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파스퇴르

루이 파스퇴르

다른 표기 언어 Louis Pasteur
요약 테이블
출생 1822. 12. 27, 프랑스 돌
사망 1895. 9. 28, 프랑스 파리 근처
국적 프랑스

요약 19세기 프랑스의 화학자·미생물학자. 미생물이 발효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저온살균법을 개발해 과학사와 산업사에서 큰 업적을 이루었다. 브장송대학교 왕립대학에서 이학사학위,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발효와 자연발생에 대해 연구하며, 저온살균법을 개발해 관련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밖에도 광견병·탄저병·닭콜레라 등에 대한 백신을 발명했다. 1888년 파스퇴르연구소가 설립되어 사망 시까지 소장을 맡았다. 레이웬훅크메달을 수상했다.

목차

펼치기
  1. 개요
  2. 유년기
  3. 청년기
  4. 타르타르산과 라세미산 연구
  5. 대학 교수
  6. 발효 연구
  7. 자연발생에 대한 연구
  8. 저온살균법 개발
  9. 백신 발명
  10. 수상 이력
  11. 평가 및 의의
파스퇴르(Louis Pasteur)
파스퇴르(Louis Pasteur)

개요

19세기 프랑스의 생화학자. 광견병·탄저병·닭콜레라 백신을 처음으로 만들었다. 세균학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유년기

루이 파스퇴르는 제혁업자의 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자유를 획득한 계약 노동자였다. 유년시절의 파스퇴르는 그의 부모와 친구들의 초상화와 파스텔화를 그리는 일 외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파스퇴르의 가족이 이사갔던 아르브와에서 초·중등학교를 마친 다음, 1840년 브장송대학교에서 문학사학위를 받았고, 1842년에는 브장송대학교 왕립대학에서 이학사학위를 받았다. 다음해에 파스퇴르는 파리의 유명한 사범대학교인 고등사범학교에 입학했다. 1845년 물리학으로 이학석사학위를 받은 다음, 184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청년기

26세 되던 해인 1848년 5월 22일 파스퇴르는 파리 과학 아카데미 앞으로 특정한 화학적 화합물은 오른쪽 성분과 왼쪽 성분으로 쪼개어질 수 있으며, 한 성분은 다른 성분의 거울상이 된다는 놀라운 발견을 담은 논문을 투고했다.

타르타르산과 라세미산 연구

루이 파스퇴르의 발견은 상업적으로 널리 쓰이며 포도를 발효시킬 때 나오는 산인 타르타르산과, 알자스 지방의 한 공업과정에서 발견된 새로운 산이며 그때까지는 알려져 있지 않았던 라세미산에 대한 결정학적 연구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이 2가지 산은 같은 화학적 구성과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나 특성은 매우 다르게 나타났다.

독일의 화학자인 E.미철리히(1794~1863)는 보통 상업용 타르타르산은 평면편광의 회전에 영향을 미치지만 라세미산은 그러한 효과가 없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그 자신의 화학적 방법을 통해서 라세미산의 염은 오른쪽 장갑과 왼쪽 장갑처럼 서로 거울상을 이루는 2가지 유형의 결정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이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

분리된 2가지 유형의 결정은 평면편광을 같은 각도로 회전시키지만 서로 반대되는 방향(하나는 오른쪽 또는 시계방향으로, 다른 하나는 왼쪽 또는 시계반대방향)으로 회전시킨다. 라세미산의 2가지 결정 형태 중의 하나는 발효될 때 나오는 타르타르산과 같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는 더 나아가 발효에서 나온 타르타르산과 동일한 라세미산의 한 성분은 미생물에 의해서 사용될 수 있는 반면, 광학이성질체라고 하는 다른 하나는 살아 있는 유기체에 의해 이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이러한 실험을 바탕으로 그는 물질의 생물학적인 특성은 그 분자를 이루는 원소들의 성질뿐만 아니라 분자들이 공간 안에 배열되는 방식에도 의존한다는 분자비대칭이론을 만들었다.

대학 교수

1848년 루이 파스퇴르는 디종 리세(중등학교)의 물리학교수로 임명되었으나 곧 스트라스부르대학교의 화학교수로 초빙되었다. 그곳에서 1849년 5월 29일 대학 총장의 딸인 마리 로랑과 결혼했고, 5명의 아이들을 낳았으나 그중 2명만이 살아남았다. 1854년 파스퇴르는 릴대학교 과학부의 학장이 되었는데, 여기에서 그는 매우 근대적인 교육을 시작했다.

즉 산업화된 도시의 많은 젊은 근로자들을 위해 야간학교를 개설했으며, 그 지역의 큰 공장들 주변에서 학생들을 모아 실습강좌를 만듦으로써 대학과 산업 사이에, 이론과 실제 사이에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루이 파스퇴르의 신념을 보여주었다.

발효 연구

릴에서 한 기업가로부터 곡물과 사탕수수에서 술을 만드는 것에 관한 질문을 받은 다음부터 파스퇴르는 발효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 그것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루이 파스퇴르는 다시 오른쪽 성분과 왼쪽 성분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파스퇴르는 연구주제를 알코올 발효로부터 젖산 발효로 진행시켰는데, 이는 나중에 파스퇴르 효과라고 알려진 것으로 효모가 산소 없는 인공배지에서도 자신을 증식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857년 파스퇴르는 고등사범학교의 과학연구부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발효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발효는 작은 미생물이 활동한 결과이며 발효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꼭 필요한 미생물이 없거나 적절히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이 발표 전에 나온 발효에 관한 모든 이론은 실험에 근거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루이 파스퇴르는 버터나 맥주로부터 추출된 미생물을 우유에 넣으면 우유의 맛이 시게 변하지만 미생물이 없으면 신선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직접 증명했다.

파스퇴르는 1862년 과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으며, 그 다음해에는 다른 분야에 응용되는 지질학·물리학·화학을 가르치는 새롭고 독창적인 프로그램을 위해 에콜 데 보자르에 그를 위한 대학교수직이 새로 만들어졌다. 루이 파스퇴르는 연구에 몰두하는 학자였으므로 고등사범학교 과학연구부의 책임자로서 행정적인 임무가 너무 성가시다고 생각해서 1867년 그 자리를 사임했으나, 나폴레옹 3세의 후원으로 같은 연구소에 그를 위한 새로운 생리학실험실이 만들어졌다.

자연발생에 대한 연구

발효에 대한 연구의 논리적인 귀결로 루이 파스퇴르는 자연발생(세균이 저절로 생긴다는 개념)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당시의 과학자들을 대립되는 두 진영으로 나누는 문제였다. 파스퇴르는 공기 중에 노출시키면 젖산이나 알코올의 발효가 빨라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미생물들이 공기 중에 항상 존재하는지, 또는 저절로 발생되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되었다.

공기를 여과하는 방법과 발효되지 않은 액체를 높은 알프스 산의 공기 중에 노출하는 방법 등의 간단하고 정확한 실험들을 통해, 루이 파스퇴르는 음식이 공기 중에 존재하는 균과 접촉하게 되면 분해되어 부패하는 것이지 음식 자체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저절로 발생되어 썩거나 변화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식품저장). 파스퇴르는 이와 같은 이론적인 기초를 세운 다음 자신의 발견을 식초포도주에 대한 연구에 적용시키기 시작했는데, 이 두 상품은 프랑스 경제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었다.

저온살균법 개발

열에 의해 해로운 세균을 파괴시키는 루이 파스퇴르의 저온살균법은 이 생산품들을 상하지 않게 생산·보관·운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1865년 루이 파스퇴르는 정부로부터 당시 프랑스 경제에서 주요한 부문이었던 비단 생산을 종식시킬 위험이 있는 누에의 병에 대해 연구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 양잠업의 중심지이던 남부 프랑스로 이사했다.

3년 뒤에 루이 파스퇴르는 2가지 다른 병을 일으키는 간균을 분리했으며, 이 병들의 전염을 막고 질병에 걸린 스톡(stock)을 찾아내는 방법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1870년 파스퇴르는 맥주에 대한 연구에 전념했다. 파스퇴르는 프랑스와 런던의 양조업자들 속에서 연구를 계속하여 식초와 포도주의 경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맥주가 시간이 지나면서 품질이 떨어지는 문제를 막기 위한 방법을 고안했다. 따라서 당시에 전적으로 아프리카 대륙을 돌아서 항해해야만 했던 영국의 수출업자들은 상할 염려 없이 맥주를 멀리 인도까지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루이 파스퇴르는 1868년 신체의 일부가 마비되어 대학교에 사임을 신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를 계속했다. 1873년 루이 파스퇴르는 의학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고, 1874년 프랑스 의회는 그에게 연구하는 동안 물질적인 안정을 보장해줄 상을 수여했다.

백신 발명

1881년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의 독성을 감퇴시킬 기법을 완성하고 양떼에게 탄저병에 대한 백신을 실험하여 성공시켰다(면역조치). 이와 마찬가지로 파스퇴르는 가금류를 닭콜레라로부터 보호할 수 있었는데, 이는 동물은 한번 병에 걸렸다가 나으면 다음에 그 병이 다시 침입할 때는 면역이 생긴다는 것을 관찰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분리해서 배양한 뒤 약화시켜서 가금류에 접종함으로써 질병에 대해 동물을 면역시킬 수 있었다. 여기서 루이 파스퇴르는 동물에 백신을 주사하는 데 영국의 의사인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에 대한 백신을 접종한 예를 따랐다. 1882년 4월 27일 루이 파스퇴르는 프랑스 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는데, 그 무렵 그는 무엇보다도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밝혀진 광견병의 예방적 치료에 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 병에 걸린 동물의 타액을 접종하는 실험을 한 뒤에 루이 파스퇴르는 이 바이러스가 신경중추에도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광견병에 걸린 개의 연수(延髓)의 일부를 건강한 동물에 접종하면 광견병의 증세를 나타낸다는 것을 발견했다. 감염된 동물의 건조 조직과 이 조직에 대한 시간과 기온의 영향에 대한 연구로 파스퇴르는 접종에 사용할 수 있는 약화된 형태의 바이러스를 얻어낼 수 있었다.

신경계에 미치는 광견병바이러스의 효과를 통해 그것을 찾아내고 약독화시킨 뒤에, 이 방법을 사람에게 적용해서 1885년 7월 6일 루이 파스퇴르는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린 조제프 메스테르라는 9세 된 소년의 생명을 구했다. 이 실험은 눈부신 성공을 거두어 무서운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1888년에는 광견병의 예방과 치료에 대해 근본적인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파스퇴르 연구소가 파리에서 문을 열었다(파스퇴르 연구소). 파스퇴르는 건강이 나빠졌지만 죽기 전까지 이 연구소의 소장을 맡았다.

루이 파스퇴르는 19세기의 과학적 방법에 진정한 혁명을 가져왔다. 실험실에서 나와 자연환경에 존재하는 질병의 인자(因子)를 연구함으로써 루이 파스퇴르는 질병을 일으키는 인자들을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치료까지도 제시하는, 주어진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천부적으로 큰 호기심과 뛰어난 관찰력을 부여받은 재능 있는 실험가였던 루이 파스퇴르는 커다란 열정으로 평생을 과학과 의학, 농학, 산업에 헌신했다. 파스퇴르는 즉각적이고 용기 있게 자신의 생각을 방어했으며 반대자들에 대해서는 종종 매우 거친 글과 말로써 논박했다. 파스퇴르가 의학자 집단과 언론으로부터 가장 강한 반대를 받았던 것은 주로 자연발생과 광견병에 대한 연구에서였다.

자신이 수행한 연구의 가치와 과학적 성공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루이 파스퇴르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영광과 영예를 기쁘게 받아들였다. 파스퇴르는 그의 발견을 외과학에 곧바로 적용했던 영국의 유명한 외과의사인 조지프 리스터(1827~1912)와 돈독한 우정을 맺기도 했다.

수상 이력

1881년 프랑스 학사회 회원이 되었다. 1892년 70세 생일 때 프랑스 정부로부터 기념패를 받았으며 1895년 미생물학자로서 최고의 영예인 레이웬훅크메달을 수상했다.'과학에는 국경이 없다. 그러나 과학자에게는 조국이 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평가 및 의의

루이 파스퇴르의 과학적 업적은 과학사와 산업사에서 가장 다양하고 가치있는 것 중 하나로 평가 받는다. 파스퇴르는 미생물이 발효와 질병의 원인이 된다는 것을 증명했으며, 광견병·탄저병·닭콜레라 등에 대한 백신을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했고, 프랑스의 맥주업·포도주업·양잠업을 구했다(미생물학). 또한 파스퇴르는 입체화학(stereochemistry)에서 중요한 선구자적인 연구를 수행했으며, 저온살균법(pasteurization)을 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