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기시대

청동기시대

[ Bronze Age , 靑銅器時代 ]

요약 주요한 이기(利器)의 재료에 따라 구분하는 고고학상의 3시기법(三時期法:석기·청동기·철기)에 따른 시대의 제2단계.
범부리 고인돌

범부리 고인돌

청동의 야금술(冶金術)이 알려지고, 그에 따라 이기 등의 기구(器具)가 제작·사용되면서도 아직 철의 야금술이 알려져 있지 않은 시대를 말한다. 구대륙의 선진문화권에서는 동기(銅器)시대에 뒤따르고 철기시대에 선행한다.

C.J.톰센이 1836년에 제창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청동기시대의 설정에 반대하는 학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주된 반대 이유는, ① 문화의 정도가 높으면서도 원료, 특히 주석(朱錫)이 없기 때문에 청동기시대에는 들지 못했던 사회가 있었던 점, ② 원료인 동(銅)이나 주석 산지와 그 산출량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청동기 제품은 상층계급의 무기와 장신구를 볼 수 있을 뿐, 사회 전반에 보급되지 않았고, 생산용구로도 채용되지 않았으므로 청동이 가지는 사회경제사적 의의가 그다지 높이 평가되지 않는 점, ③ 원광석에 포함되어 있던 주석이 제련법의 미숙으로 그대로 남아 있어 의도와는 다른 청동기가 만들어져, 그것과 합금술로써 제작된 참된 청동기와의 구별이 곤란한 점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청동기시대 본문 이미지 1

그 중 특히 ①은 가장 유력한 반대 이유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인은 제4왕조 이래 청동을 알고는 있었으나 주석을 입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제12왕조 무렵까지 청동기를 만들지 못했다. 제4왕조에서 제12왕조에 걸친 이집트 문화는 북유럽 기타 여러 지역의 청동기문화나 철기문화보다 높은 수준에 있었다.

또 청동기시대에 해당하는 제18왕조의 이집트문화는, 이 또한 여러 지역의 철기문화보다 정도가 높았다. 요컨대 석기시대 → 청동기시대 → 철기시대라 함은 지극히 기술사적(技術史的)인 시대구분이어서, 정치 ·경제 ·사회 ·정신문화의 전반을 고려하여 이루어지는 일반사적인 시대구분으로서는 적절하지가 않다.

그러나 문화발전의 양상이 확실치 않은 문화권을 연구할 경우에는 우선 3시기법에 따라 시대구분을 시도하는 것이 편리하다. 즉, 그 한정된 능력 내지 역할을 이해한 다음에 청동기시대라고 하는 개념을 사용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