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제주 흑우, 복제기술로 살아나다!

고(故) 제주 흑우, 복제기술로 살아나다!

주제 생명과학
칼럼 분류 일반기사
칼럼 작성일 201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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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7월 5일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양이 태어났다. 이 양의 아버지는 영국 로슬린연구소에 다니던 아이언 월머트 박사. 월머트 박사는 이 양에게 ‘돌리(Dolly)’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 이름 앞에는 ‘세계 최초의 복제양’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인류가 포유류 체세포 복제에 성공한 것이 벌써 15년 전의 일이다. 그 후로 인류는 쥐, 돼지, 고양이, 개 등 다양한 포유류 복제에 성공한다. 이들 복제의 기본 원리는 돌리를 만들 때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돌리를 탄생시킨 체세포 복제기술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복제하려는 양의 젖샘 세포에서 핵을 추출한다. 그 후 다른 양에게 난자를 추출해 핵을 제거한 뒤 그 자리에 젖샘 세포의 핵을 옮겨 심는다. 전기 충격을 가해 핵과 난자를 융합시켜 만든 수정란을 대리모 양의 자궁에 착상시킨다. 양이 자연적인 출산과정으로 탄생하듯, 자궁에 착상된 수정란은 5~6달 뒤 한 마리 개체로 세상에 태어난다.

앞의 체세포 복제기술을 보면 굉장히 간단해 보이지만 엄청 까다로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핵과 난자를 성공적으로 융합시키는 것도, 수정란을 자궁에 착상시키는 것도 쉬운 작업이 아니다. 월머트 박사는 무려 277번 만에 수정란 착상에 성공했다.

이렇듯 체세포 복제는 복제하려는 동물의 체세포에서 핵을 추출해 핵을 제거한 난자에 이식한 후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방식은 난자와 정자가 만나 암, 수 반반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새로운 개체가 탄생하는 것과 달리, 체세포를 제공한 동물과 똑같은 개체를 얻을 수 있다.

2011년 6월 13일, 우리나라에서 제주 흑우(黑牛)가 복제됐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3년 전에 죽은 흑우를 복제시켰다는 것이다. 제주 흑우는 선사시대 이후 제주도에서만 사육된 한우의 한 품종으로 현재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제주대 줄기세포연구센터의 박세필 교수팀과 (주)미래생명공학연구소 공동연구팀은 세계 최초로 초급속 냉동 초간편 해동(초자화 동결, vitrification) 기술을 개발해 이미 죽은 흑우를 되살렸다.

체세포를 이용한 소 복제는 이미 1999년 국내에서 젖소와 한우 복제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흑우 역시 2009년 3월 체세포 복제에 성공한 바 있다. 하지만 이 당시에는 수소였다. 앞으로 종 보존을 위해서는 우수 유전형질을 가진 암소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17년 전인 1994년에 태어나 2008년에 노령으로 도축된 씨암소 복제를 시도했다. 이미 죽은 암소를 복제할 수 있었던 건 체세포 복제기술에 초급속 냉동 초간편 해동 기술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3년 전 도축된 제주 흑우 씨암소의 체세포를 통해 탄생한 흑우순이(오른쪽). 왼쪽은 2009년 복제된 흑우돌이.

3년 전 도축된 제주 흑우 씨암소의 체세포를 통해 탄생한 흑우순이(오른쪽). 왼쪽은 2009년 복제된 흑우돌이.

그렇다면 초급속 냉동 초간편 해동 기술은 무엇일까. 씨암소가 도축되기 1년 전, 당시 연구팀은 귀 세포를 냉동 보관해뒀다. 다른 소에서 얻은 난자의 핵을 제거한 후 이 귀 세포의 핵을 주입해 섭씨 영하 196도에서 초급속 냉동시켜 보관했다. 냉동된 수정란은 2010년 1월 초급속 해동과정을 거쳐 대리모의 자궁에 이식됐다. 이 기술로 15분 내에 냉동된 수정란이 현장에서 1분 내에 해동돼 대리모 자궁에 곧바로 이식될 수 있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2010년 10월 31일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흑우순이’다. 흑우순이의 친자감별 유전자 분석(DNA Finger printing) 결과, 귀 세포를 제공한 죽은 씨암소와 유전자가 일치했다. 앞으로 흑우순이란 이름 앞에는 ‘제주 흑우 복제 씨암소’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겠다.

초급속 냉동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수정란의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기존에 사용한 완만 동결은 냉동에 2~5시간이 걸렸다. 해동 후 생존율은 50% 이하였고 현미경을 통해 생존한 수정란을 골라서 이식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실용화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15분 내에 초급속 냉동한 수정란은 해동 후 80~90%의 생존율을 보였다.

또 다른 이점은 원하는 자궁이 나타났을 때 바로 해동해서 착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복제 수정란을 착상시키기 위해서는 자궁의 환경 역시 중요하다. 복제 수정란은 바로 착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일주일 정도 발생과정을 거친다. 때문에 대리모의 자궁 역시 발정 후 일주일 정도 지난 상태여야 한다. 기존 냉동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을 때는 복제 수정란을 만들면 착상 조건에 맞는 대리모를 찾는 것이 일이었다. 하지만 냉동 기술로 수정란을 얼려 놓으면 조건이 맞는 대리모를 찾았을 때 실온(섭씨 25도)에서 1분간 해동한 후 바로 착상시킬 수 있다.

자궁 착상 후 정상적으로 태어나는 비율도 높다. 대리모 5마리에 냉동 복제 수정란을 각각 두 개씩 넣었는데 이 중에서 흑우순이가 탄생했다. 기존 냉동시키지 않은 신선 복제 수정란의 성공률이 10% 정도인 걸 감안하면 복제 성공률이 두 배가량 높아진 것이다. 이로써 보다 쉽게 멸종위기 동물의 유전자 종을 보존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이 연구는 2008년부터 농림수산식품부와 제주특별자치도로부터 총 22억여 원을 지원받아 진행됐다. 36kg으로 태어난 흑우순이는 2011년 6월 현재 150kg으로 건강한 상태다. 박세필 교수는 2012년 쯤 복제된 씨수소와 씨암소를 교배시켜 새로운 종이 태어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이렇듯 복제 기술도 진화하고 있다. 이는 과학기술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기대되는 동시에 생명과학이 갖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한계, 즉 윤리적인 측면에서 우려를 불러일으킨다. 복제 기술이 진화할수록 인간의 복제 가능성 역시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멸종되는 동물을 보호하거나 이미 멸종된 동물을 되살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한 기술이 아닐 수 없다.

  • 유기현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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