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상논쟁

성화상논쟁

[ iconoclastic controversy , 聖畵像論爭 ]

요약 8∼9세기에 비잔틴 제국(帝國) 안에서 성화상(ikon) 숭배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비잔틴 제국의 황제 레오 3세는 726년과 730년 두 차례에 걸친 칙령으로써 이미 로마제국에서 공인 장려되고 있던 성화상 숭배를 우상숭배로 단정하여 금지하고 성화상을 파괴하였다. 이 성화상 파괴는 하나의 사회운동으로 번졌는데, 이를 가리켜 이코노클라슴(iconoclasm) 즉 성화상파괴운동이라고 한다. 뒤이어 즉위한 콘스탄티누스 5세도 이 정책을 계속하였다.

한편 787년 소집된 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성화상 파괴를 이단(異端)이라 하여 배척함으로써 제국 안에서의 분쟁은 계속되었다. 그후 레오 5세 치세에서 성화상 파괴가 부활되었는데, 우상파괴를 주창하는 최후의 황제 데오필로스가 사망한 후, 황후 테오도라가 843년에 주관한 주교회의에서 성화상 숭배가 다시 살아났으며, 그후 제4차 콘스탄티노플공의회(869∼870)에서 다시 성화상 파괴자에 대한 이단선고가 있은 이후, 성화상 숭배는 동방교회에서도 불가결한 전통으로 형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