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구

기구

다른 표기 언어 balloon , 氣球

요약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나 더운 공기의 부력을 이용해서 공중에 띄운다. 기구에는 사람이나 화물을 위해 바구니나 큰 상자를 단다.
1783년에 몽골피에 형제가 무인기구를 띄우는데 성공한 후 로제에와 몽골피에가 같은 해 사람을 태우고 파리를 횡단하였고 샤를은 수소 기구로 2시간에 걸친 비행에 성공했다. 나폴레옹은 관측용 기구를 썼으며, 미국 남북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관측 기구를 이용했다. 과학계에서에서는 1900년부터는 고도 30㎞까지 기구를 띄워 상층 대기권을 조사하여 기상학의 진보를 이루었다.
1931년 피카르는 세계최고의 고도비행기록을 세웠는데 이를 기반으로 미공군은 유인비행선을 고도 3만m 이상으로 보내 상층대기권에 관한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헬륨이나 수소 등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 또는 더운 공기를 채워 부력을 이용해서 공중에 띄운다. 운송용 기구에는 사람이나 화물을 실을 수 있도록 아랫부분에 바구니 또는 큰 상자를 단다(→ 비행선). 인류는 기구를 이용함으로써 하늘을 나는 시도에 최초로 성공했다.

기구
기구

기구 형태에 가까운 비행물체의 실험이 시작된 것은 1709년으로 추정된다. 당시 그 비행선을 제작한 사람은 브라질의 성직자이며 발명가인 바르톨로미외 로렌소 데 구스망이었다. 1783년 프랑스 앙노네의 조제프 몽골피에와 에티엔 몽골피에 형제는 더운 공기를 넣은 천자루가 공중에 뜬다는 것을 확인한 뒤 그해 6월 4일 무인기구를 띄워 2.4㎞ 이상을 비행시켰다. 이들은 1783년 9월 19일 다시 베르사유에서 보다 큰 기구에 양·닭·오리 등을 태워 띄웠다.

1783년 11월 21일 최초의 유인비행으로, 장 프랑수아 필라트르 드 로제에와 프랑세스 로랑 ‘아를랑데 프랑세스 로랑 후작’이 몽골피에 기구로 파리를 횡단했다. 이들은 기구 속의 공기를 데우기 위해 양모와 짚을 태웠으며 23분 동안 약 9㎞를 비행했다. 그해 12월 물리학자인 J. A. C. 샤를은 니콜라 루이 로베르와 함께 수소를 넣은 기구를 이용해 2시간에 걸친 비행에 성공했다.

군대에서도 곧 기구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나폴레옹은 전투에서 일정한 위치에 고정시켜두는 관측용 기구를 썼으며, 미국 남북전쟁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양쪽 군이 모두 이와 같은 기구를 이용했다. 기구로부터 동력비행선이 개발되고 다시 비행기가 비행선을 대신하게 된 다음에도 기구는 계속 유용하게 쓰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에서는 저공폭격과 급강하폭격을 막기 위해 여러 지점의 상공에 고정기구를 띄웠다.

과학계에서도 기구는 매우 귀중한 것이었다. 1911~12년 오스트리아 물리학자인 V. F. 헤스는 우주선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일련의 기구를 5,000m 상공까지 올려보내는 대담한 실험을 했다. 또한 1900년부터는 고도 30㎞까지 기구를 띄워올려 상층 대기권을 광범위하게 조사함으로써 기상학의 큰 진보를 이루기도 했다.

1931년 5월 스위스의 물리학자이며 교육자인 오귀스트 피카르는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기구로 세계최고의 고도비행기록을 세웠는데 이 기구에는 최초로 여압실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귀스트의 쌍둥이 형제인 장 펠리 피카르는 플라스틱 기구를 연결해서 폴리에틸렌으로 만든 고고도 관측용 기구인 '스카이훅' 시리즈 개발에 도움을 주었다. 이것으로 미공군은 유인비행선을 고도 3만m 이상으로 보내 상층대기권에 관한 정보를 모을 수 있었다. 이밖에도 기구는 오랫동안 스포츠용으로도 인기를 얻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