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봉술

박봉술

[ 朴奉述 , 朴鳳述 ]

요약 성악가(판소리). 판소리명창. 중요무형문화재(重要無形文化財) 제5호 판소리(적벽가) 예능보유자. 호는 청운(靑雲). 전남 구례(求禮) 출생. 동일창극단(東一唱劇團 1947), 순흥창극단(順興唱劇團 1948), 순천국악원(順天國樂院 1957) 대표.
출생 - 사망 1922년 ~ 1989년
박봉술

박만조(朴萬朝)의 넷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7세 때부터 송만갑(宋萬甲)의 제자인 친형 박봉래(朴鳳來)에게 소리를 배우기 시작하여 10세 때 구례에서는 소년명창이 나왔다는 소문이 났다.

16세 때 조선성악연구회(朝鮮聲樂研究會)를 찾아가 송만갑의 문하에서 형에게 배운 소리를 바로잡고 새롭게 공부하여 아이명창으로 유명했으나, 변성기 때 목을 다쳐 음색이 거칠어졌다. 구례명창으로 1939년 5월 13일 부민관에서 열린 조선소리경창대회에 출연했다. 1940년 임방울(林芳蔚)이 주관하던 동일창극단에 입단하여 임방울·정광수·박초월 등과 함께 전국 순회공연을 하였다.

1953년부터 순천국악원의 판소리사범으로 있다가 1970년 조선일보사 방일영(方一榮) 회장의 도움으로 레코드를 취입하고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했다. 1973년 11월 1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赤壁歌)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제자로는 김일구(金一球)와 송순섭(宋順燮)이 있다.

1976년 11월 25일 제6회 판소리 유파발표회 때 출연했고, 12월 문화재관리국과 문화재보호협회가 공동 제작한 『한국의 음악』에 판소리 적벽가를 취입했다. 1977년 오정숙·박초월·성우향 등과 함께 한국브리태니커사의 뿌리깊은나무 판소리감상회에 출연하였다. 1978년 3월 28일 인간문화재 종합예술제 때 출연했고, 11월 29일 「공간 전통음악의 밤」 때 판소리 수궁가를 불렀으며, 1979년 10월 18일 제10회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발표공연 때, 그리고 12월 19일 제8회 중요무형문화재 상설극장 때 출연하였다.

1981년 10월 23일 중요무형문화재 발표공연 때 적벽가를 공연했고, 1982년 11월 4일 제13회 중요무형문화재 발표공연 때 출연하였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34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