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성유전학

후성유전학

[ epigenetics ]

후성유전학은 DNA 염기서열의 변화 없이 나타나는 유전자 기능의 변화가 유전되는 현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즉, 후성유전학은 전통적인 유전학 너머의 유전 현상들을 이해하고자 한다. 일반적으로 후성유전학은 DNA 염기서열 이외에 DNA의 구조적 변형과 염색질(chromatin)의 구조적 변형의 정보를 다루고 있다. 후성유전학적 현상은 유전적으로 동일한 세포 또는 개체들이 유전자의 발현을 달리함으로써 표현형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을 의미한다. 후성유전학적 조절 현상은 주로 전이인자(transposon) 또는 바이러스를 억제하기 위한 기작으로 작용하지만, 정상적인 개체의 발달 과정 동안 다양한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기도 한다. 후성유전학의 영어단어 중 ‘epi-‘는 그리스어 유래 접두사로 ‘~의 위에’ 또는 ‘덧붙여’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1)

목차

후성유전학적 표식

DNA 메틸화

후성유전학적 표식(mark) 중 가장 중요한 것은 DNA의 메틸화이다. DNA 메틸화는 DNA 메틸화효소(DNA methyltransferase) 활성에 의해 시토신(cytosine)에 메틸기(-CH3)가 부착되는 현상으로 DNA 염기쌍 형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 변형이다. 즉, 메틸기가 부착된 시토신 또한 구아닌 염기와 염기쌍을 형성할 수 있다.2) 일반적으로 프로모터 부위의 DNA 메틸화는 전사를 억제하며, 유전자암호 영역 내의 DNA 메틸화는 전사를 촉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DNA 메틸화는 선택적 스플라이싱(alternative splicing)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스플라이싱이 일어나는 주변에서 인트론보다 엑손 영역에서 더 많은 DNA 메틸화가 일어나게 되면 스플라이싱이 더 잘 일어난다.

시토신의 메틸화 (출처:정동훈)

식물의 DNA 메틸화효소는 세가지가 있다. 첫번째 효소인 methyltransferase1(MET1)은 CG 염기부위의 시토신을 메틸화시키는 효소로 DNA가 복제될 때 새롭게 합성되는 DNA 가닥에도 같은 메틸화 정보가 있도록 해준다. 주로 전이인자 또는 이질염색체(heterochromatin)를 억제하기 위해 작용하며, 유전자 각인(imprinting)에도 작용한다. 두번째 효소인 chromomethylase3(CMT3)는 CHG 염기서열(H는 A, C 또는 T)의 첫번째 시토신 염기를 메틸화시키는 효소로 히스톤 변형 부위에 새로운 DNA 메틸화를 시작할 수 있다. 마지막 세번째는 domains rearranged methyltransferase1(DRM1)과 DRM2 효소로 CHH 염기서열 부위의 시토신을 메틸화한다. DRM1과 DRM2에 의한 DNA 메틸화는 작은간섭RNA(small interfering RNA, siRNA)를 통해 일어나며, 이를 RNA 매게 DNA 메틸화(RNA-directed DNA methylation, RdDM) 기작이라고 한다.

메틸화된 DNA는 DNA glycosylase-type DNA demethylase 효소들에 의해 탈메틸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탈메틸화효소에는 Repressor Of Silencing1(ROS1), Demeter(DME), Demeter-Like2(DML2), DML3 등이 있다. DNA 탈메틸현상은 생식생장과정에서의 후성유전학적 리세팅, 기공형성, 과일성숙, 다양한 스트레스 반응 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스톤 변형

히스톤 단백질은 핵안의 DNA가 감싸고 있는 단백질 복합체이다. 히스톤의 다양한 변형은 DNA의 염기서열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DNA와 히스톤 사이의 구조를 좀더 촘촘하게 하거나 느슨하게 함으로써 유전자의 발현에 영향을 주게 된다. 히스톤의 변형은 주로 히스톤 단백질의 아미노말단 부위에서 일어나며 메틸화, 아세틸화, 인산화, 유비퀴틴화 등이 알려져 있으며, 이들 변형을 촉매하는 다양한 효소들이 알려져 있다. 히스톤 변형 중, 히스톤 H3 단백질의 27번째 아미노산인 라이신에 3개의 메틸기가 붙은 H3K27me3는 주로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도록 작용한다. 반면, 아세틸화의 부착은 유전자의 활성을 유도한다. 히스톤 단백질의 변형이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기작은 히스톤의 변형이 히스톤과 DNA 사이의 결합력을 강하게 하거나 느슨하게 함으로써 전사에 필요한 RNA 중합효소와 같은 단백질의 접근의 용이성이 조절되기 때문이다. 히스톤의 변형 이외에도 다양한 히스톤 변이체들에 의해 후성유전학적 조절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식물에서 일어나는 후성유전학적 현상

후성유전학적 조절은 주로 전이인자의 억제를 위한 기작으로 이용되고 있다. 전이인자의 활성은 삽입된 위치에 따라 정상적 유전자의 기능을 상실하게 함으로써 생명체에 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를 억제하기 위한 기작으로 후성유전학적 조절이 기능을 발휘한다. 유전체 내에 전이인자가 많이 분포하는 곳에는 DNA의 메틸화가 많이 일어나 있으며, 일부는 RNA 매게 DNA 메틸화 기작에 의해 전이인자의 활성이 억제되고 있다.

전이인자의 억제 이외에도 식물의 발달과정에서 다양한 유전자의 발현 또한 후성유전학적으로 조절되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연구된 결과 중 하나는 모델식물인 애기장대개화시기 조절 기작이다. 개화를 억제하는 유전자인 Flowering Locus C (FLC) 유전자는 춘화처리(vernalization)에 의해 후성유전학적으로 억제되게 된다.3) 후성유전학적 조절 기작은 식물의 발달 과정뿐 아니라 생물학적, 비생물학적 스트레스 환경에서 조절되는 유전자의 발현에도 기여를 한다. 또한, 스트레스에 의한 후성유전학적 변형은 때때로 유전이 되기도 한다.

후성유전학적 조절 중 식물에서 잘 알려진 기작 중 하나는 유전자 각인(imprinting)이다. 꽃가루정세포와 암술의 알세포가 수정하여 배우체가 형성될 때, 두 부모 중 하나에서 유래한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되는 각인 현상에 후성유전학적 기작이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고문헌

1. Lisch D (2009) Epigenetic regulation of transposable elements in plants. Annu Rev Plant Biol, 60: 43-66
2. Henderson IR,  Jacobsen SE (2007) Epigenetic inheritance in plants. Nature 447: 418-424
3. Jones AL, Sung S (2014) Mechanisms underlying epigenetic regulation in Arabidopsis thaliana. Integr Comp Biol, 54: 6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