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

이부

분류 문학 > 국가 > 중국

기본정보

일연(一然)이 한사군(漢四郡) 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평주도독부(平州都督府)와 동부도위부(東部都尉府)를 말한다.

일반정보

이부(二府)는 이외부(二外府)라고도 하며 『삼국유사』를 편찬한 일연(一然)이 한사군(漢四郡) 지역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평주도독부(平州都督府)와 동부도위부(東部都尉府)를 말한다. 그러나 현존하는 사료로는 평주도독부를 확인할 수 없는데, 이는 고려(高麗)의 평주(平州)를 중국의 평주(平州)와 혼동하였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전문정보

『삼국유사』 권1 기이1 마한조에는 마한(馬韓)에 이어 이부(二府)가 나오는데, 일연(一然)은 다음과 같은 풀이를 하였다. 『전한서(前漢書)』에 따르면 한(漢) 소제(昭帝) 시원(始元) 5년(기원전 82)에 이외부(二外府)를 두었다고 하는데, 이것은 조선 땅이었던 평나와 현도군을 평주도독부(平州都督府)로 삼고 임둔군과 낙랑군에 동부도위부(東部都尉府)를 둔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평나(平那)를 진번(眞番)으로 이해하였다.

일연의 이부(二府)에 대한 해석은 몇 가지 문제를 보이고 있다. 먼저, 『전한서(前漢書)』 즉, 『한서(漢書)』에는 조선에 이외부(二外府)를 설치했다는 기사가 보이지 않는다. 『한서』 본기7 소제기(昭帝紀)7 시원 5년조에는 “담이(儋耳)와 진번군(眞番郡)을 파하였다.(罷儋耳眞番郡)”고만 나올 뿐이다. 그리고 『후한서(後漢書)』 권85, 동이열전, 예전(濊傳)에도 “시원 5년에 임둔과 진번을 파하고 낙랑과 현도에 합하였다.(始元五年 罷臨屯眞番 以幷樂浪玄菟)”고 하여 4군을 2군으로 통합한 기사만 보일 뿐이다.

다음으로, 일연은 평나와 현도군에 평주도독부를 두었고 평나는 진번일 것이라 하였다. 여기에서 도독부(都督府)가 문제될 수 있다. 중국 정사에서 도독부가 처음 보이는 것은 진(晉, 265-418)의 역사를 담은 『진서(晉書)』로 7세기에 편찬된 것이다. 그런데 도독(都督)은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하위 관청에 머물렀을 뿐이며, 당(唐)대에 와서야 지방의 군정(軍政) 혹은 외지(外地)의 통치를 담당하는 기관으로 승격하였다.(유원적, 1985) 도독부의 설치시기와 그 지위를 보았을 때 한사군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평나와 평주의 관계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중국의 지명으로 평주(平州)를 언급할 수 있다.『진서(晉書)』 권14 지(志)4 지리(地理) 평주(平州)조에 의하면, “위(魏, 220-
265)는 동이교위를 설치하여 양평에 두고 현도(玄菟)․대방(帶方)․낙랑(樂浪) 등의 5군으로 나누어 평주로 하였다.(魏置東夷校尉 居襄平 而分遼東 昌黎 玄菟 帶方 樂浪 五郡爲平州)”고 한다. 이 사료에 따르면 평주의 관할 하에 3개의 옛 한군현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일연이 동부도위부에 속한다고 한 낙랑이 평주에 속해 있으며, 일연이 평나(平那)의 다른 명칭으로 이해한 진번은 5군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중국 사서를 보더라도 한반도와 관련하여 평나가 나오지 않으며, 더욱이 평나가 진번이라는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편 평나를 고려의 평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권41 평산도호부(平山都護府)조를 보면 조선의 평산은 평주로 이곳에 평나산(平那山)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나(那)를 한역하면 주(州)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고려사』 권58 지리3 평주조에 따르면 “평주(平州)는 원래 고구려의 대곡군(大谷郡)인데 ... 고려 초에 지금 명칭으로 고쳤다.(平州本高句麗大谷郡…高麗初更今名)”고 하였다. 즉, 평나가 평주로 바뀐 것은 고려시대이므로 평주도독부를 고려의 평주로 이해할 수 없다. 일연이 지금 전하지 않는 다른 자료를 볼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일연은 고려의 평주와 중국에 있는 평주를 혼동해서 이해한 결과일 수 있다.(三品彰英, 1975)

조선 후기의 실학자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은 『사군지(四郡志)』에서 이부(二府)는 잘못된 것이라 하면서, 다음과 같은 근거를 들며 비판하였다. 첫째, 『전한서』와 『후한서』에 이런 사실이 기록되지 않았으며, 둘째, 군과 현에 평나라는 이름이 없으며, 셋째 한대(漢代)에는 도독이라는 명칭이 없었다는 것이다.(정진헌, 1998) 그리고 일연이 언급한 이부는 『한서』 권28, 지리지8, 낙랑군조의 주(註)에 있는 동부도위와 남부도위를 잘못 이해했다는 견해도 있다.(강인구 외, 2002)

참고문헌

三品彰英, 1975, 『三國遺事考證』上, 塙書房.
유원적, 1985, 「唐前半期 都督府와 州의 通屬關係」『東洋史學硏究』22.
정진헌, 1998, 「四郡二府說에 대한 柳得恭의 批判」『慶熙史學』22.
강인구․김두진․김상현․장충식․황패강, 2002,『(譯註)三國遺事』Ⅰ, 이회문화사.

관련원문 및 해석

(『삼국유사』 권1 기이1 이부)
二府
前漢書 昭帝始元五年己亥 置二外府 謂朝鮮舊地平那及玄菟郡等 爲平州都督府 臨屯樂浪等 兩郡之地 置東部都尉府[私曰 朝鮮傳則眞番玄菟臨屯樂浪等四 今有平那無眞番 蓋一地二名也]
이부(二府)
『전한서(前漢書)』에 소제 시원 5년 기해(己亥)에 이외부(二外府)를 두었다 하니, 조선의 옛 땅인 평나(平那)와 현도군(玄菟郡) 등이 평주도독부(平州都督府)가 되고 임둔(臨屯)과 낙랑(樂浪) 등 두 군(郡)의 땅에 동부도위부(東部都尉府)를 둔 것을 말하는 것이다.[내 생각에는, (한서) 조선전(朝鮮傳)에 진번(眞番)・현도(玄菟)・임둔(臨屯)・낙랑(樂浪) 등의 넷이라 하였는데, 여기에는 평나(平那)가 있고 진번(眞番)이 없으니 아마 같은 지방의 두 이름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