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의 연혁

광양시의 연혁

광양향교

광양향교

봉강면 석사리와 옥곡면 대죽리, 옥룡면 용곡리·죽천리와 진상면 지원리 등지에서 출토된 몸돌·격지·돌날·찍개 등의 구석기, 진월면 오사리와 진정리 패총에서 수습된 빗살무늬토기편과 패각 등의 신석기시대 유물, 광양읍·옥룡면·봉강면을 비롯하여 관내 읍·면 전역에 분포하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등 선사시대부터 광양 지역에 취락이 형성되었던 유적 및 유물이 확인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의 영역으로 알려져 왔으나 진상면·옥룡면 등지에 변한(弁韓)의 성지(城址)로 전해 오는 유적이 있어 변한의 영역으로 보기도 하며, 마한·변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완충지역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복속되어 마로현(馬老縣)이 설치되었고, 삽평군(imagefont平郡, 지금의 순천시) 또는 감평군(欿平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 주·군·현의 명칭과 행정체계를 정비하여 마로현을 희양현(晞陽縣)으로 개편하고 해읍현(海邑縣, 지금의 여수시)·여산현(廬山縣, 지금의 여수시 돌산읍)과 함께 승평군(昇平郡, 이전의 삽평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후삼국시대에는 견훤이 세운 후백제의 영역이 되었다.

고려가 개국한 뒤, 940년(태조 23) 희양현이 지금의 지명인 광양현(光陽縣)으로 개칭되었다. 1018년(현종 9) 전국 행정구역이 4도호부 8목(牧)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광양현은 나주목(羅州牧) 승평군의 속현(屬縣)이 되었으며, 1348년(충목왕 4) 광양현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어 속현의 지위에서 벗어났다. 고려시대에 광양 지역에는 특수행정구역인 향소부곡으로 본정향(本井鄕, 지금의 광양읍 사곡리)·삼일향(三日鄕, 지금의 여수시 삼일동)과 문현소(蚊峴所, 지금의 진월면 송금리)·노을도소(奴乙道所)·오정소(烏頂所, 이상 지금의 진월면 오사리)·차의포소(車衣浦所, 지금의 진월면 차사리)·구량포소(仇良浦所, 지금의 진월면 신구리)·공촌소(孔村所, 지금의 진월면 월길리)·다사천소(多沙川所, 지금의 다압면 도사리)·대곡소(大谷所, 지금의 광양읍 죽림리)·지암천소(知巖川所, 지금의 다압면 금천리)·웅음소(熊陰所, 지금의 진상면 황죽리)·골약소(骨若所)·실점소(實岾所), 아마대부곡(阿麻代部曲, 지금의 골약동)·사어곡부곡(沙於谷部曲, 지금의 광양읍 사곡리)·율촌부곡(栗村部曲, 지금의 옥룡면 율천리)·아민부곡(阿民部曲) 등이 있었다.

조선이 개국한 뒤, 1409년(태종 9) 기존의 향소부곡이 모두 폐지되어 광양현에 일반 촌락으로 편입되었다. 1413년(태종 13) 8도제(道制)가 시행되면서 광양현은 전라도 남원도호부에 편제되고 현감(縣監)이 파견되는 주현(主縣)으로 승격되었으며, 세조 때 지방군사조직인 진관(鎭管) 체제가 확립되어 전라도 7개 거진(巨鎭)의 하나인 순천진관(順天鎭管)에 소속되었다. 임진왜란 때 전란으로 폐허화된 광양현은 1598년(선조 31) 순천도호부에 통합되었다가 곧 복구되었으며, 1660년(현종 1)에는 관아에 왕의 초상을 대신하여 봉안하던 전패(殿牌) 도난 사건이 발생하여 다시 폐지되었다가 1664년(현종 5)에 복구되었다. 이후 광양현은 조선 후기까지 유지되었다. 조선 후기에 각읍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 엮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광양현은 12면(골약면·다압면·며내면·사라곡면·옥곡면·옥룡면·우장면·월포면·인덕면·진상면·진하면·칠성면)을 관할하였다.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23부(府)로 개편되면서 광양현은 광양군으로 승격되어 남원부에 편제되었다. 이듬해 태인도를 비롯한 9개 섬이 신설된 돌산군에 편입되어 북면이 되었으며, 23부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13도로 재편되면서 광양군은 전라남도에 소속되었다. 1899년(광무 3) 돌산군 북면이 태인면으로 개칭되었고, 1904년(광무 8) 며내면이 봉강면으로 개칭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돌산군 태인면과 순천군의 서면·용두면 일부 등이 광양군에 병합되어 9면(광양면·골약면·다압면·봉강면·옥곡면·옥룡면·인덕면·진상면·진월면)으로 편제되었다. 1915년 다압면 섬진리 일부가 경남 하동군에 편입되었고, 1925년 인덕면이 광양면에 편입되어 8면으로 개편되었다. 8·15광복 후, 1949년 광양면이 광양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66년 골약면에 태인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3년 태인출장소가 태금면으로 승격되어 1읍 8면으로 재편되었고, 1986년 골약면·태금면과 옥곡면 광영리가 전라남도 광양지구출장소 직할로 분리되어 광양군은 1읍 6면을 관할하였다. 1987년 광양제철소가 준공되었으며, 1989년 전라남도 광양지구출장소가 동광양시(東光陽市)로 승격되어 10개 법정동(광영동·금호동·도이동·마동·성황동·중동·중군동·태인동·황금동·황길동)으로 편제되었다.

1995년 동광양시와 광양군을 통합한 도농복합형 광양시가 출범하여 1읍 6면 7행정동(광영동·금당동·금호동·성황동·중마동·태인동·황금동) 10법정동으로 편제되었다. 1998년 금호동과 금당동이 금호동으로 합동되고 성황동과 황금동이 골약동으로 합동되어 5행정동으로 정비되었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읍(광양읍) 6면(다압면·봉강면·옥곡면·옥룡면·진상면·진월면) 5행정동(골약동·광영동·금호동·중마동·태인동) 10법정동(광영동·금호동·도이동·마동·성황동·중동·중군동·태인동·황금동·황길동) 205행정리 59법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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