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 3세

레오 3세

[ Leo III ]

요약 비잔틴 황제(재위 717~741)로 이사우리아왕조의 창시자이다. 아크로이온 전투로 비잔티움과 이슬람 사이의 싸움을 승리하였고 광대한 영토를 군관구로 분할하여 제국의 재편성을 이루었다. 사법 및 형법 등을 재편찬, ‘에클로게’로 집대성하였다.
출생-사망 675 ? ~ 741.6.18
국적/왕조 비잔틴 제국
재위기간 717년~741년
별칭 레온 3세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북시리아 게르마니케이아

그리스에서는 레온 3세라고 한다. 이사우리아왕조의 창시자이다. 북시리아의 게르마니케이아 출생으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나, 유스티니아누스 2세의 국내 식민정책에 의해 양친과 더불어 트라키아로 이주하였다.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유형지를 탈출하여 트라키아를 지나 콘스탄티노플로 진격할 때 그 휘하에 들어갔다.

유스티니아누스 2세가 죽자 몇몇 황제가 즉위하였는데, 마지막 테오도시우스 3세(재위 715∼717)에게 반기를 들어 그를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즉위 후 반년 만에 침공한 아라비아 함대와 군대가 콘스탄티노플을 포위하였으나, 그는 1년 동안 함락되지 않고 전투를 지휘하였으며 마침내 718년 이슬람군을 격퇴하였다. 다시 740년의 아크로이온 전투에서 승리하여 이슬람과의 전투에 종지부를 찍었다. 대내적으로는 광대한 영토를 군관구로 분할하여 제국의 재편성을 이루었다. 726년 사법(私法) 및 형법 등을 재편찬, ‘에클로게(Ekloge)’로 집대성하여 비잔틴법 형성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편 레오 3세의 주요 종교 정책 중 하나였던 성상파괴령은 726년 제안되어 730년 공식화되었다. 이 정책으로 성상파괴논쟁을 초래하였으며 로마교회와 비잔틴제국이 동서로 분리되는 결과를 낳았다. 741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