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불교미술

한국의 불교미술

연주암 금륜보전 탱화

연주암 금륜보전 탱화

한반도에서는 4세기 불교가 전래되며 조형미술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비록 불교 자체는 외래 종교였으나, 고구려 시대 수용된 이래 백제신라에까지 전파되며 독자적으로 전개되었고, 그 조형활동 역시 삼국의 특성을 반영하며 다채롭게 발전하였다. 통일신라시대 이후에도 그 전통은 계승되어 더욱 활발한 활동이 전개되었고, 이후 고려는 물론 조선시대에 들어서 까지도 불교미술은 역사 속에서 다양한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며 한국 고미술의 주류를 이루었다.

기원과 발전

372년(소수림왕 2년)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순도(順道)가 불상과 함께 불경을 들여왔으며, 375년(소수림왕 5년)에는 최초의 사찰인 초문사(肖門寺, 성문사)와 이불란사(伊弗蘭寺)가 건립되어 고구려 불교의 시초를 이루었다. 한국의 불교는 고구려를 기점으로 백제(384년경)와 신라(527년경)에도 잇달아 전해지면서 곧 한반도의 사상체계와 신앙을 하나로 일체화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각국에서의 조형활동은 각각의 성격을 반영하며 발전했는데, 일반적으로 고구려미술은 장엄하고 웅대하며, 백제미술은 우아하고 섬세하고, 신라미술은 화려하며 조화롭다고 특징지어진다.

삼국에서 국가적 후원을 받으며 발전한 불교미술은 통일신라시대 절정기를 이루었다고 평가된다. 통일신라는 고구려와 백제의 문화를 수용하고, 중국 당의 문화 또한 받아들였으며, 안정된 정치사회적 상황 속에서 높은 문화수준을 이룩하였다. 불교미술에 있어서는 뛰어난 기술과 깊은 신앙심을 바탕으로 다수의 사찰과 불상이 제작되었다. 세련된 기교와 정교함을 특징으로 하는 금속 공예가 매우 발달하였으며, 돌을 재료로 한 석조기법 또한 높은 수준을 이루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걸작으로는 석굴암과 그 안의 본존불 및 불상들이 있으며, 불국사와 석가탑, 다보탑, 성덕대왕신종 등도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 유적이다.

통일신라 이후 고려시대 역시 불교를 국교로 하여 불교미술은 새롭고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고려시대 불교미술은 시대적 특성을 반영해 우아하고 귀족적인 성격을 지녔다고 평가되며, 중국 송나라와의 교류를 통한 영향 또한 나타난다. 건국 초부터 개성에는 대규모의 불교 사찰이 다수 건립되었고, 거대한 석불 조각 등의 불교 조각이 활발히 제작되었다. 또한 <아미타삼존도 (阿彌陀三尊圖)> 와 같은 고려시대 불화는 한국 불교회화의 높은 수준을 보여준다. 통일신라 후기부터 크게 유행하기 시작한 선종(禪宗)이 보다 대두되며 고려시대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의식과 장엄에 사용될 다채롭고 화려한 각종 금속공예품이 발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성리학(性理學)을 국가이념으로 삼고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을 펼치면서 불교의 위축과 더불어 그 미술 활동도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다. 전국 각지의 불사(佛寺) 건축물을 비롯한 모든 조형활동은 점차 퇴조하게 되었으며, 임진왜란병자호란 등의 전화(戰禍)로 말미암아 수천년의 전통을 이어온 민족문화재가 수난을 당해 황폐화하는 시련기를 거치게 되었다.

주요 특징

한반도 내에서도 불교미술은 시대별, 지역별 특징을 반영하며 발전하였다.

불교건축에 있어서는 다수의 사찰이 목조 건물로 지어졌는데, 고려 이전의 사찰은 남아있지 않으나 여러 유구(遺構)의 발굴을 통해 그 규모와 배치 등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건축술이 특히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으며, 고려시대에는 초기에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계승하다 점차 고려의 개성이 가미되었다고 여겨진다. 한국의 사찰 또한 목탑 혹은 석탑의 탑파(塔婆)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특히 화강석을 주재료로 한 한국의 석탑은 그 독특한 양식과 우수성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석탑은 백제시대 발생하고 확산되어 이후 시대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표적으로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부여의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있다. 백제 석탑이 목탑 양식에 기초했던 것과는 달리 신라의 석탑은 벽돌로 만들어진 전탑(塼塔)을 기초로 하였으며, 대표적으로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이 있다. 이후 통일신라는 백제와 신라의 각기 다른 양식을 종합해 특색 있는 양식으로 발전시켰으며, 그 예는 불국사의 다보탑 등에서 찾을 수 있다. 고려시대부터는 이전 시대의 전통 양식을 계승하며 지역적 특색을 가미하였다.

한국 초기의 불교조각은 중국의 사례를 바탕으로 했으나, 이후 불교가 확산되고 독자적으로 전개되며 각 국의 특성에 맞는 양식으로 변화하였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금동불이 다수 제작되다가 이후에는 석조 불상도 다수 조형되었다. 신라에서는 미륵보살의 반가사유상이 특기할만하며, 통일신라시대에는 특히 8세기경 조각 미술이 전성기를 이루었다고 평가받으며 그 정점을 석굴암 내 본존불로 꼽는다. 고려시대에는 금동뿐 아니라 철불이 조성되었고, 다수의 석불상도 전해진다.

회화에 있어서는 삼국시대 초 불교 사찰의 건립과 함께 회화가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작품은 없다. 고분벽화나 기록을 통해 그 면모를 파악해볼 수 있으며, 고구려의 담징(曇徵), 백제의 백가(白加), 신라의 솔거(率居) 등 당대 이름을 날린 화사들의 이름이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수많은 불교 사찰의 건립과 함께 수많은 불화가 제작되어 불교회화가 전성기를 누렸을 것으로 생각되나, 고려말 왜구의 침입과 조선중기 임진왜란(1592)으로 인해 다수가 소실, 약탈되어 국내에는 소수의 작품만이 전해지고 있고, 다수가 일본에 소장되어 있다. 140여점이 전해지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미타불화·관음보살도·지장보살도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대부분이 고려 후기에 제작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지속적인 억불정책으로 불교교단이 위축되며 조형활동도 소극적으로 전개되었고, 불교회화 또한 이전시대보다 검소하고 간결하며 절제된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다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불교가 이어졌고, 각종 불교식 의식은 조상의 영혼 천도 등에 중점을 두게 되며, 죽은 자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천도(薦度)하고자 하는 염원을 나타낸 감로탱(甘露幀)과 같은 새로운 형식의 불화가 성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