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지론

불가지론

[ agnosticism , 不可知論 ]

요약 초경험적(超經驗的)인 것의 존재나 본질은 인식 불가능하다고 하는 철학상의 입장.

불가지론은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sophists)나 회의론자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 기원을 찾을 수도 있으나, 신의 본체는 알 수 없다는 중세의 신학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인간은 일종의 지적(知的) 직관(直觀)인 그노시스(gnosis)에 의하여 신의 본체를 직접 알 수 있다는 그노시스파(派)나 본체론자의 주장에 대하여 그노시스를 부정하는 것이 불가지론이다. 로마 가톨릭은 신의 존재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이성(理性)에 갖추게 되는 ‘자연의 빛’에 의하여 알게 되지만, 신의 본체 자체는 알 수 없다고 하여 그노시스를 부정하였다. 신은 현세(現世)에 사는 사람에게는 거울에 비치는 모습처럼 뚜렷하지 않으며, 신과 직접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다른 세상에서 가능하다.

불가지론은 근세에 들어서서, 인간은 유한한 존재로서 그 지력(知力)도 한정되어 있어, 세계 그 자체가 무엇인가를 알 수는 없다고 말한 철학설에 다시 등장한다. 신, 즉 자연의 속성은 무한하지만, 그 중에서 사람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연장(延長: 物體)과 사유(思惟: 精神)뿐이라고 주장하는 B.스피노자의 설이나, 인간의 지식은 인상(印象)과 관념에 한정되어 있어 그것을 초월한 사항은 지식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D.흄의 주장도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지론이다. 또 사물 자체는 인식하지 못하여도 주관형식인 시간 ·공간 내에 주어지는 현상만은 인식할 수 있다는 I.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서의 생각도 일종의 불가지론이다. 1869년에 불가지론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였다는 T.H.헉슬리나 H.스펜서와 같은 실증론자는 지식을 경험 가능한 사실로만 한정시켰다. 이와 같이 형이상학적인 여러 문제에 관하여 분명히 불가지론을 주장하였는데, 이 경향은 현대의 논리실증주의와도 이어진다. 고대 회의론자의 시조 피론, 현상론자 W.해밀턴, F.H.브래들리, E.H.뒤부아 레몽 등도 넓은 뜻에서는 여기에 속한다.

인도에서는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가 주장하였다. 산자야는 내세(來世)가 존재하느냐, 선악(善惡)의 과보(果報)는 존재하느냐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하여 일부러 애매하게 대답함으로써 확정적인 대답을 피하였다. 여기서 형이상학적 문제에 관한 판단 중지의 사상이 처음으로 표명되었다. 원시불교에서 무기사상(無記思想)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신학으로 되돌아가면, 칸트나 R.H.로체의 영항을 받은 A.리츨은 인간이 아는 것은 현상뿐이나, 신은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없다고 주장하여, 신학은 종래의 형이상학과 같이 신을 존재하는 것으로서가 아니라 매력있는 이상(理想)으로 다루어, 사람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시키고 기독교는 도덕면에서만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