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의 건축

이집트의 건축

하트셉수트 여왕 신전

하트셉수트 여왕 신전

이집트 건축에서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는 것은 거대한 무덤과 신전이다. 이들은 현세보다 내세를 중시하는 이집트인의 종교관을 충실히 반영했다. 이집트 건축에서의 특이점은 석재와 같은 견고한 재료의 사용, 대칭성 및 기하학적 완벽성에 대한 추구, 정교하고 정확한 기술 등이며, 이러한 특징들 또한 '영원성'에 대한 종교적 신념과 결부되어 있다.

분묘 건축

이집트인들은 현세에서의 주택은 일시적 거처에 불과하고, 사후세계에 대한 믿음 속에서 그들의 분묘가 영원한 주거는 독특한 의식을 지녔다. 이를 바탕으로 무덤에 많은 공을 들였으며, 죽은 이의 시체는 미라로 만들어 보관되었다. 사자(死者)의 영혼이 머무르는 곳으로서 무덤은 여러 개의 방으로 이루어졌고, 각각의 방은 다양한 매장품과 이집트인들의 역사와 일상생활의 모습 등을 생생하게 묘사한 화려한 채색부조 및 조각 들로 채워졌다.

◎ 마스타바
건축상 주목되는 최초의 분묘형식은 왕조 성립기 전후에 나타난 왕과 귀족의 묘인 '마스타바(Mastaba)'로, 주로 멤피스 근처에서 발견된다. '마스타바'는 아랍어로 '긴 의자'라는 의미를 가진다. 초기에는 직사각형 형태였으나 이후 사다리꼴로 나타나기도 했으며, 진흙과 석재가 함께 사용되었다. 무덤의 내부는 매장실과 일련의 방, 통로로 구성되었으며, 무덤 외부의 동쪽 남단에는 예배실이 만들어져 있다. 마스타바의 내부는 실제로는 막혀있으나 문의 형태를 한 벽감의 구조가 나타나는데, 이는 사자(死者)의 영혼이 오가는 통로로 인식되었다.

◎ 계단식 피라미드
제3왕조의 조세르(Djoser, 재위 BC 2668~BC 2649) 왕은 사카라(Saqqara)에 여섯 단의 마스타바를 쌓아올린 형태의 계단식 피라미드를 구축했다. 최초로 계단식 피라미드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은 임호텝(Imhotep)으로 기원전 2660년 무렵, 한 변이 63m에 달하는 직사각형의 석조 마스타바를 이용해 계단식 피라미드를 건조했다. 이는 세계 최초의 석조 건축물이라 알려져 있기도 한데, 이전에는 석재가 부분적으로 사용되었던 반면, 이 피라미드는 오직 석재만으로 구축되었기 때문이다.

◎ 방추형 피라미드
제4왕조부터 왕의 분묘는 표면이 매끈한 정사각 추형(錐形)의 피라미드로 제작되었다. 잘 알려진 기자의 피라미드는 북쪽부터 쿠푸·카프레·멘카우레 파라오의 것으로, 가장 큰 쿠푸 왕의 피라미드는 높이 146.5m, 평균 2.5톤(t)의 돌 230만 개를 사용해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피라미드는 정사각추의 석축과 예배소, 나일강변의 신전, 예배소와 신전을 연결하는 지붕 덮힌 낭하(廊下) 등 4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1왕조의 멘투호테프 2세멘투호테프 3세의 분묘는 테베의 데르 엘-부하리(Deir el-Bahari)에 있으며, 마스타바에 피라미드를 얹은 형태로 제작되어 있다.제12왕조의 왕들은 나일강의 서안 파이윰(Faiyum)에 규모가 작고 양건 벽돌로 제작된 피라미드를 세웠다. 중왕국 시대에 중(中)이집트 등 사막이 나일강 가까이까지 뻗은 지방에서는 귀족의 분묘를 절벽 중턱에 설치하였다. 신왕국 시대 왕들의 분묘는 테베의 '왕가의 계곡'에 횡혈식으로 만들어졌고, 도굴에 대비하여 입구는 비밀로 제작되었다. 한편 예배를 위한 장제전(葬祭殿)은 멀리 떨어진 사막의 대지 끝이나 평지 위에 세워졌다.

거대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데는 20여년 가까이의 긴 시간, 성인남성 10만 명에 준하는 노동력 등이 투입되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돌을 나르고 자르고 쌓아올리는 데에는 지렛대, 미끄럼틀, 썰매와 같은 도구와 그와 관련한 과학적, 수학적 지식이 동반되었다. 이러한 피라미드는 그 구조와 재료, 기하학적 정밀성과 완벽성 등의 측면에서 이집트인의 영원성에 대한 추구를 보여주며, 당시의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기도 한다.

신전 건축

이집트의 신전 건축은 크게 '장제용 신전'과 '예배용 신전'으로 구분된다. 장제용 신전은 무덤인 피라미드와 사원을 결합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예배용 신전은 태양신 라(Ra)를 비롯한 이집트 여러 신의 제사를 지내는 장소였다.

◎ 장제용 신전
신왕국시대의 장제용 신전은 대부분 서부 테베(Thebae)의 변두리 사막지대를 따라 건축되었으며, 그 예외로는 델 엘 부하리에 있는 하트솁수트 여왕의 장제전이 있다. 이 신전의 건축적 특징은 산 절벽 발판에서 암벽을 등지고 있는 위치에서 발현된 것으로, 전체적으로 주변 암벽 등의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룬다. 여왕의 장제전은 경사진 길로 연결된 3개의 단 중에서 가장 위에 있는데, 중정(中庭) 둘레에 열주를 세운 형식으로, 배경을 이루는 단애의 경관과 잘 조화되고 있다. 세 개의 테라스 위는 붉은 화강석으로 만든 스핑크스와 여왕의 탄생 및 업적을 설명하는 부조가 있다.

람세스 2세의 장제전인 라메세움, 메디네트 하부에 있는 람세스 3세의 장제전 등은 사자와 함께 신들이 모셔져 있었으므로, 그 설계는 신전과 거의 비슷하였다. 신전에는 고왕국 시대의 것으로 제5왕조의 태양신 '라(Re/Ra)'의 신전형식이 밝혀져 있으며, 상하가 압축된 모양의 오벨리스크를 예배의 대상으로 삼았다. 중왕국시대의 신전은 거의 남아 있지 않으며, 현존하는 것은 신왕국시대 및 말기의 것이 대부분이다. 예배용 신전의 대표적인 유적은 오랜 세기에 걸쳐 테베에 세워진 대성전들로 가장 고도로 발달한 형식을 이루었다.

◎ 예배용 신전
전형적인 신전 건축은 거대한 현관과 열주가 늘어서 있는 마당, 많은 기둥으로 둘러싸인 회랑, 예배당 등을 포함했다. 이러한 형식은 예배 신전의 하나인 카르나크콘스(Khonsu) 신전에서 잘 나타난다. 양쪽에 스핑크스가 늘어선 참배도(參拜道)가 끝나는 곳에 오벨리스크를 전면에 세운 탑문(塔門)이 있으며, 안으로 들어가면 뜰이 있고 좌우에 별주랑(別柱廊)이 있다. 뜰 안쪽에 현관이 있으며, 그 곳을 지나면 다주실(多柱室)이 된다. 다주실 안쪽은 신관(神官)이나 왕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 특별한 날에 콘스 신상을 얹어 나르는 성주(聖舟)를 격납(格納)하는 방과 그 밖의 방이 있고, 가장 안쪽 벽에 붙은 콘스 신상을 안치하는 방을 중심으로 3개의 방이 있다. 카르나크의 아몬 대신전, 룩소르신전 등은 규모도 크고 형식도 복잡하지만, 부분적인 요소는 콘스 신전의 형식과 유사하다. 이 형식은 덴데라·에드푸·필라에 등 말기의 신전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그 외에도 사막이 나일 강변까지 근접한 지방에는 신전의 대부분 또는 일부를 단애 속으로 파들어가서 만든 암굴신전·반암굴신전도 있다. 아스완댐의 건조에 따라 절단(切斷)하여 이전한 아부심벨의신전은 전자의 예이다.

◎ 기둥
이집트 건축의 특징적인 기둥 형식은 신전 건축에서 잘 나타나는데, 네모난 기둥에는 여신 하트호르(Hathor)의 두부(頭部)를 주두부(柱頭部)에 부조로 새긴 것 '하트호르 기둥'과 수의(壽衣)를 입은 왕의 상(像)을 그 앞에 세운 '오시리스 기둥' 등이 있으며, 원주(圓柱)에는 8면 또는 16면 등으로 이루어진 프로토-도리스(proto-doric) 형식의 기둥과 각종 식물(야자·연꽃·파피루스)을 모티프로 한 것 등 여러 형태가 있다. 부속 건물을 망라한 전체 신전은 진흙 벽돌로 만든 거대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이는 일상 공간과 신성한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했다.

일반 건축

분묘나 신전이 석재를 사용하여 견고하게 세워진 데 반하여, 세속 건축은 주로 양건 벽돌이나 목재 등을 사용하였다. 제18왕조의 이단왕(異端王) 이크나톤이 천도하였던 수도 텔 엘 아마르나에서는 정궁(正宮)과 이궁(離宮), 고관의 저택, 새 수도 건설에 종사한 기술자의 집합주택 유구(遺構)가 발견되었다.

◎ 후대 영향
이집트 건축은 이후 건축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헬레니즘-그리스 문화 및 로마 건축 등에서는 여러 이집트적 요소가 등장하며, 이후 신고전주의와 아르데코 건축 등에도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건축적 요소를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