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명항

오명항

[ 吳命恒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이조좌랑 ·승지 ·관찰사 등을 역임한 후 사직하였다가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등용되자 이조와 병조의 판서를 지냈다. 이인좌의 난 때 공을 세웠고 우찬성에 이어 우의정에 올랐다.
출생-사망 1673 ~ 1728
본관 해주(海州)
사상(士常)
모암(慕菴) ·영모당(永慕堂)
시호 충효(忠孝)
주요수상 분무(奮武)공신 1등

본관 해주(海州). 사상(士常). 모암(慕菴) ·영모당(永慕堂). 시호 충효(忠孝). 1705년(숙종 31) 식년문과에 급제, 1709년 교리를 거쳐 설서(說書) ·사서(司書) 등을 역임, 이듬해 부수찬, 1713년 필선(弼善)을 겸하고 1715년 부응교(副應敎) ·이조좌랑을 지냈다. 승지에 이어 경상도 ·강원도 ·평안도 등의 관찰사를 역임하고 사직(司直)으로 있다가 1724년(영조 즉위) 소론(少論)이 실각하자 사직하고 1727년 정미환국(丁未換局)으로 소론이 등용될 때 중추부지사에 기용되어 이조와 병조의 판서를 지냈다. 이듬해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의금부판사 겸 사도(四道) 도순무사로 이를 토평하여 분무공신(奮武功臣) 1등이 되고 해은(海恩)부원군에 봉해졌다. 이어 우찬성에 올라 자신이 이인좌와 같은 소론파라는 자책감에서 사임을 상소하였으나 도리어 우의정에 발탁되었다. 고향에 효자정문(旌門)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