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광역시의 연혁

대전광역시의 연혁

갑천 유역의 서구 월평동 둔산 선사유적지(대전기념물)에서 몸돌·망치돌을 비롯한 구석기 유물과 신석기시대의 집터·빗살무늬토기, 청동기시대의 집터·민무늬토기 등 구석기·신석기·청동기 시대의 유물·유적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한곳에서 출토되었고, 이밖에 대덕구 용호동유적(대전기념물)에서 출토된 구석기 중기의 찍개를 비롯한 3000여 점의 석기들, 유성구 원내동의 내동리 지석묘(대전기념물) 등 다수의 지역에서 선사시대부터 취락이 형성되었던 유적 및 유물이 확인된다. '대전(大田)'이라는 지명은 지형의 특성에서 유래한 '큰 들' 또는 '넓은 들'이라는 뜻의 '한밭'을 한자화한 것이다.

삼한시대에는 마한 연맹체에 속한 신흔국(臣釁國) 또는 내비리국(內卑離國)의 영역이었다가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복속되어 우술군(雨述郡)이 되었다. 또한 지금의 유성구에 해당하는 노사지현(奴斯只縣)과 소비포현(所比浦縣)이 우술군의 영현(領縣)이 되었고, 지금의 유성구 진잠 지역인 진현현(眞峴縣)은 지금의 충남 논산 지역인 황등야산군(黃等也山郡)에 예속되었다. 대덕구 연축동의 구릉지 일대에 백제 우술군의 행정 중심지로 추정되는 우술성(대전기념물) 유적이 남아 있으며, 대전 계족산성(사적)을 비롯하여 월평동 산성·보문산성·갈현성·적오산성·견두산성·소문산성·능성(이상 대전기념물) 등의 산성들이 삼국시대에 축조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 우술군이 비풍군(比豊郡)으로 개편되었고, 노사지현은 유성현(儒城縣)으로, 소비포현은 적오현(赤烏縣)으로 개칭되어 비풍군의 영현이 되었다. 진현현은 진령(鎭嶺)으로 개칭되어 황산군(黃山郡, 종전의 황등야산군)의 속현(屬縣)이 되었다.

고려가 개국한 뒤, 940년(태조 23) 비풍군이 회덕군(懷德郡)으로, 적오현이 덕진현(德津縣)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983년(성종 2) 전국 행정구역이 12목(牧)으로 정비되면서 회덕군과 유성현·덕진현·진잠현 등은 공주목(公州牧)이 관할하는 4군 8현에 속하였으며, 995년(성종 14) 전국이 10도(道)로 개편되면서 하남도(河南道) 공주에 속하였다. 이후 5도양계(五道兩界) 체제가 정착되면서 회덕군 등의 대전 지역은 양광도(楊廣道)의 공주에 속하였으며, 양광도는 1356년(공민왕 5) 충청도로 개칭되었다가 다시 환원되어 고려 말까지 이어졌다. 한편, 무신정권 시기인 1176년(명종 6) 공주를 중심으로 망이·망소이의 난이 일어났는데, 이 민중봉기의 발원지인 천민부락 명학소(鳴鶴所)는 지금의 서구 탄방동·괴정동·갈마동 일원에 해당한다.

조선이 개국한 뒤, 1413년(태종 13) 전국이 8도로 나뉘어 대전 지역은 충청도 공주목 관할에 속하였다. 회덕군은 회덕현(懷德縣)으로 개편되어 진잠현과 함께 공주목의 영현이 되었고, 유성현과 덕진현은 폐현되어 공주목 직할 지역으로 흡수되었다. 조선시대에 회덕현은 현내면·동면·서면·북면·내남면·외남면·일도면 등 7개 면을 관할하였고, 진잠현은 동면·서면·상면·하면·북면 등 5개 면을 관할하였다. 대체로 회덕현은 지금의 동구와 대덕구 및 중구 일부, 진잠현은 유성구 진잠동과 서구 일부, 유성현은 유성구와 중구 일부, 덕진현은 유성구 일부와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일부에 해당한다.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가 실시되면서 회덕현과 진잠현은 각각 군(郡)으로 승격되어 공주부(公州府)에 속하였으며, 이듬해에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실시되어 충청도 지역이 충청북도충청남도로 분리되면서 충청남도에 편제되었다. 1905년 대전역이 개통하여 경부선이 운행한 데 이어 1914년에는 호남선이 개통하면서 근대적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10년 국권피탈 후에 회덕군청이 읍내동에서 지금의 동구 원동으로 이전하였으며,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회덕군·진잠군과 공주군 일부(옛 공주목의 유성현·덕진현 지역)를 병합한 대전군이 신설되어 12개 면(구즉면·기성면·내남면·대전면·동면·북면·산내면·외남면·유성면·유천면·진잠면·탄동면)을 관할하였다. 1917년 내남면이 회덕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26년 대전도시계획위원회가 발족되어 도시계획 사업이 추진되었다. 1931년 대전면이 대전읍으로 승격되었고, 1932년 충청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으로 이전하여 충청남도 정치·경제·문화·교통의 중심지로 발돋움하였다. 1935년 대전읍이 대전부(大田府)로 승격되면서 대전군의 나머지 지역을 관할하는 대덕군(大德郡)이 신설되고 대전군은 폐지되었다. 1940년에는 대덕군의 유천면·외남면·산내면 일부가 대전부에 편입되었으며, 외남면은 폐지되었다.

8·15광복 후, 1949년 지방자치제 실시에 따라 대전부가 대전시로 개칭되었고, 1963년 대덕군 유천면 전역과 회덕면 대화리 등 3개 리, 산내면 옥계리 등 4개 리가 대전시에 편입되어 35개 행정동 54개 법정동으로 개편되었다. 1970년에는 도심 지역의 대동·대흥동·문창동·선화동·성남동·용두동 등이 분동되어 45개 행정동으로 확대되었으며, 1971년 이를 관할하는 동부(11개 동)·서부(11개 동)·북부(9개 동)·중부(14개 동)의 4개 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3년 대덕군 북면·유성면이 각각 신탄진읍·유성읍으로 승격되었고, 유성 지역에 대덕연구단지 건설이 시작되었다. 1977년 구제(區制)가 실시되어 동부·북부 출장소를 통합한 동구(20개 동)와 중부·서부 출장소를 통합한 중구(25개 동)가 설치되었다. 1983년 대덕군 유성읍·회덕면 전역과 구즉면·탄동면·진잠면·기성면 일부가 대전시에 편입되어 동구는 25개 동으로 확대되었고, 중구는 35개 동과 편입 지역을 관할하는 유성출장소로 편제되었다. 1984년 유성출장소가 시 직할로 승격되었고, 1988년 중구의 14개 동이 분리되어 서구가 신설되면서 3구 1출장소 63동으로 재편되었다.

1989년 대덕군이 대전시에 편입되어 대전직할시로 승격되었고, 유성구와 대덕구가 신설되어 지금의 5개 구에 75행정동과 176법정동으로 편제되었다. 1993년 유성구 대덕연구단지 일원에서 대전세계박람회(대전엑스포)가 개최되었으며, 1995년 대전광역시로 승격되었다. 1997년 둔산동에 정부대전청사가 설립되어 관세청·병무청·문화재청을 비롯한 10여 개 중앙행정기관이 입주하였으며, 1999년 시청이 중구 대흥동에서 서구 둔산동으로 이전하였다. 2005년 대덕연구단지·대덕테크노밸리·대덕산업단지를 비롯한 유성구와 대덕구 32개 법정동 일원이 대덕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되었으며, 2013년에는 충청남도청이 대전에서 충남 홍성군으로 이전하였다. 2020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동구(16행정동 45법정동)·중구(17행정동 26법정동)·서구(23행정동 27법정동)·유성구(13행정동 53법정동)·대덕구(12행정동 26법정동)의 5구 81행정동 177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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