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도양계

5도양계

[ 五道兩界 ]

요약 고려시대 최고 지방행정구획.

고려사(高麗史)》 <지리지(地理志)>에 의하면 남쪽에는 양광도(楊廣道)와 경상도(慶尙道)·전라도(全羅道)·서해도(西海道)·교주도(交州道) 등 5도, 북쪽에는 서북계(西北界)와 동북계(東北界)의 양계로 구성되어있었다. 즉, 고려의 5도양계라는 지방구획은 남쪽의 일반행적구역과 북쪽의 군사지역의 이원적 구성이었던 것이다.

5도양계 본문 이미지 1
북계동계양광도

그 밑의 도호부(都護府)·목(牧) 및 군(郡)·현(縣)·진(鎭)을 처음부터 소속시키고 있었는지는 의문이 많이 있지만 그럼에도 상급행정구역으로서의 5도 양계는 큰 의미가 있다. 먼저 도제(道制)는 995년(성종 14)에 관내도(關內道)·영남도(嶺南道) 등의 10도를 제정한 것에서 출발하지만, 이때 제정한 10도는 행정단위로서는 의미가 없고 다만 중앙집권화를 굳히려는 목적에서 시행한 보조적 조처였다. 이후에 지방제도가 많이 변화하면서 때에 따라서는 도의 명칭도 달라지며, 6도 내지는 7도·8도 등으로도 변화하였는데 그 윤곽이 드러나는 것은 예종(睿宗) 때(1106~1122)이다. 이때에 비로소 5도의 장관인 안찰사(按察使)가 설치되는데, 이들은 각 도의 주현을 순안(巡按)하면서 ①수령의 현부(賢否)를 살펴 출척(黜陟)하는일, ②민생의 질고(疾苦)를 묻는 일, ③형옥의 심치(審治), ④조부(租賦)의 수납, ⑤군사적 기능 등을 맡아보았다. 그러나 이들은 전임으로서의 외관직(外官職)이 아닌 사명지임(使命之任)으로 경직(京職)을 가진 채로 차사(差使)되었고, 5품 내지 6품의 미관(微官)이었다는 점 등 한계가 있었다.

한편 양계 지역은 변경지대인 까닭에 외관제가 발달하여 일찍부터 병마사(兵馬使)가 설치되고 그 아래의 행정구역인 방어주(防禦州) 및 진(鎭)에도 방어사(防禦使)와 진사(鎭使)·진장(鎭將) 등이 파견되고 있었다. 양계의 설치는 성종 2년의 지방관이 처음 설치된 것과 궤를 같이하며 성종 14년과 현종 9년 등에 고려의 지방제도가 정비됨에 따라 대략 같은 과정을 밟았다. 특히 양계의 장관인 병마사는 성종 8년에 그 존재가 확인되며 현종조에는 양계의 병마사가 외직으로의 기능을 하고 있는 사례가 등장한다. 확언하기는 힘들지만 5도제보다는 양계제도가 먼저 자리잡았다는 점은 확실한 듯 싶다. 이는 양계가 국경지대라는 특수지역이었던 데서 기인한다고 생각되는데, 따라서 5도의 안찰사보다 양계의 병마사의 지위가 높았음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양계지역은 원(元)의 불법점탈로 인해 폐지되었다가 원나라의 쇠망으로 다시 부활되기는 하지만 군사적인 성격을 지닌 방어주·진이 일반행정구역인 주현(州縣)으로 개편되고, 양계에도 5도와 같이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가 설치되었다. 고려의 지방통치구조는 5도양계의 이원적 구조에서 고려말에 이르러서 비로소 일원화 되었던 것이다.

참조항목

동계, 북계, 양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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