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의 조각

현대의 조각

비겔란 조각공원 모놀리트

비겔란 조각공원 모놀리트

회화에서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기존의 전통과는 현저히 구별되는 혁신들을 시도하며 근대 회화(modern painting)의 길을 연 반면, 조각 분야에서는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그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오귀스트 로댕과 현대 조각의 시작

현대조각은 오귀스트 로댕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조각의 독립성을 최초로 각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각의 독립성이란 조각을 특정 주제나 기능에 종속되지 않은 독립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조각 자체의 내적 생명성에 주목하여 작품의 재료와 구조 역시 어떤 서사나 맥락 속에서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인식으로 말미암아 조각에서 형상뿐 아니라 양감과 중량감·공간감 등의 요소 또한 중요하게 다루어지게 되었으며, 흙 또한 단순히 물리적 재료가 아닌 풍부한 표현가능성을 지닌 매체로 파악하게 되었다.

초기의 현대조각

현대조각의 초기에는 조각에만 몰두하던 조각가보다는 회화 작업을 하던 화가에 의해 조각의 층위가 두터워지는 양상이 나타났다. 인상주의 화가였던 에드가 드가의 작품은 회화에서도 나타났던 '무용수'라는 주제 및 스쳐지나가는 순간의 포착이라는 드가의 관심을 보여주면서도 조각이라는 매체에서 구현할 수 있는 균형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드러냈다. 그 외에도 오노레 도미에, 앙리 마티스,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등이 각자 회화에서 추구하던 인상주의, 입체주의, 표현주의, 초현실주의 등의 개념을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구현하였다. 예를 들어 피카소의 《기타》(1914)는 조각의 전통적인 기법이었던 깎기나 빚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재료를 한 데 모은 아상블라주의 기법을 도입했으며, 파편화된 조각의 표면을 보여주면서 입체주의의 개념도 반영했다.

전통적 조각 개념과 기법의 변화

20세기 조각가들은 아카데미와 고전이라는 전통에 반기를 들고 로댕의 혁신을 근간으로 참신한 구성과 주제를 모색했다. 20세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조각의 흐름 속에서 조각의 자연주의적·재현적 성격은 물론 양감과 중량감, 부동성(immobility), 주변 공간 및 관객과의 관계 등의 측면에서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조각 개념은 전복되거나 재해석되었다. 돌·금속·나무·상아·석고·점토와 같은 전통적인 조각 재료, 그리고 깎기와 빚기(carving and modeling)에서 벗어난 다양한 제작 기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 추상 조각의 등장
현대조각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시작점을 전통적으로 조각을 지배해왔던 자연주의적 규범, 즉 재현과 모방의 전통으로부터의 단절이라 보기도 한다. 콩스탕탱 브란쿠시를 비롯한 20세기 조각가들은 재현의 전통에서 벗어나 추상으로 나아갔다. 브랑쿠시의 《공간의 새》와 같은 작품은 제목을 통해 새라는 주제를 암시하면서도 유기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로 새로운 형식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반면 블라디미르 타틀린의 <제3 인터내셔널 기념탑》을 비롯한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의 조각은 건축적이고 구조적인 추상적 형태를 보여주었다.

1930년대 영국에서는 헨리 무어와 바버라 헵워스 등이 브랑쿠시 등의 영향을 받은 유기적고 단순한 형태의 추상 조각을 통해 내적 생명을 표현하고자 했다. 이들은 채워진 공간 못지않게 비어있는 공간(void)에도 주목하며 조각의 공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이끌었다.

이러한 20세기 초중반 조각가들의 형태와 공간에 대한 다양한 실험에 힘입어 현재까지 다양한 추상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있다.

◎ 새로운 재료의 사용
20세기 이후에는 조각의 양감과 부피감·중량감과 같은 요소들에 대한 개념도 점차 변화했다. 앙투안 페브스너나움 가보  등은 얇은 플라스틱이나 금속판, 유리, 나일론과 같은 재료를 사용한 다수의 추상조각 작품을 제작했으며, 특히 나움 가보는 조각가를 '기술자'라고 칭하며 여러 공업적·산업적 재료와 기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한편 스위스의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걸어가는 사람》과 같은 작품에서 양감과 부피감을 배제하고, 철사 등을 사용해 가느다랗고 길게 표현한 거칠고 깡마른 인체 형상을 통해 인간의 고독과 실존을 형상화하며, 실존주의 조각의 지평을 열었다.

1960년대 미국에서 나타난 미니멀리즘 조각은 산업적 재료를 주로 사용한 기하학적이고 반복적이며 익명적인 형태를 선보였다. 한편 에바 헤세는 미니멀리즘 조각과 유사한 형태를 지녔으나 그 단단하고 공산품적인 감각과는 대비되는 유동적이면서도 비영구적인 작품을 만들었다. 천과 노끈, 그물, 라텍스, 합성수지, 유리섬유와 같은 섬세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손상되기 쉬운 재료를 사용한 헤세의 조각은 조각의 견고함, 영구성 등과 같은 개념을 다시 생각하도록 했다. 

요셉 보이스 역시 그의 전쟁 중 경험을 상기시키는 작품을 전개하며 1950년대에는 나무조각과 불에 탄 재료를, 1960년대에는 구리, 나무, 펠트천, 비계덩어리, 뼈, 꿀, 밀랍 등을 소재로 한 작업을 선보였다.

◎ 움직이는 조각(kinetic sculpture)의 등장
마르셀 뒤샹은 1913년 원형 의자 위에 자전거 바퀴를 설치한 《자전거 바퀴 Bicycle Wheel》란 작품에서 조각에 '움직임'이라는 개념을 가져왔는데, 이 작품은 키네틱 조각이면서도 '레디메이드'로서 의미가 있다. 앞서 설명한 나움 가보 역시 모터에 의해 진동하는 철사 등으로 구성된 ‘키네틱 조각’을 시도하며 작품에 시간과 운동의 개념을 가져오고자 했다. 미국의 알렉산더 칼더모빌을 고안하며 본격적으로 키네틱 아트의 황금기를 이끌었고, 1950~60년대를 거쳐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더욱 본격적인 키네틱 조각이 제작되었다.

◎ 레디메이드와 조각 개념의 확장
마르셀 뒤샹은 앞서 언급한 《자전거 바퀴》(1913)와 《》(1917) 등의 작품을 통해 기성품(ready-made)을 그대로 예술 작품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레디메이드  작업은 전통적인 조각 개념은 예술 개념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손의 기술과 노동의 시간이란 조각 제작과정의 물리적 조건과 그 전제 또한 변화하게 되었으며, 특히 첨단 기술공학의 발달과 함께  ‘테크놀로지 아트’가 등장하면서 조각의 범위는 더욱 확장되었다.

1960년대 미니멀리즘 이후 나타난 개념미술, 대지미술, 프로세스 아트, 그리고 이후의 디지털아트, 미디어아트공공미술 등 미술의 다양한 경향 속에서 조각의 형태와 개념, 재료와 기법은 지속적으로 변화했다. 오늘날의 조각은 어떤 재료나 기법, 형태와 연관되지 않게 되었고, 다만 ‘입체적인 형태를 제작한다’는 조각의 핵심적인 개념만이 현재까지도 유지되어 조각이라는 매체를 정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