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소설

신문소설

[ roman feuilleton , 新聞小說 ]

요약 정기적으로 간행되는 신문에 연재하기 위하여 씌어지는 장편소설 양식.

원래 19세기 초에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유행한 소설형식으로, 처음에 격주간지(隔週刊紙)에서 연재되기 시작하였다. 1829년 《르뷔 드 파리》를 창간한 베롱은 연재소설을 그의 잡지에 싣는다는, 당시로서는 매우 새롭고 기발한 착상을 실천에 옮겼다. 그리하여 문학적으로도 격조높은 작품들이 정기간행물에 게재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발자크의 소설 등은 독자들의 많은 호평을 받았다.

1836년 이것을 모방하여 마침내 신문에 연재소설을 도입한 사람은 에밀 드 지라르댕이었다. 《라 프레스》지(紙)의 신문연재소설이 큰 인기를 모으게 되자, 곧 대부분의 다른 신문들도 앞을 다투어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 대(大)뒤마의 《삼총사(三銃士)》 《몽테크리스토 백작》 《파리의 비밀》 등이 모두 이 무렵의 대표적인 신문소설이었다. 이와 같이 1830년대 이후 프랑스에서 대두한 신문소설의 성공은, 곧 문학의 산업화를 상징하는 신호였으며 시민계급의 완전한 승리를 알리는 북소리였다.

그러나 신문소설의 발상지인 서유럽에서, 오늘날 그것은 오히려 쇠퇴하여 19세기 당시와 같은 독자의 큰 호응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으며, 장편 아닌 단편소설이나 콩트 정도의 소품(小品)이 게재되어 겨우 신문소설의 명맥을 잇고 있다. 한편, 프랑스를 제외하고 현재 신문연재를 통하여 소설이 발표되고 있는 나라는 한국·일본·타이완아시아 지역에 국한되고 있다.

한국의 신문소설

한국의 신문이 그 초창기부터 소설을 연재하게 된 것은 일본의 영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일본인 아다치 겐조[安達謙藏]가 발행한 《한성일보(漢城日報)》에 최초의 신문소설이라고 할 《요화(妖花)》(1898)가 작가를 밝히지 않은 채 발표된 사실로도 그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이후 《만세보(萬歲報)》에 이인직(李人稙)의 《혈(血)의 누(淚)》(1906) 상편이 발표됨으로써 으레 소설이 신문지면의 일부를 차지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이른바 신소설 작가로 불리는 이인직, 이해조(李海朝), 최찬식(崔瓚植) 등이 쓴 초기의 신문소설은 소설의 형식을 빌어서 개화운동의 추진을 도모한 하나의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는 한결같이 미신타파, 새 학문에의 동경, 자유결혼의 예찬, 남녀평등 사상의 고취 등을 내세우면서 대중계몽의 구실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1917년 이광수(李光洙)의 장편 《무정(無情)》이 《매일신보(每日申報)》에 연재될 때까지도 계속되었는데, 문학사적으로는 이 《무정》의 발표를 계기로 한국의 신소설이 현대소설로 그 면모를 바꾸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신문소설의 등장은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된 1920년 이후의 일이다. 특히 염상섭(廉想涉)의 《삼대(三代)》(1931, 조선일보), 이광수의 《흙》(1932, 동아일보), 심훈(沈熏)의 《상록수(常綠樹)》(1935, 동아일보) 등은 당시 독자들 사이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35년 이후 신문의 상업주의적인 속성이 짙어지기 시작하면서 신문소설도 점차 통속성을 드러내게 되었는데, 이 무렵 인기를 모은 것으로는 김말봉(金末峰)의 《밀림(密林)》(1935, 동아일보)과 《찔레꽃》(1937, 조선일보), 김내성(金來成)의 탐정소설, 방인근(方仁根)의 통속소설 등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40년 박계주(朴啓周)의 《순애보(殉愛譜)》가 《매일신보》의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당선, 발표되면서 일단 순화되는 과정을 밟다가 8·15광복을 맞이하였다.

그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사회혼란이 가중되자 말초적인 쾌락주의를 추구하는 풍조가 팽배하였다. 이와 같은 세태를 반영한 신문소설이 1954년 《서울신문》(현재 《대한매일》)에 연재되어 숱한 화재를 뿌렸던 정비석(鄭飛石)의 《자유부인(自由夫人)》이다. 그후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에 걸쳐 문단의 중진 작가들이 신문소설을 도맡아 집필하는 가운데 박종화(朴鍾和)의 《임진왜란》(1954.9∼1957.4, 조선일보)이 장기 연재의 기록을 세웠는가 하면, 김팔봉(金八峰), 장덕조(張德祚), 유주현(柳周鉉) 등이 신문소설을 집중적으로 집필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른바 1970년대 작가로 불리는 신진들이 신문소설을 담당하기 시작하여 최인호(崔仁浩)의 《별들의 고향》(1973, 조선일보) 이후 신문의 상업성에 영합하면서 대중의 기호를 충족시키고 있다. 1980년대에는 박경리(朴景利)의 《토지》(1983, 경향신문), 김성한(金聲翰)의 《임진왜란》(1985, 동아일보) 등이 새로운 형식으로 연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