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방리식토기

묵방리식토기

[ 墨房里式土器 ]

평안남도 개천군 묵방리 대동강변에서 약 40여 기의 고인돌〔支石墓〕 유적발굴하는 과정에서 알려진 형식토기이다. 이 곳 고인돌은 납작한 판돌〔板石〕을 여러 겹 놓아 우물을 쌓듯이 쌓아올려서 ‘ㄷ’자형으로 무덤방〔墓室〕을 마련하고 그 위에 큰 뚜껑돌〔蓋石〕을 올려놓은 침촌형(沈村型)의 구조를 가졌다. 고인돌의 출토유물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진 것이 없으나 제24호 고인돌에서 나온 흑갈색의 간토기〔磨硏土器〕가 유명하다.

이 토기는 목 높이 6.8㎝, 몸체높이 12㎝, 전체 높이 20.8㎝이며 넓은 아가리에 긴 목이 달리고 배부른 중간쯤에 젖꼭지 손잡이가 달린 납작 밑 단지이다. 목 아래부터 손잡이까지의 윗부분에는 여러 번의 가는 줄로 이루어진 띠를 평행으로 두르고 그 내부에 다시 ‘ W ’자 모양으로 가는 줄의 띠무늬를 전면에 둘렀다. 전체 모습은 표주박의 아래위를 자른 듯하며 보고자들도 이 토기가 미송리에서 나온 단지와 같다고 하였다. 다만 미송리단지보다 아가리 부분이 좀 더 길어지고 더 넓게 퍼지며 몸체부분의 무늬가 다르다.

묵방리식토기(墨房里式土器)는 미송리식토기(美松里式土器)의 후기형으로 여겨져 왔는데, 이는 묵방리 고인돌이 고인돌유형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의 것으로 편년되는 것과 궤를 같이한다. 따라서 최근 북한에서 고조선의 성립연대를 기원전 3000년 기로, 그 중심지는 평양지방이며, 이에 따라 미송리식토기가 대동강유역의 팽이모양토기〔角形土器〕 2기로 편입되는 논의에서도 묵방리식토기는 여전히 그 다음 시기(팽이모양토기 3기)로 편년되는 데는 변함이 없다.

현재 묵방리식토기 및 고인돌은 기원전 3000년기 전반기에 끝난 침촌형 고인돌 4형식을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서 보아 기원전 3000년기 후반기로 편년되고 있으며 팽이모양토기 4기는 묵방리식토기보다 굽 부분이 더 좁아지며 삼각형의 무늬 모티프 안을 잘 마연한 남양형단지유형이라는 것이 주장되고 있다. 미송리식, 묵방리식, 남양식토기 전부를 통괄하여 조롱박형단지로 부르기도 한다. (신숙정)

참고문헌

  • 평안남도 개천군 묵방리 고인돌 발굴 중간보고(김기웅, 각지유적 정리보고, 고고학자료집 제3집, 1963년)
  • 팽이그릇문화의 편년에 대하여(서국태, 조선고고연구 2, 1996년)
  • 새로 발견된 남양형 단지에 대하여(서국태·김광철, 조선고고연구 2, 199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