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환국

정미환국

[ 丁未換局 ]

요약 1727년(영조 3) 노론과 소론의 극심한 당쟁을 조정하기 위해 소론이 정계에 복귀하도록 정국(政局)의 인사를 개편한 일.

영조는 노론소론의 극심한 당쟁의 폐해를 막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탕평책(蕩平策)을 강력하게 시행하였다. 노론(老論) ·소론(少論)을 막론하고 당파성이 강한 사람은 제거시키고자 하였다. 때마침 노론의 이의연(李義淵)이 상소하여 당쟁을 부추기는 물의를 일으키자 영조는 그를 유배시켰으며, 아울러 소론 중에서 당파성이 농후한 김일경(金一鏡) ·목호룡(睦虎龍) 등도 국문 결과 상소를 허위 날조한 사실이 밝혀져 처형하고 같은 파의 이광좌(李光佐) 등도 유배시켰다. 한편 노론의 정호(鄭浩) ·민진원(閔鎭遠) 등을 기용하고 ‘신임(辛壬)의 옥(獄)’에 희생된 김창집(金昌集) 등의 관작을 추복, 원혼을 위로해 주었다. 이리하여 노론이 주요한 직책을 차지한 결과가 되었으나 영조의 뜻은 본래 노 ·소 양파의 당쟁을 조정하는 데 있었으므로 소론의 이광좌 ·조태억(趙泰億) 등도 기용하였다. 또한 노론의 온건파인 홍치중을 기용하여 탕평책을 실효성을 높이고 노론과 소론을 막론하고 고르게 등용하였다. 하지만 노론의 영수 정호와 민진원은 소론에 대한 압박을 오히려 강화했고 자신의 주장이 관철되도록 홍치중을 압박하여 사직토록 했다. 이에 다시 정국이 당쟁의 혼란을 거듭하게 되자 영조는 더이상 노론을 설득하지 않고 과감하게 그들을 삭탈관직 시키고 소론을 대거 기용하였다. 유배형을 받은 소론들이 해배되어 정계에 복귀하였고 을사처분으로 신원이 회복되어 4충신으로 불렸던 4대신 김창집(金昌集), 이건명(李健命), 조태채(趙泰采), 이이명(李?命)이 다시 4역적으로 번복되었다. 이에 노론이 실각하고 소론이 집권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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