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왕국 시대의 이집트

중왕국 시대의 이집트

이집트의 중왕국시대는 제11~제12왕조(BC 2040?∼BC 1758?)시대를 말한다. 고왕국이 몰락하며 시작된 제 1중간기에 이집트 전역에서 여러 지방세력들이 등장했으며, 이 중 하나가 상이집트의 테베(Thebes)를 중심으로 하는 안테프 1세(Antef  I : BC 2134~2118 재위)였다. 안테프 1세를 시작으로 하는 제 11왕조는 상·하 이집트를 모두 통합하고자 했으며, 북부의 헤라클리오폴리스(Heraclopolis)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제 9, 10왕조와 대립했다.

약 50여 년의 대립 끝에 제 11왕조의 4번째 왕 멘투호텝 2세(Mentuhotep II : 2061~2010 재위)때인 2040년에 이르러 상· 하 이집트가 다시 통합되었으며, 이집트 중왕국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후 테베는 약 1,000년 동안 이집트의 정치 ·종교의 중심지로서 번영하였다.

멘투호텝 2세는 또한 장기간 방치되었던 누비아에 원정하여 콥토스에서 와디 함마마트에 이르는 도로를 정비하고 시나이 반도와 푼트 지방에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는 테베의 서쪽 교외 델 엘 부하리의 벼랑에 붙은 새로운 양식의 장제전(葬祭殿)을 건설하였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들은 통일을 유지할 힘이 없어 이집트는 한때 혼란에 빠지게 되며, 11왕조의 마지막 파라오 멘투호텝 4세(Mentuhptep Ⅳ : BC 1998~1991 재위)때에 이르러 왕위는 재상으로 있었던 아메넘헤트 1세(Amenemhat I : BC 1991~1962 재위)에게 넘어갔다. 

아메넘헤트 1세는 제 12왕조를 열었으며, 중왕국은 번영의 극점에 이른다. 특히 부친 아메넘헤트 1세의  불안정한 정권을 보조하기 위해 공동섭정자로 나섰던 세소스트리스 1세(Sesostris I : BC1971~1926 재위)가 이집트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중왕국은 주변 지역들을 지배하며 강국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세소스트리스 1세는 제3폭포까지 군대를 파견하여 금광을 개발하였다. 그러나 지방의 세력은 여전히 강했으므로 노모스의 세력을 장악하고 참된 의미에서 국토통일을 완성한 것은 세소스트리스 3세(Sesostris Ⅲ:BC 1878~1842 재위)의 시대에 이르러서였다. 그는 북상하는 니그로를 토벌하여 누비아를 지배하였고 각처에 성채(城砦)를 설치하고, 팔레스티나에 원정하였다. 이 시대의 교역은 시리아 ·크레타에까지 미쳤다. 다음의 아메넴헤트 3세는 국내의 정치에만 힘썼는데, 특히 댐과 관개용수로를 만들었고, 파이윰 지방을 개척하여 경지의 증대에 성공하였다.

제12왕조의 왕들은 파이윰의 북동에 있는 리셰트로 도읍을 옮겼기 때문에 리셰트 ·하와라 등지에 피라미드나 신전이 조영되었다. 이 시대는 민중이 귀족에 대신하여 힘을 얻어 관리에 등용되었고 농노에서 자유민으로 되는 길도 열리는 등 이집트의 역사 가운데서 비교적 민중의 힘이 인정되었던 시대였다. 이러한 경향은 신앙상에도 나타나 사후의 세계는 왕이나 귀족들의 독점물이 아니고, 민중들도 미라가 되어 공동묘지에 매장됨으로써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었다.

종교 ·문학면에서도 피라미드 텍스트에 대신하여 관(棺)의 주위에 표시된 코핀 텍스트는 일반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였다. 또한 중왕국시대는 일반 문학(산문)이 가장 발달한 시대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最古)의 모험기행이라고 할 수 있는 《시누에의 이야기》는 이집트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며 그 밖에 푼트 교역을 취급한 《난파선 이야기》와 사회적 관심을 나타낸 《능변의 농부 이야기》 등이 있다. 이것은 시대를 반영하고 서사(書寫) 재료로서 파피루스의 두루마리가 사용되었고, 서체도 쓰기 쉬운 행서체로 옮겨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밖에 파피루스는 《기하학서》(린도 파피루스) 《외과서》(에드윈스미스 파피루스) 《치병(治病)의 서》(에베루스 파피루스) 등 학술적인 것에까지 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