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신성, 준결정··· 기존 이론 뒤집은 2011 노벨상

초신성, 준결정··· 기존 이론 뒤집은 2011 노벨상

주제 화학, 우주/항공/천문/해양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1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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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맞은 것처럼 정신이 너무 없어, 웃음만 나왔어 그냥 웃었어···”

가수 백지영의 노래 ‘총 맞은 것처럼’의 클라이맥스 부분. 믿었던 연인에게 배신당한 여인의 슬픔을 애절한 가사로 표현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었던 ‘믿음’이 깨지는 순간 처음에는 ‘사실이 아닐 것’이라며 부정한다. 한동안 긴가민가 이어지던 ‘아닐거야’ 라는 생각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근거’를 듣고 난 뒤에야 슬슬 사라진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토대로 또 다른 앞날을 준비한다.

기존에 믿어왔던 이론을 뒤집은 연구라는 점, 이것이 바로 2011년 올해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의 공통점이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들이 자신의 이론을 발표했을 때 동료 과학자들은 그 이론을 믿지 못했다. 아니, 믿지 않았다. 자신들이 그동안 믿어왔던 ‘상식’을 거부해야 했기 때문이다.

● 노벨물리학상 - 우주 팽창 이론을 바꾼 ‘초신성’ 연구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2011년 10월 4일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솔 펄머터(52), 호주국립대 브라이언 슈밋(44), 미국 존스홉킨스대 애덤 리스(42) 교수 등을 2011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과학원은 “우주가 느리게 팽창한다는 지난 100년간의 오랜 예측을 보기 좋게 깨뜨려 우주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정립했다”고 평가하며 수상 이유를 밝혔다.

많은 과학자들은 140억 년 전 ‘빅뱅(대폭발)’이 일어난 이후 우주의 팽창속도가 점점 느려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천재 과학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마찬가지였다. 텅 빈 우주에 물질이 존재한다면 우주 자체의 중력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팽창 속도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허블이 가까운 우주를 관측해서 발견한 우주 팽창의 역사도 그랬다. 우주는 언젠가는 다시 빅뱅 초기의 모습인 ‘점’으로 되돌아갈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이런 믿음은 1998년 3명의 과학자에 의해 깨지고 말았다. 포문을 연 것은 펄머터 교수였다. 1988년부터 ‘초신성’을 관찰하던 펄머터 교수는 지구에서 100억 광년 떨어진 초신성을 관찰하던 중 깜짝 놀랄만한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초신성에서 나오는 빛이 지구에서 점점 빠른 속도로 멀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이론대로라면 빛이 멀어지는 속도는 점점 줄어들어야 한다.

펄머터의 연구결과에 전 세계 과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곧 이어 슈밋과 리스 교수팀도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를 증명했다. 이는 우주에 있던 어떤 ‘물질’이 갖고 있는 척력(밀어내는 힘)이 인력(당기는 힘)보다 크기 때문이었다. 과학자들은 이를 ‘암흑에너지’라고 이름 지었다. 암흑에너지의 존재는 우주의 가속 팽창설이 나온 1998년 이후 가설로만 존재하다가 2003년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암흑에너지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우주 초기모습을 공개하면서 입증됐다. 같은 해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DSS)’라는 국제 공동 프로젝트를 통해 은하 25만 개의 분포를 분석하면서도 암흑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우주에 존재하는 별, 행성, 가스 등은 우주의 4%에 불과하며 23%는 암흑물질, 73%는 암흑에너지가 차지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암흑에너지가 과연 어떤 물질인지, 입자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올해 노벨 물리학상의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자들은 이런 암흑에너지의 비밀을 풀 수 있다면 노벨상 몇 년 치를 몰아줄 정도의 업적이라고 얘기한다. 우주의 가속팽창은 증명이 됐지만 그 이유로 알려진 암흑에너지에 대한 수수께끼는 아직도 과학자들을 괴롭히고 있다.

● 노벨화학상 - 결정의 개념을 바꾼 ‘준결정’
2011년 노벨화학상은 200년간 변함없던 결정의 정의를 바꾼 연구가 수상했다. 1982년, 미국 표준국(현 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서 국방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특이한 물질을 찾고 있던 이스라엘 과학자 다니엘 셰흐트만은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말도 안 돼, 있을 수 없어!”

알루미늄과 망간의 합금을 관찰하던 셰흐트만은 기존의 결정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결정 구조를 발견했다. 규칙이 있는 듯하면서도 자세히 보면 규칙이 없는 구조였다. X-선 현미경으로 바라본 회절패턴은 규칙적이지만 원자의 배열은 패턴이 반복되지 않는 구조였다. 200년간 쌓아온 결정의 개념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당시 학계에서는 이를 ‘미친 소리’라고 일축했다. 셰흐트만의 논문은 물리학 분야 유명 학술지인 ‘응용물리학 저널’ 게재를 거부당했고 연구그룹 책임자는 결정학 공부를 다시 하라며 결정학 교과서를 셰흐트만에게 줬다고 한다. 게다가 팀의 명성에 먹칠을 한다며 나가달라고 요구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사실 같지 않던 연구가 여러 근거를 통해 확인됐고 후속 연구들이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결정의 개념이 원자들의 주기적인 배열에서 분명한 회절패턴이 나타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셰흐트만은 그 이후로 줄곧 노벨상 후보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결정의 개념은 바뀌었지만 아직 준결정이 현실에서 사용되는 분야는 미비하다. 준결정은 결정질보다 구조가 촘촘하지 않기 때문에 마찰력이 적어 단단한 반면, 결정질과 비결정질의 중간물질이기 때문에 쉽게 깨지는 양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단독으로 쓰이지는 못하고 마그네슘과 같은 가벼운 금속에 준결정을 넣어 강도를 높인 뒤 자동차나 비행기의 소재로 활용하는 연구 등이 진행 중이다.

기존의 이론이 깨지면 그 이론을 토대로 연구하던 모든 분야가 영향을 받게 된다. 어떤 과학자는 연구의 방향을 바꿔야 할 수도 있고 연구 자체를 다시 조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통해 과학은 점차 성숙하고 인류는 그로 인한 혜택을 누리게 될 것이다.

  • 원호섭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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