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목

12목

[ 十二牧 ]

요약 고려의 건국 이후 처음으로 설치한 지방행정조직. 중앙집권정책을 추진하면서 983년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으로 목사(牧使)를 파견함으로써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체계적으로 미치기 시작했다.

고려의 중앙정부가 지방관을 파견하여 지방에 대한 본격적인 통제를 하기 시작한 것은 최승로(崔承老)의 건의로 983년(성종 2)에 12목(牧)을 설치하면서부터였다. 이 조치가 시행되기 전까지만 해도 지방은 호족세력의 통치에 맡겨져 왔으나, 이때에 이르러 중앙집권정책을 추진하면서 우선 중요한 지역인 양주(楊州)·광주(廣州)·충주(忠州)·청주(淸州)·공주(公州)·진주(晋州)·상주(尙州)·전주(全州)·나주(羅州)·승주(昇州)·해주(海州)·황주(黃州)에 목(牧)을 설치하고 목사(牧使)를 파견함으로써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본격적이고도 체계적으로 미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12목이 설치되기 이전에는 수도를 제외한 지방은 호족세력의 지배 아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중앙정부의 지방에 대한 지배력이 전혀 미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다. 고려가 건국된 직후에도 (今有)·조장(租藏)이나 (轉運使) 등과 같이 조세(租稅)의 징수와 보관, 운반을 담당한 관원들이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지방에 상주하는 외관(外官)이 아니라 수시로 파견되는 일종의 임시직에 불과하였다. 그러다가 98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12목이 설치되고 정규적인 지방관으로서의 목사가 파견되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986년(성종 5)에는 12목에 파견되는 관원(官員)들이 아내와 자식들을 거느리고 부임할 수 있도록 조처하였다. 이어서 다음 해에는 12목마다 경학박사(經學博士)와 의학박사(醫學博士) 각각 1인씩을 뽑아 보내 지방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또한 993년(성종 12)에는 12목에 상평창(常平倉)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러한 12목은 995년(성종 14)에 12군(軍)으로 개편되면서 목사도 (節度使)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명칭만의 변경이 아니라 지방행정조직의 질적인 변화였다. 절도사는 당(唐)에서 안사(安史)의 난 이후에 설치한 군사적인 성격을 강하게 지닌 외관(外官)이었다. 그렇다면 고려의 절도사도 그와 비슷하였을 것이다. 아마도 고려의 이러한 절도사제도는 일종의 군정(軍政)을 강화함으로써 더욱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추구하려는 의도에서 추진한 면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절도사로의 개편 이전에 거란과의 전쟁으로 긴장이 고조된 결과 취한 조치였을 것이다. 이러한 절도사는 1012년(현종 3)에 혁파되고, 1018년(현종 9)에 8목으로 다시 정비되었다.

참조항목

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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