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왕국

고왕국

[ Old Kingdom , 古王國 ]

요약 고대 이집트문명 최초의 번영기인 제3왕조(BC 2686년경)에서 제6왕조(BC 2181년경)까지의 시대.
카프레왕 피라미드

카프레왕 피라미드

이집트 역사상 가장 특징 있는 피미드가 건설된 시대이므로 피라미드시대라고 한다. 학자에 따라 그 시기를 다르게 추정하는데, 시작 연대를 가장 빠르게 추정하는 경우 BC 27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왕조가 중왕조로 이어지는 연대를 가장 후대로 측정하는 경우 BC 2134년으로 보기도 한다. 제3왕조 때 수도가 멤피스로 옮겨졌기 때문에 멤피스시대라고도 한다.

제3왕조의 파라오 중 제 2대 파라오 조세르(Djoser, BC 2630-2611 재위) 재위 당시 건축가 임호텝(Imhotep)이 사카라(Saqqara)에 계단식 피라미드를 설계, 건설하는데 이것이 최초의 피라미드이다.

여기에 묻힌 왕은 호루스신(神)이며, 계단은 천공(天空)에 오르는 길을 의미하였다. 이 계단식 피라미드의 규모는 동서로 121m, 남북으로 109m, 높이가 60m 에 달한다. 그러나 임호텝 사망 후에 건설된 피라미드는 많은 것이 미완성에 그쳤으나, 완성도가 높지 않아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가 제 3왕조의 마지막 파라오인 후니(Huni)가 계단식 피라미드를 완성한 뒤에 그 계단을 메워나가는 방식을 사용함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알려진 형태의 피라미드가 등장하게 되었다.

제4왕조의 파라오 스네프루 시대(BC 2575-2551 재위)에는 새로운 태양신 라(Ra)가 등장하였고, 최초로 계단이 없는 피라미드가 건조되었다. 이 피라미드는 외형을 평활하게 만든 거석(巨石)을 쌓아 올렸다. 제4∼6왕조 시대는 거대한 피라미드 건조시대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대규모의 노동력을 구사할 수 있는 강력한 왕권이 확립되어 있었음을 말해주며, 실제로 고왕국시대 초기부터 중앙정권이 크게 안정되어 어떤 지방 세력도 파라오의 권위에 절대 복종하게 되었다.

파라오의 권위가 높아진 만큼 대규모의 석재 피라미드 건설이 활발해졌으며, 전 왕들의 묘에 비해 새 묘역의 규모가 무려 60배에 달할 정도로 파라오의 권력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특히 스네프루의 아들 쿠푸(BC 2551-2528 재위)의 등극화 함께 피라미드 본격적인 피라미드 건설이 시작되었으며, 현재 카이로 교외의 기자(Giza)에 있는 쿠푸 피라미드에 이어 제드흐라, 카프라, 멘카우레, 세프세스카프 등의 파라오도 제각기 피라미드를 건설했다.

그러나 고왕국 제5왕조에 들어서면서 파라오의 권위는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중앙집권적 통치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고관대적들의 노력과 봉사가 필요 했으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그들의 권한과 영역이 점차 확대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파라오의 즉위식, 신전 건설, 거대한 피라미드 건설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의 증대는 국가재정의 궁핍을 가져 왔으며, 각 지방의 총독이나 봉건귀족의 권한과 영역이 점차 확대되어 사유지가 증가해 세수가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악화되어 제6왕조에 들어와서는 파라오 왕조가 소생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졌다. 여기에 더해 당시 아프리카와 근동 지방을 휩쓸었던 기후의 변화로 인해 저지대인 나일강 유역이 크게 범람하고, 이집트의 관개 농업 시설이 엉망이 되었다. 결국 제 6왕조의 마지막 왕 페피 2세(BC 2246-2152 재위)를 마지막으로 고왕국이 끝나게 되며, 이집트는 쉽게 안정을 찾지 못하고 봉건 제후의 출현과 민중의 반란이 반복되는 혼란스러운 제 1 중간기에 들어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