해 부활절의 공식 날짜를 니산월(月) 제14일(유대교의 유월절)로 확정했다. 그러나 부활절을 지키는 데 일요일이 더 편리하다고 생각하고 또 부활절 날짜를 통일하고 싶어하던 교황 빅토르 1세는 이 교회회의의 결정을 배척하고 반대자들을 로마에서 쫓아냈다.

431년 교황 첼레스티노 1세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키릴로스에게 오랜 숙적 네스토리우스를 반대하는 회의들을 주재하도록 위임했는데, 교황은 이미 네스토리우스가 주장한 그리스도의 2가지 본성에 관한 교리를 단죄한 적이 있었다.

네스토리우스에게 더 공감했던 동방교회 주교들은 회의장에 도착한 뒤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가 소집한 공의회가 자기들을 빼놓고 시작한 사실을 알고는 안티오키아의 요한네스를 중심으로 대립 교회회의를 열어 키릴로스와 에페소스 주교 멤논을 파문했다. 교황 첼레스티노가 네스토리우스에 대해 파문을 선고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주교직의 해임을 선언하자, 황제는 그때까지 유지해오던 중립적인 입장을 포기하고 키릴로스 편을 들었다. 또한 공의회는 반대파들에 대한 징벌로써 키프로스 교회를 안티오키아 교구에서 독립시켰다. 이 공의회가 제3차 세계 공의회이다.

449년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는 에페소스에서 그리스도의 2가지 본성 교리를 옹호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플라비아누스와 맞선 단성론자 에우티케스를 옹호하기 위해서 공의회를 소집했다. 디오스코루스(키릴로스를 계승하여 알렉산드리아 교구를 맡음)는 에우티케스를 지지하는 한편, 교황사절이 이에 불복하자 플라비아누스와 그외 주교들에게 파문을 선언했다.

디오스코루스는 심지어 이 회의를 '강도교회 회의'(Robber Synod)라고 말한 교황 레오 1세까지도 파문하려고 했다. 그리스도가 하나의 본성만 지녔다는 단성론은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단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