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잡는 구제역 A to Z

워낭소리 잡는 구제역 A to Z

주제 농림/수산(축산/임업)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10-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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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극장에서 개봉돼 관객을 울렸던 영화가 있다. 이충렬 감독의 다큐멘터리 ‘워낭소리’다. 영화의 주인공은 평생 땅을 지키며 살아온 최 노인과 그가 부리는 나이 든 소. 감독은 최 노인과 소를 통해 고향과 아버지를 이야기했다. 이 영화에서 잊지 못할 장면을 꼽자면 30년간 최 노인의 친구였던 소가 죽는 장면이다. 항상 곁에 있었던 소가 사라진 뒤 보였던 최 노인의 멍한 눈빛 때문에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적셨다.

2010년 4월, 인천 강화도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충북 충주시와 충남 청양군으로 퍼지면서 자식 같은 소를 땅에 묻어야 했던 농부들의 마음도 최 노인과 다르지 않았다. 소가 사라진 축사에 하얗게 뿌려진 생석회를 보는 농부의 눈빛도 최 노인처럼 멍했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빠른 속도로 번지면서 축산농가의 시름도 커졌다. 대체 구제역은 무엇이고 그 바이러스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2010년 5월 17일 국립수의과학연구원이 발표한 역학조사 결과를 정리하며 구제역의 특징과 전염 경로를 차근차근 소개한다.

구제역은 소나 돼지, 양, 염소, 사슴처럼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우제류)에서 발생하는 바이러스성 급성 가축전염병이다.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서 ‘가장 위험한 가축전염병’으로, 우리나라에서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분류할 정도로 가축들에게는 치명적인 질병이다.

동물이 구제역에 걸리면 입술, 혀, 잇몸, 젖꼭지, 코, 발굽 사이 등에 물집이 생기고 다리를 절며 침을 흘린다. 또 체온이 급격히 올라가고 식욕이 떨어져 심하게 앓거나 죽게 된다. 전염성이 매우 강한데다 치사율도 높아 대상 동물에게는 죽음의 그림자로 여겨진다. 그래서 소는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 500m 반경에 있는 것들을 땅에 묻는다. 돼지의 경우, 전파력이 소보다 1,000~3,000배 강해 구제역 발생 지역 3km 안쪽의 것들을 몰살시킨다.

다행히 구제역은 사람과 동물이 공통으로 걸리는 ‘인수공통전염병’은 아니기에 사람에게 전염되지 않는다. 구제역 바이러스가 사람 몸에 들어가도 2주 안에 소멸하므로 구제역 걸린 동물의 고기를 먹더라도 인체에 아무런 영향이 없다. 또 구제역 바이러스는 섭씨 50℃ 이상의 온도에서 파괴되고, 강한 산성이나 알칼리성 환경에서는 살지 못한다.

구제역 바이러스는 주로 호흡이나 소화, 생식 행위나, 배설물을 통해서 전파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바람을 타고 수십 km를 이동하기도 하며, 사람의 옷이나 신발에 붙어 잠복할 수도 있다.

이번에 발생한 구제역의 원인도 사람이었다. 농장에 고용된 동북아시아 국가 출신의 외국인 근로자와 동북아시아 지역에 다녀온 농장 주인을 통해 구제역 바이러스가 이동했다. 국내로 들어온 구제역 바이러스는 사료 운송 차량이나 인공수정 등을 통해 전국으로 퍼지게 됐다.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첫 번째로 발생한 구제역은 2009년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 A형과 같다. 이에 구제역 역학조사위원회는 새로 고용된 동북아시아 지역 출신의 근로자와 함께 바이러스가 들어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강화 지역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 O형은 한 농장 주인의 동북아시아 여행이 원인이었다. 그는 구제역 바이러스 O형이 많이 발생하는 지역으로 여행을 다녀왔고, 소독이나 방역 조치 없이 농가로 들어갔다. 강화 지역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분석했을 때 여행지에서 발생한 구제역 바이러스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

이렇게 1차로 발생한 구제역을 진료한 수의사가 2차로 구제역이 발생한 곳까지 진료해 구제역 바이러스가 전파됐다. 농장 주인들도 매일 한곳에서 모임을 가져 바이러스가 번지는 것을 도운 셈이다. 이밖에도 사료 운송이나 인공수정, 동물 약품판매점 오염 등으로 구제역 바이러스는 퍼져나갔다.

앞에서 설명했다시피 구제역은 사람과 크게 연관이 없다.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만 걸리고 발병 인자인 7가지 유형의 바이러스(O, A, C, C1, SAT2, SAT3, Asia1)는 인체를 숙주로 삼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통해 구제역 바이러스가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구제역 역학조사위원회가 밝힌 것처럼 해외에서 바이러스가 들어온 것도, 전국 각지로 퍼져나간 것도 모두 사람 탓이었다.

구제역에 걸린 가축은 치료가 불가능하다. 혹시 살아남는다고 해도 생산성이 크게 저하돼 농가에 경제적인 피해를 준다. 따라서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우선 소, 돼지 등을 사육하는 농장은 정기적으로 소독하고, 농장에 출입할 때는 옷을 갈아입는 등 방역을 철저히 해야 한다. 가축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 즉, 사료 운송업자나 수의사, 약품 수송차량 운전자 등도 농장을 드나들게 되면 반드시 소독을 해야 한다. 해외여행도 주의해야 한다. 구제역이 발생한 나라로 여행을 가게 되면 귀국 후 2주 정도는 가축 농장 등을 방문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외국에서 축산물을 가져와 혹시 있을지 모를 구제역 바이러스를 퍼뜨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결국 구제역도 인간의 활동으로 동물들이 애꿎은 피해를 보는 경우다. 아직 구제역 바이러스 O형이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유행하고 있고, 우리나라에도 구제역 바이러스가 흩어져 있다. 더 이상 구제역 바이러스가 번지지 않도록, 또 새로운 전염병으로 동물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우리의 행동을 조심해야 할 때다.

  • 박태진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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