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질국

음질국

분류 문학 > 국가 > 인도

기본정보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일대에 위치한 나라

일반정보

음질국(音質國)은 음즙벌국(音汁伐國)이라고도 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일대에 위치한 나라로 지마이사금 대 신라에 의해 압량국(押梁國)과 함께 멸망당하였다. 기록에 따라서는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 대에 신라에 편입되었다고 전하기도 한다.

음질국 본문 이미지 1

전문정보

음질국(音質國)은 현재의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일대에 위치했던 “국(國)”이다. 『삼국유사』 권1 왕력편에는 이 왕대에 압량국(押梁國)과 함께 신라에 멸망당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반면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파사이사금 23년(102)조와 같은 책 권34 잡지3에서는 음즙벌국(音汁伐國)이라 하고 파사이사금 23년(102)에 신라에 항복하였다고 하여 『삼국유사』 권1 왕력편의 기록과 차이를 보인다.

『삼국사기』 권1 신라본기1 파사왕 23년(102)조에는 음즙벌국이 신라에 항복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음즙벌국과 실직곡국(悉直谷國)이 서로 강역을 다투다 파사왕을 찾아와 해결해 주기를 청하였는데, 왕은 금관국(金官國)의 수로왕(首露王)에게 의논하여 다투던 땅을 음즙벌국에 속하게 하였다. 이에 왕이 6부에 명하여 수로왕을 위한 연회를 베풀게 하였는데 오직 한기부(漢祇部)만이 지위가 낮은 사람으로 주관케 하였으므로 수로왕이 노하여 자신의 종으로 하여금 한기부의 우두머리를 죽이게 하였다. 종은 도망쳐 음즙벌국의 우두머리 집에 의지하였는데, 왕이 사람을 시켜 그 종을 찾았으나 내어주지 않았다. 이에 왕이 노하여 음즙벌국을 공격하고 항복을 받아내었다고 한다.

음즙벌국과 영역을 다투었던 실직국(실직곡국)은 『삼국사기』 권35 잡지4 지리2 명주 삼척군조에서 “삼척군은 본래 실직국으로 파사왕 때 항복하였다.(三陟郡 本悉直國 婆娑王世來降)”라는 기록에 따라 지금의 삼척(三陟)에 비정하고 있다. 그런데 삼척의 실직국과 안강의 음즙벌국은 육로상 거리가 너무 멀어 영역 분쟁을 일으켰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때문에 실직국을 안강 부근의 흥해나 포항지역에 비정하거나(방용안, 1987), 또는 삼척의 실직국과 관련이 있으면서 청하·신광 등지에서 활동했던 예족(濊族) 계통의 세력집단과 읍즙벌국 사이에서 발생한 영토분쟁으로 이해하기도 한다(이형우, 2000). 한편 이와는 상이한 시각에서 양국의 영토분쟁은 동남해안 일대의 연안 해역을 둘러싼 수역분쟁으로 파악하기도 한다.(박대재, 1997)

참고문헌

방용안, 1987, 「悉直國에 대한 考察」 『江原史學』3.
박대재, 1997, 「辰韓 諸國의 규모와 정치발전단계」 『한국사학보』2.
이형우, 2000, 『新羅初期國家成長史硏究』, 영남대학교 출판부.

관련원문 및 해석

第六祇磨尼叱今[一作祇味 姓朴氏 父婆娑(王) 母史肖夫人 妃磨帝國王之女□禮<夫>人 一作愛禮金氏 壬子立 理二十三年 是王代滅音質國今安康 及押梁國今(梁)山]
제 6대 지마니질금. [혹은 지미라고 한다. 성은 박씨이다. 아버지는 파사왕이고 어머니는 사초부인이다. 왕비는 마제국왕의 딸 □례부인인데 애례라고도 하며 김씨이다. 임자년(112)에 즉위하여 23년을 다스렸다. 이 왕대에 음질국, 지금의 안강과 압량국, 지금의 양산을 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