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 나선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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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나선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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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역의 굴포리 두만강 하구에서 굴포문화로 특징지어지는 구석기시대의 유물들이 대량으로 발굴된 것은 이 시기부터 이 지역에 이미 인류가 생존해 있었던 것임을 확증해주고 있다.

문헌기록에 의하면 이 지역에 부여, 숙신, 말갈, 옥저 등 부족국가가 있었으며 그 이후에는 고구려의 영역으로 되어 있었다.

고구려가 멸망한 뒤 한때 당나라에 예속되어 있었으나 그 후 발해국이 건립되면서 동경용원부에 소속되었다. 발해가 패망해서부터 고려 후반기까지 오랫동안 외족의 손아귀에 들어서 있었다.

고려 말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동북면 공주의 치하에 들게 되었다. 조선이 건립된 이후 태조 7년에 공주를 경원부로 개칭하였고 세종 19년(1437년)에는 경원부에 경흥군이 신설되면서 이 지역은 그 관하에 소속되게 되었다.

1920년대 이후 나진지역에 항구가 건설되고 철도가 부설되면서 도시건설이 활발해졌으며 인구도 급격히 늘어나 1933년에 나진읍(羅津邑)이 신설되었다.

1936년 말 신안면(新安面) · 풍해면(豊海面)을 병합하여 나진부(羅津府)로 승격되었다.

그러다가 1943년에 이르러 일제에 의해 소화통일정목(韶和通一丁目), 소화통이정목(韶和通二丁目), 소화통삼정목(韶和通三丁目), 소화통사정목(韶和通四丁目), 소화통오정목(韶和通五丁目), 금강통일정목(金剛通一丁目), 금강통이정목(金剛通二丁目), 금강통삼정목(金剛通三丁目), 환산통일정목(丸山通一丁目), 환산통이정목(丸山通二丁目), 흥안통일정목(興安通一丁目), 흥안통이정목(興安通二丁目), 흥안통삼정목(興安通三丁目), 빈정통일정목(濱町通一丁目), 빈정통이정목(濱町通二丁目), 빈정통삼정목(濱町通三丁目), 빈정통사정목(濱町通四丁目), 태평통일정목(太平通一丁目), 태평통이정목(太平通二丁目), 태평통삼정목(太平通三丁目), 부사견정일정목(富士見町一丁目), 부사견정이정목(富士見町二丁目), 부사견정삼정목(富士見町三丁目), 부사견정사정목(富士見町四丁目), 부사견정오정목(富士見町五丁目), 녹정일정목(綠町一丁目), 녹정이정목(綠町二丁目), 녹정삼정목(綠町三丁目), 약초정일정목(若草町一丁目), 약초정이정목(若草町二丁目), 약초정삼정목(若草町三丁目), 산수정일정목(山水町一丁目), 산수정이정목(山水町二丁目), 산수정삼정목(山水町三丁目), 대화정일정목(大和町一丁目), 대화정이정목(大和町二丁目), 대화정삼정목(大和町三丁目), 대화정사정목(大和町四丁目), 원정일정목(元町一丁目), 원정이정목(元町二丁目), 원정삼정목(元町三丁目), 궁정일정목(宮町一丁目), 궁정이정목(宮町二丁目), 욱정일정목, 욱정이정목, 욱정삼정목, 중정일정목(仲町一丁目), 중정이정목(仲町二丁目), 중정삼정목(仲町三丁目), 청수정일정목(淸水町一丁目), 청수정이정목(淸水町二丁目), 청수정삼정목(淸水町三丁目), 금정일정목(錦町一丁目), 금정이정목(錦町二丁目), 금정삼정목(錦町三丁目), 말광정일정목(末廣町一丁目), 말광정이정목(末廣町二丁目), 영정일정목(營町一丁目), 영정이정목(營町二丁目), 영정삼정목(營町三丁目), 남산정일정목(南山町一丁目), 남산정이정목(南山町二丁目), 남산정삼정목(南山町三丁目), 남산정사정목(南山町四丁目), 대정일정목(臺町一丁目), 대정이정목(臺町二丁目), 대정삼정목(臺町三丁目), 금평정일정목(琴平町一丁目), 금평정이정목(琴平町二丁目), 금평정삼정목(琴平町三丁目), 금평정사정목(琴平町四丁目), 금평정오정목(琴平町五丁目), 신안동(新安洞), 간의동(間依洞), 산해동, 나진동(羅津洞), 초도동(草島洞), 유현동(踰峴洞), 명호동(明湖洞), 신수동(新水洞) 등 80개의 정목 · 동으로 개편되었으며, 광복 직후에 방진동(芳津里)을 복귀하였다.

1949년 행정구역 개편 시에 나진시를 폐지하고 유현리(踰峴里) · 신해리(新海里) · 창평리(倉坪里) · 삼보리(三寶里) · 신흥리(新興里) · 청계리(淸溪里) · 중앙리(中央里) · 남산리(南山里) · 명호리(明湖里) · 동원리(東原里) · 안주리(安住里) · 나진리(羅津里) · 항로리(港路里) 등 13리를 통합하여 나진면(羅津面)을 신설하고, 명동리(明洞里) · 후창리(厚倉里) · 무창리(武倉里) · 방진리(芳津里) 등 4리를 통합하여 풍해면(豊海面)으로 복귀하였으며, 부령군의 부거면(富居面) · 관해면(觀海面) · 삼해면(三海面) · 연천면(連川面)과 통합하여 나진군을 신설하였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에 따라 나진군 풍해면 · 관해면의 전체 리와 나진면의 12개 리 · 삼해면의 6개 리 · 부거면의 5개 리를 통합하여 나진군을 구성하여, 나진면의 안화리 · 남산리 · 삼보리 · 창평리 · 중앙리 · 동명리 · 동원리를 병합하여 나진읍으로, 나진면의 유현리 · 항로리 일부 · 풍해면의 명호리 일부를 병합하여 유현리로, 나진면의 안주리 · 나진리 · 항로리 일부를 병합하여 안주리로, 나진면의 신흥리 · 청계리 일부를 병합하여 신흥리(新興洞)로, 풍해면의 후창리 · 명호리 일부를 병합하여 후창리로, 풍해면의 무창리를 나진군 무창리로, 관해면의 낙산리 · 부광리를 병합하여 부광리(富磺里)로, 관해면의 소청리 일부 · 삼해면의 내포리를 병합하여 관해리(觀海里)로, 관해면의 관서리 · 구룡리를 병합하여 서리(西里)로, 관해면의 나석리 · 신흥리를 병합하여 나석리(羅石里)로, 삼해면의 노창리 · 사진리 · 남광리를 병합하여 노창리(蘆倉里)로, 삼해면의 수평리 · 농운리 · 가전리를 병합하여 삼해리(三海里)로, 부거면의 부거리 · 독동리를 병합하여 부거리(富居里)로, 부거면의 용제리를 나진군 용제리(龍濟里)로, 부거면의 판장리를 나진군 판장리(板長里)로, 풍해면의 방진리를 나진군 방진리(芳津里)로, 관해면의 이진리와 소청리 일부를 병합하여 이진리(梨津里)로, 부거면의 중평리를 나진군 중평리(仲坪里)로, 경성면의 어유리와 아양동 일부를 병합하여 어유리(漁游里)로, 부광리를 나진군 낙산노동자구(洛山勞動者區)로 각각 개편하였다.

그리고 1952년 군면리 대폐합 시에 경흥군 웅기면(雄基面) · 노서면(蘆西面)의 전체 리와 화방면(華方面)의 1개 리 · 경흥면(慶興面)의 3개 리 · 나진군 나진면의 1개 리를 통합하여 웅기군(雄基郡)을 신설하였는데, 이때 웅기면의 상현리 · 하현리 · 중현리를 통합하여 웅기읍(雄基邑)으로, 노서면의 홍의리와 증산리를 통합하여 홍의리(洪儀里)로, 노서면의 서수라리와 토리 일부를 통합하여 서수라리(西水羅里)로, 노서면의 굴포리 · 서포항리 · 대암리와 포리 일부를 통합하여 굴포리(屈浦里)로, 웅기면의 용수리와 송평리를 통합하여 용수리(龍水里)로, 경흥면의 사회리와 신회리 일부를 통합하여 사회리(四會里)로, 웅기면의 비파리와 나진면의 신해리를 통합하여 비파리(琵琶里)로, 웅기면의 철주리와 화방면의 유성리 · 나진면의 청계리 일부를 통합하여 철주리(鐵柱里)로, 웅기면의 백학리를 웅기군 백산리(白山里)로, 경흥면의 적지리를 웅기군 적지리(赤池里)로, 경흥면의 신회리 일부를 웅기군 신회리(新會里)로 각각 개편하여 1읍 14리를 관할하였다.

1953년에 나진군 관해리 일부 백학리(白鶴里)로, 웅기면의 관곡리를 웅기군 관곡리(寬谷里)로, 웅기면의 웅상리를 웅기군 웅상리(雄尙里)로, 노서면의 부포리를 웅기군 부포리(鮒浦里)로, 노서면의 조산리를 웅기군 조지역을 분리하여 나진군 서리에 편입하였고, 동시에 서리 일부 지역을 관해리에 편입하였다.

1954년에 나진군 중평리를 나진군 판장리에 편입하고 웅기군 용수리 일부가 웅기군 관곡리 · 웅기읍 · 백학리에, 웅기군 적지리 일부가 웅기군 홍의리에, 웅기군 비파리가 웅기군 용수리에 편입되었다.

그리고 웅기군 비파리의 일부 지역을 분리하여 신해리를 복귀하였다. 1958년에 나진리 일부 지역을 관해리에 편입하였으며, 1960년에 부령군의 교원리(橋院里), 연천리(連川里), 연진리(連津里), 마전리(麻田里), 사구리(沙口里)를 흡수하였다.

1961년에 신흥리, 안주리를 노동자구로 각각 승격하였고 판장리를 부거리에 편입하였다.

1967년 8월에 나진군의 일부 지역과 웅기군을 통합하여 나진시를 복귀하고 나진군의 나진읍을 분할하여 역전동(驛前洞) · 창평동(倉坪洞) · 지경동(地境洞) · 남산동(南山洞) · 동명동(東明洞) · 안화동(安和洞) · 신안동(新安洞) 등 7개 동으로, 신흥노동자구를 신흥동(新興洞) · 청계동(淸溪洞)으로 각각 분리하고 안주노동자구를 안주동(安住洞)으로 개편하였으며 웅기군 웅기읍을 상현동(上峴洞), 중현동(中峴洞), 하현동(下峴洞), 송평동(松坪洞)으로 분리 개편하였다.

동시에 백학리 일부로 백학일동(白鶴一洞)을, 백학리 나머지 일부와 관곡리를 병합하여 백학이동(白鶴二洞)을, 웅기군 홍의리 일부로 두만강노동자구(豆滿江勞動區)를 각각 신설하였다.

그리고 나진군의 연천리, 연진리, 마전리, 용제리, 부거리, 사구리, 교원리 등 7개 리를 청진시 부령구역에 이관하였고 나진군의 유현리, 후창리, 방진리, 무창리, 나진리, 관해리, 나석리, 서리, 삼해리, 노창리, 신해리, 낙산노동자구 등 리와 노동자구, 웅기군의 용수리, 철주리, 웅상리, 홍의리, 사회리, 조산리, 부포리, 굴포리, 서수라리 등 리를 각각 흡수하였으며 웅기군의 적지리를 홍의리에, 신회리를 사회리에 편입하였다.

1967년 10월에 나진시 일부를 분리하여 웅기군으로 다시 복귀하면서 홍의리를 웅기읍으로 개편하고 웅기군 산하에 웅기읍, 두만강노동자구, 웅상리, 사회리, 조산리, 부포리, 굴포리, 서수라리 등 1읍 1구 6리를 두었다.

그 해 11월에 웅기읍을 다시 홍의리로 강등하고, 웅상리를 웅기읍으로 승격하였다.

1968년에 웅기읍을 다시 웅상리로 강등하였으며, 나진시 상현동 · 중현동 · 하현동 · 송평동과 백학일동 일부를 병합하여 웅기읍으로 개편하였고, 나진시 백학이동 일부와 용수리 일부를 통합하여 관곡동(寬谷洞)을 신설하고, 용수리 나머지 일부를 신해리에 편입하였다.

동시에 백학일동과 백학이동의 각 일부를 통합하여 백학리(白鶴里)를 신설하고 웅기군에 편입하였으며 철주리를 웅기군에 이관하였고, 1972년에 삼해리를 노동자구로 승격하였다.

1973년에 나진시를 남산구역(南山區域), 신흥구역(新興區域), 관해구역(觀海區域) 등 3개 구역으로 구분하고 나진시의 관곡동 · 안화동 · 동명동 · 안주동 · 남산동 · 신해리와 신안동 · 지경동 각 일부 지역을 통합하여 남산구역을 구성하고 신안동 일부와 지경동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신안동으로, 신해리를 신해동으로 각각 개편하여 당시 남산구역 산하에 남산동, 신안동, 동명동, 안화동, 안주동, 신해동, 관곡동 등 7동을 두었다.

동시에 나진시의 청계동, 신흥동, 역전동, 창평동, 유현리와 신안동, 지경동 각 일부로 신흥구역을 구성하고 신안동과 지경동 각 일부를 병합하여 지경동(地境洞)으로, 유현리를 유현동으로 각각 개편하여 당시 신흥구역 산하에 역전동, 창평동, 지경동, 신흥동, 청계동, 유현동 등 6동을 두었다.

그 외 나진시의 관해리, 나석리, 삼해노동자구(三海勞動者區), 이진리, 낙산노동자구, 방진리, 후창리, 무창리, 노창리, 서리 등 10개 리와 노동자구로 관해구역을 구성하고 방진리, 이진리, 나석리를 노동자구로 승격하였으며, 관해리를 관해동으로 개편하여 당시 관해구역 산하에 10개 동, 리, 노동자구를 두었다.

1974년에 관해구역의 삼해노동자구, 나석노동자구, 이진노동자구, 낙산노동자구, 방진노동자구를 각각 동으로 개편하는 동시에 남산구역, 관해구역, 신흥구역을 폐지하고 구역에 소속된 동리 전체를 나진시에 직속시켰다.

1981년 10월에 나진시의 웅기군을 선봉군으로 개칭하면서 웅기읍을 선봉읍(先鋒邑)으로, 서수라리를 우암리(牛岩里)로 개칭하고, 웅상리를 웅상노동자구(雄尙勞動者區)로 개편하였다.

선봉군은 1991년에 이르러 1읍(선봉읍), 2구(웅상노동자구, 두만강노동자구), 7리(철주리, 백학리, 굴포리, 우암리, 조산리, 홍의리, 사회리)를 관할하다가, 1993년에 나진-선봉시 선봉군으로 개편되면서 함경북도 경흥군의 원정리(元汀里), 하회리(下檜里), 하여평리(下汝坪里)를 이관하고 철주리를 경흥군에 편입하였다.

1993년 9월에 나진시가 나진구역으로 되면서 관해동, 방진동, 낙산동, 나진동, 삼해동, 노창동, 나석동, 무창리, 서리 등 7동 2리를 청진시 청암구역에 이관하고 유현동, 안주동, 신해동, 관곡동, 창평동, 역전동, 남산동, 신안동, 지경동, 동명동, 안화동, 신흥동, 청계동, 후창리 등 13동 1리를 관할하였다.

1995년 3월에 청진시 청암구역의 무창리가 다시 나진구역에 귀속되어 13동(유현동, 안주동, 신해동, 관곡동, 창평동, 역전동, 남산동, 신안동, 지경동, 동명동, 안화동, 신흥동, 청계동), 2리(무창리, 후창리)를 관할하였다.

2000년 8월에 나진-선봉시가 나선직할시로 승격되면서 나진구역과 선봉군이 폐지되고 원 선봉군 선봉읍이 상현동 · 중현동 · 하현동 · 송평동 등으로 각각 분리되었으며, 원 선봉군 두만강노동자구가 두만강동으로, 웅상노동자구가 웅상동으로 각각 개편되고, 원 나진구역 안주동 일부가 해방동(解放洞)으로 개편되었다.

200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의하여 나선직할시가 폐지되고 지역전체가 함경북도에 소속되면서 나선시로 개편되었다.

2004년 1월 현재 행정구역은 20동(관곡동, 남산동, 동명동, 두만강동, 상현동, 송평동, 신안동, 신해동, 신흥동, 안주동, 안화동, 역전동, 웅상동, 유현동, 중현동, 지경동, 창평동, 청계동, 하현동, 해방동), 12리(굴포리, 무창리, 백학리, 부포리, 사회리, 우암리, 원정리, 조산리, 하여평리, 하회리, 홍의리, 후창리)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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