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

공중전

다른 표기 언어 air warfare , 空中戰

요약 비행기·헬리콥터 등 유인(有人) 항공기에 의해 수행되는 군사작전.
aerial warfare라고도 함.

적의 항공기나 지상·해상·수중 목표물을 작전대상으로 삼는다.

20세기 군사작전에서 중요한 하나의 영역으로 거의 전적으로 20세기 군사학의 산물로 볼 수 있다.

군사항공의 역사는 18세기말에 열기구(熱器具)가 처음 개발되면서 시작되었다. 기구는 그후 19세기의 여러 전쟁에서 적군의 움직임을 정찰하기 위한 공중관측소로 사용되었다.

비행선 제작기술의 향상과 내연기관의 발명에 힘입어, 20세기초에 시도된 두 갈래의 개발활동이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1900년 독일 군인이었던 페르디난트 폰 체펠린은 경식(硬式) 비행선을 개발하여 그중 한 대를 최초로 공중에 띄웠고, 1903년 미국의 라이트 형제는 공기보다 가벼운 가스를 이용해 추진되는 비행선과 다른 동력을 이용한 항공기를 공중에 띄우는 데 처음으로 성공했다.

이들의 노력은 항공에 대한 군(軍)의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그 이후로 항공개발이 매우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무렵에는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이탈리아의 군대에 비행부대가 있었다(→ 군사기술).

제1차 세계대전중 사용된 항공기는 대부분 복엽기(複葉機)였는데, 이들 항공기들은 대개 윗날개 밑에 아랫 날개가 부착된 2중날개를 달고 있었다.

비행기들의 동체는 나무로 건조되었고 외판(外板)은 천으로 씌워졌다. 초기에는 정찰 임무용으로만 사용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군은 적의 항공기를 격추하고 제공권을 장악하기 위해 비행기에 기관총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적대국 전투기들 간의 '격전'이 공중전의 시초가 되었다.

체펠린이 제작한 비행선은 도시를 폭격하기 위한 중거리 공습에 사용되었고, 연합군은 기체의 몸집이 크고 막강한 화력을 지닌 비행기들을 제작하여 막대한 양의 폭탄을 철도와 비행장에 투하했다(→ 체펠린). 대전이 끝났을 때, 공중전은 효율적인 군사작전의 한 형태로 부각되었지만, 필수적인 작전 형태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주목할 만한 2가지 유형의 군용 비행기가 제1차 세계대전중에 출현했다.

이들 전투기의 주요임무는 전략상 중요한 영공 내에서 작전중인 모든 종류의 적 항공기를 공격·격추시킴으로써 영공에 대한 제공권을 확보하는 데 있었다. 전투기는 적 항공기를 격추시킬 수 있는 특수무기를 장착해야 했고, 고속과 강력한 파괴력, 고도의 기동력을 갖출 필요가 있었다. 반면 폭격기의 임무는 폭탄을 투하, 지상 목표물을 파괴하는 데 있었다.

폭격기들은 대체로 전투기의 기체보다 더 크고 무겁고 속도 또한 더 느렸기 때문에 적 전투기의 공격에 대비, 아군 전투기의 호위를 필요로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군용 항공기 제작기술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고도의 기동성을 갖추었지만 속도가 느렸던 복엽기는 1930년대에 훨씬 속도가 빨라진 단엽기(單葉機)로 대체되었다.

이전의 취약한 나무동체와 섬유 외판 대신, 내구성이 강한(내부 버팀대를 필요로 하지 않는) 금속동체를 사용하게 되었다.

군용 항공기는 유선형의 기체 개발과 새로 개발된 고성능 기관 덕택으로 보다 빠른 속도를 갖게 되었고, 기관총과 소구경 기관포를 프로펠러의 뒤가 아니라, 날개 밑에 장착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폭격기에는 조준기·폭탄적재함·투하실 등이 갖추어져, 더 많은 양의 폭탄을 적재할 수 있었고, 보다 더 정확하게 폭탄을 투하시킬 수 있었다.

새로운 형태의 해군함정인 항공모함이 개발되어 항공기의 해상기지로 사용되었는데, 이 기지로부터 출격한 항공기는 해상에서의 공중작전에 즉각 투입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의 공중전은 지금까지 규모가 가장 컸던 공중전이었다. 제공권 장악이야말로 독일이 사용한 기습전술의 핵심적 요소였는데, 독일은 이 전술을 이용, 전투기와 폭격기로 적의 전방 방어진지를 무력화시키고 후방의 통신보급망을 와해시켰다(→ 전격전, 독일사). 공중전으로만 치러진 최초의 대전투는 영국 전투(1940)였다(→ 영국 공습). 영국의 전투기부대는 독일군 폭격기와 전투기의 집중공습에 맞서, 영국 영공에 대한 제공권을 고수함으로써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공중전사에 길이 남을 또 하나의 전투는 미드웨이 전투(1942)인데, 이 전투는 항공모함 간에 전개된 최초의 해전이자, 수백 마일의 거리를 두고 행해진 공습으로만 이루어진 최초의 해전이기도 했다. 공중전의 기념비가 될 만한 3번째 전투는 1943~45년 사이에 독일 본토를 공격목표로 삼아 감행된 연합군의 전략공습이다.

이 공습에서 연합군의 대규모 전투비행대는 독일의 도시·기간산업·산업시설 등을 공격했다. 1945년 미국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시에 원자폭탄을 투하하여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자, 전략공습은 새로운 중요성을 띠게 되었다(→ 영국사).

1944년 세계 최초의 제트기 개발을 시초로 군용 항공기 부분에서 전후 가장 중요한 발전들이 이룩되었다.

제트 기관에 의해 추진되는 항공기는 가장 빠른 프로펠러 추진 항공기보다 훨씬 빨리 날 수 있었기 때문에, 1960년대 초엽 세계 주요국가들의 공군기는 제트기로 완전 대체되었다. 핵폭탄을 대륙에서 대륙으로 실어나를 수 있는 장거리 제트 폭격기가 개발되었다. 가장 빠른 전투기는 음속 2~3배의 속도로 날 수 있었고, 기관총과 기관포 외에 유도 미사일과 순양 미사일 같은 무기를 장착할 수 있었다. 제트기를 이용한 숨가쁜 공중전의 와중에서 조종사들이 목표물을 탐지하고 공격할 수 있도록 정교한 레이더와 그밖의 전자장치들이 개발되었다.

제트기는 한국전쟁(1950~53), 베트남전(1954~75), 아랍-이스라엘 전쟁(1967~73), 소련의 아프간 침공(1979~89) 등을 포함하여 잇따라 전개된 여러 차례의 국지전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었다.

한편, 새로운 형태의 비행기가 군사적 용도에 맞게 개발되거나 개조되었다. 헬리콥터는 전투지역으로부터 부상자를 급히 후송하는 데 매우 효율적으로 이용되었다. 보병과 기타 지상 목표물에 바싹 접근하여 이들에게 집중사격을 퍼붓기 위해 고도의 기동력을 갖춘 무장 헬리콥터가 개발되었다.

수직 또는 단거리 이착륙 비행기는 이륙시 헬리콥터와 비슷한 기동성을 발휘하면서 일단 고도를 잡은 후에는 일반 제트기의 성능을 발휘한다(→ 수직이착륙기, 단거리이착륙기).→ 공격기, 전투기, 폭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