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국리식토기

송국리식토기

[ 松菊里式土器 ]

송국리 54-5호 주거지 출토 송국리식토기

송국리 54-5호 주거지 출토 송국리식토기

한국의 청동기시대 중기에 부여 송국리 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금강유역에서 나타난 집자리 구조, 석기유물조합(遺物組合)을 주체로 하는 ‘송국리형문화(松菊里型文化)’ 형태로 일부는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의 서남부 지방으로 퍼지고 일부는 낙동강 서쪽의 영남지방까지 확산되었다. 1970년대 후반 송국리 유적 발굴을 계기로 송국리 유적에서 나온 토기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독특한 토기 형태로 다른 지역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기 때문에 ‘송국리식토기(松菊里式土器)’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토기 형태는 납작바닥에 작은 굽을 가졌으며, 계란모양으로 부풀은 몸통과 밖으로 바라진 짧은 입술부분이 특징인데 바탕흙이 고운 것과 그릇 표면이 거친 것 등 2가지가 있다. 그릇 모양은 단지 형태가 많고 긴목단지(長頸壺), 굽그릇, 바리(鉢) 등과 함께 나오고 있다. 그릇의 크기는 높이가 20~40㎝ 되는 것이 많고 작은 것은 10㎝ 안팎의 것도 있으며 큰 것은 높이가 80㎝나 되는 것도 있다. 한편 송국리식토기 바닥에 구멍을 뚫어 어린아이용 독널(甕棺)로 사용한 것이 있어 ‘송국리식옹관(松菊里式甕棺)’이라고 부른다. 무덤은 움(土壙)을 파고 독널을 세워놓은 뒤 덮개돌을 덮는 방식이다. 독널 주위에 둘레돌(護石)을 두르거나 덮개돌을 받치기 위해 고임돌을 놓은 경우도 있다.

송국리식토기는 송국리 유적을 비롯해 서산 해미 유적, 광주 송암동(松岩洞) 유적 등 집자리 유적에서 나오며 이들은 송국리 집자리와 구조가 같다. 송국리식토기는 B.C. 6~5세기 무렵에 나타난 토기 형식이다.

참고문헌

  • 韓國의 先原史土器(國立中央博物館, 1993년)
  • 松菊里 Ⅰ·Ⅱ·Ⅲ·Ⅳ·Ⅴ(국립중앙박물관, 1979년·1986년·1987년·1991년·199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