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끌

쇠끌

[ 鐵鑿 ]

부여 합송리. 길이 16.7cm

부여 합송리. 길이 16.7cm

사전적 의미로는 망치로 때려 나무에 구멍이나 홈을 파는 연장이다. 그러나 고대의 쇠끌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먼저 쇠끌의 형태는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투겁(銎部)을 가지며 평면 장방형(長方形)에 횡단면이 인부로 갈수록 좁아지는 형태의 것과 방형(方形) 또는 장방형의 날부분에 단면 원형 또는 방형의 자루가 붙은 것이 그것이다. 쇠끌은 주로 목재의 가공에 많이 사용되지만 그 형태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평면장방형의 쇠끌은 한국에서 철기의 개시부터 나타나는 대표적인 유물이다. 남한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철기 출토유적인 부여 합송리, 장수 남양리, 당진 소소리 유적에서 청동제품과 함께 출토된 것들이다. 처음 나타나는 유물은 모두 주조(鑄造)제품으로서 이전 시기의 청동끌이 철기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연화보 유적에서도 이와 유사한 제품이 주조쇠도끼(鑄造鐵斧)와 함께 공반 출토되고 있는데, 한반도 철기문화의 전개과정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유물들이다. 이후 이러한 형태의 쇠끌은 창원 다호리 유적등 널무덤(木棺墓) 유적에서 형태를 유지한 채 단조(鍛造)제품으로 생산된다. 덧널무덤(木槨墓)단계에 들면서 쇠끌은 이전의 것보다 세장(細長)한 형태로 변형이 일어나는데 울산 하대 유적, 부산 노포동 유적, 김해 양동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한편 자루가 달린 쇠끌의 형태는 대체로 삼국시대가 되어 등장하는데 그 출토 양은 그리 많지 않다. 대체로 삼국시대 대형 고분에서 출토되는데, 함안 도항리 고분등의 출토품이 대표적인 것이다. 시기가 늦어지면서 자루가 매우 길어진 형태가 보이며 김해 구산동 돌방무덤에서는 부장용의 소형모조품(小形模造品)으로 만들어진 것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의 청동기문화(국립중앙박물관, 199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