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산 역사

조선향토대백과 행정구역정보관 : 함경북도

칠보산 역사

분류 행정구역정보관>개관>역사
구분 5대명산>칠보산
행정구역 함경북도

칠보산 일대에는 칠보산의 오랜 역사를 보여주는 원시-고대 유적유물들과 중세 우리 선조들의 반침략투쟁과 슬기로운 재능과 지혜를 보여주는 읍성과 산성, 건물과 무덤, 비, 부도 등 유적유물이 적지 않게 발굴되어 전해지고 있다. 명천군 보촌리에서 발굴된 돌도끼 · 칼돌들, 화성군 · 어랑군 · 화대군에서 발굴된 돌활촉 · 돌창끝 · 질그릇들, 어랑군 양견리 하남마을의 고인돌무덤들 등은 원시-고대의 대표적인 유적유물이다.

명천읍성과 재덕산성 등 산성들과 개심사를 비롯한 절과 절터들, 새로운 영길을 개척한 정상인의 공적을 기념하여 세운 신도령비 등은 대표적인 역사유적으로 되어 있다. 개심사는 풍치 아름다운 내칠보의 보탁산에 위치해 있는데, 826년 발해 때에 창건되고 1377년 고려 때에 중창한 건물로서 조선시대에 여러 번 보수 개건되었다. 개심사는 원래 중심건물인 대웅전과 만세루, 향로각, 동서승방, 산신각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19세기에 이르러 향로각은 관음전으로, 동서승방은 각각 심검당, 음향각으로 개칭하게 되었다.

만세루는 20세기 초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왔으나 일제 강점 이후 파괴되어 광복 후 다시 축성하였다. 칠보산의 형성에 대하여서는 예로부터 다음 같은 전설도 전해지고 있다. 즉, 아득한 옛날 세상만물을 만들어내는 재간을 가진 조물주 노인이 하늘에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산 좋고 물 맑은 조선 땅에 내려와 경치 아름다운 명산을 만들어 주려고 요술자루에 흙을 가득 넣어 가지고 동해안 지방에 내려왔는데, 먼저 강원도 땅에 들려 요술주머니에서 흙을 절반쯤 쏟아 손으로 빚어 산세가 기묘한 명산을 만들어 놓은 즉, 바로 오늘의 금강산이라 한다.

노인이 남은 흙 자루를 다시 둘러메고 동해안을 따라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명승지를 만들만한 고장이 더 없겠는가고 두루 살피면서 오다보니 어느덧 어랑 땅에 들어섰는데, 이상하게도 그렇게 어깨를 짓누르던 흙 자루가 가벼워 보여 흙 자루를 내려놓고 살펴보니 자루 밑에 난 구멍으로 이미 흙이 거의 다 빠져 버렸던 것이라 한다. 그래서 노인이 다시 발길을 돌려 명천 땅에 와보니 흙은 이곳에 흘러서 산을 이루었고 그 사이 비에 씻겨 금강산 못지 않은 절경을 이룬 명산으로 되어 있으니, 그 산이 곧 칠보산이라 한다.

칠보산의 형성에 대하여 또 다른 한가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먼 옛날 동해 북부 바다가 맑은 물 속에서 천지를 뒤흔드는 우레 같은 소리와 함께 묘하게 생기고 보물이 많은 7개의 산이 불쑥 솟아올랐는데, 얼마 후 6개의 산은 다시 바다에 잠겨버리고 한 개 산(칠보산)만이 남아 있게 되어, 처음 나타난 보물산까지 합쳐 7개의 보물산이라 하여 칠보산이라 하였다 한다.

마지막 수정일

  • 2010.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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