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이라크

다른 표기 언어 Iraq 동의어 al-Iraq, 이라크 공화국, Republic of Iraq, Al-Jumhuriyah al-Iraqiyah
요약 테이블
위치 아라비아반도 북동부
인구 46,029,212명 (2024년 추계)
수도 바그다드
면적 434,128㎢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이라크 공화국 (Republic of Iraq)
기후 사막건조성기후
민족 구성 아랍인(75%), 쿠르드인(15%), 터키인
언어 아랍어
정부/의회형태 과도정권 / 단원제
종교 이슬람교(97%), 그리스도교(3%), 기타
화폐 이라크 디나르 (ID)
국화 장미
대륙 중동
국가번호 964
GDP USD 223,258,000,000
인구밀도 107명/㎢
전압 220~230V / 50Hz
도메인 .iq

요약 아시아 서남부 지역에 있는 국가. 지형은 중부·남동부에 걸쳐 있는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유역의 충적평원지대, 북부의 알자지라 고원지대, 서부·남부의 사막지대, 북동부의 고원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국민은 아랍계와 소수의 쿠르드족으로 구성되며, 대다수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공용어는 아랍어이고 화폐 단위는 이라크디나르(IraqDinar)이다.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다. 1932년 영국의 식민지에서 독립했으며, 현대에 들어 주변 열강의 세력 다툼과 쿠웨이트를 비롯한 인접 국가들과의 갈등, 내부의 권력 투쟁으로 정치적 혼란을 겪었다.

이라크의 국기
이라크의 국기

수도는 바그다드이다. 국민은 대다수 아랍계와 소수의 쿠르드족으로 구성된다.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종교는 이슬람교 가운데 시아파가 대다수를 이루지만 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있다. 화폐 단위는 디나르(dinar)이다.

이라크는 지형적으로 크게 4개 지역으로 나뉜다. 중부 남동부 지역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충적평원지역,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북쪽에 위치한 알자지라 고원지대, 전 국토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서부 및 남부의 사막지대, 북동부의 고원지대이다. 세계 2위의 석유 매장량을 보유한 국가이며, 천연가스도 상당량 매장되어 있다. 농업 또한 이라크 경제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단원제의 과도정부이고 국가원수는 대통령이다.

고대에는 메소포타미아로 불린 이 지역은 수메르, 아카드, 바빌론을 포함하는 세계 최초의 문명 발상지이다. BC 33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되었다. 그 후 이 지역은 파르티아와 로마, 그 다음에는 사산조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 사이의 전쟁터가 되었다.

7세기에 아랍 이슬람교도들에게 정복되었고, 1258년 몽골족이 정복할 때까지 여러 이슬람 왕조들이 통치했다. 오스만 제국이 16세기에 정복하여 통치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 점령(1914~18)당했다. 영국은 1921년에 이라크 왕국을 건설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다시 점령했다(1939~45). 전쟁 후 군주제가 부활되었으나 1958년 혁명이 발발하여 다시 무너졌다. 군사 쿠데타가 계속되다가, 1968년 사담 후세인이 이끌던 사회주의 바트당이 정권을 잡고 전체주의 통치를 시작했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과 1990~91년의 페르시아 만 전쟁은 여러 도시들의 파괴와 인명피해를 가져왔다. 1990년대 이라크에 취해진 유엔의 금수조치로 경제는 쇠약해졌다. 21세기에 들어서는 금수조치의 효과가 퇴색되었고, 이라크 전쟁 중이던 2003년 바트당은 정권을 잃었다.

지도
이라크

자연환경

주로 저지대로 이루어진 이라크는 고도가 300m를 넘는 경우가 드물고, 450m를 넘는 지역은 전국토면적의 15%가 채 안 된다. 지형적으로는 이라크 중부와 남동부에 걸쳐 있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충적평원지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북부에 자리잡은 알자지라 고원지대, 서부와 남부의 사막지대, 북동부의 고원지대 등 4개 지역으로 나누어진다.

국토의 거의 1/3을 차지하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충적평원지대는 기복이 적으며, 자연 배수가 잘 안 되어 소택지가 넓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평원 북쪽의 메마른 고원지대 알자지라에는 높이가 1,500m 이상인 신자르 산맥이 있다. 이라크 서부와 남부 지역은 전체가 광대한 사막지대로, 국토면적의 2/5를 차지한다. 서부 사막은 와디야라고 하며, 고도는 485m를 넘어선다. 남부 사막의 서쪽에는 와디·언덕·침강지대 등이 있으며, 동쪽에는 덤불식물로 뒤덮인 모래사막이 있다. 국토의 약 1/5을 차지하는 북동부 고원지대는 대부분 산악지대와 저지대 사이의 점이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강수 유형도 지형과 마찬가지로 북서부 유형과 남동부 유형으로 나누어져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의 연간강우량이 약 400㎜에 이르는 반면, 남서부 사막은 100㎜ 미만에 그친다. 고원지대에서 고도가 가장 높은 곳은 연간 강우량이 1,000㎜가량 된다.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은 여름에 매우 더우며, 강 부근 지역은 다습한 기후를 나타낸다. 삼림지대는 무제한적인 방목과 집중적인 벌목으로 전국토면적의 1/20로 줄어들어 대부분 강 주변에 있다. 산악지대 남서쪽에는 다년생 덤불과 키 작은 관목으로 이루어진 스텝 지대가 있으며, 건조지대로 갈수록 가시나무나 다른 내염성 식물들이 눈에 띈다. 강 하류 부근의 알쿠르나 아래쪽에 있는 소택지에는 갈대, 키 큰 목초, 사초 등이 우거져 있다.

이라크는 석유매장량이 세계 제2위의 국가로 이란-이라크 전쟁페르시아 만 전쟁(1990∼91) 전인 1980년에는 세계에서 제2위를 차지하는 석유수출국이었다. 페르시아 만 부근에도 유전이 있지만 주요유전은 북부지역에 위치하며, 천연 가스도 상당량 매장되어 있다.

국민

아랍인과 아랍화된 주민들이 중부와 남부 지역에서 압도적인 다수를 이루고 있는데, 이들은 전체 인구의 3/4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소수민족 중 인구가 가장 많은 쿠르드족은 이라크 전인구의 1/5가량으로, 여전히 자신들의 고유 언어를 사용하며 북동부 고지대에서 거주하고 있다. 터키인들과 투르크멘족들은 지역 아랍인들과의 혼혈로 인해 아랍화되고 있다.

공식어는 아랍어이지만, 쿠르드어와 터키 투르크멘 등의 방언들도 같이 쓰인다. 이슬람교도가 인구의 95% 이상을 차지하는데, 이슬람교도 가운데서도 시아파가 대다수를 이룬다. 이라크는 중동에서 시아파가 대다수를 이루는 유일한 나라이다. 이라크의 시아파는 아랍인과 소수의 투르크멘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슬람계 주민 가운데 나머지를 흡수하는 수니파는 아랍인·터키인·투르크멘족·쿠르드족으로 이루어진다. 그밖에 그리스도교·야지디교·만다야교·유대교·바하이교 같은 종파도 있다.

2024년 기준 이라크의 인구수는 4,602만 9,212명이고, 인구밀도는 107명/㎢이다. 전체 인구 중 40% 이상이 15세 미만이며, 15-64세는 56%, 65세 이상이 4%로 분포한다. 인구의 약 7/10이 도시에 거주한다. 출생률은 중동에서도 높은 편인 반면 사망률은 비교적 낮다.

경제

이라크 경제는 개발도상국 단계에 있으며, 대체로 국유산업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인당국민총생산(GNP)은 다른 중동 국가와 비교해볼 때 낮은 편이다. 실질적인 연간 GNP 성장률은 이란-이라크 전쟁 이전에는 9% 이상이었으나, 1980년에 전쟁이 일어난 후 주로 석유 수출에 의존했던 GNP의 규모가 크게 낮아지기 시작했다.

전국토면적 가운데 약 1/8을 차지하는 경작지는 대부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약 1/3이 관개된다.

대부분의 관개지에서는 농토의 염화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가운데 1/5을 차지하는 농업 부문에 노동력의 1/8 이상이 종사하고 있다. 경작지의 4/5가량 되는 지역에서 채소와 곡류가 재배되며, 밀·보리·수박·토마토·포도·대추야자 등도 많이 생산된다. 국토면적의 1/10가량에 해당하는 목초지에서는 양·염소·소를 사육한다.

광업 부문은 GDP의 1/10 이상을 차지하나, 노동력은 총노동인구의 2% 미만이 고용되어 있을 뿐이다. 가장 풍부한 광물자원은 석유와 천연 가스이다. 원유생산량은 전쟁 피해와 노동자 태업 등으로 인해 1980년 이후 많이 줄어들었으며, 석유와 함께 생산되는 천연 가스의 대부분이 계속 타서 고갈되고 있다.

그밖에 황·인회암·석고·암염 등이 생산된다. 제조업은 GDP 가운데 약 1/10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1/4이 고용되어 있다. 주요공산품은 정유제품, 공업용 화학약품, 철과 조강(粗鋼), 질소비료, 원당(原糖), 면직물, 모직물, 양탄자 등이다. 사용되는 전력의 대부분이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되고 나머지는 수력발전으로 충당된다. 건설업은 GDP의 1/10 미만을 차지하며, 노동력의 약 1/8이 종사하고 있다.

석유 수출로 재정이 확보되면서 정부는 정유와 전력생산 능력을 늘리고, 댐을 세워 관개망을 건설하며, 교통·통신과 관련된 사회간접자본을 확대하기 위해 여러 중요한 공사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라크는 식품가공·전통공예·교역·요식업·관광업·호텔업 및 소규모 제조업 등을 제외한 다른 산업들, 즉 석유산업을 비롯한 여러 산업 부문과 금융계, 교통과 통신 시설 등을 국유화했다. 국영화되지 않은 민간 부문이 이라크 산업 생산량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노동조합은 정부의 통제를 받으나 제한된 범위의 단체협상은 허용된다.

이라크는 계속적으로 숙련공과 농업 노동력의 부족을 겪어왔으며, 많은 건설현장에 외국인 노동자들을 투입시키고 있다.

국영 이라크 철도는 바그다드에서 바스라로 가는 노선과, 바그다드에서 북쪽의 모술과 시리아 국경으로 가는 노선이 있다. 도로망은 4/5 이상이 포장되어 있으며, 그밖에 원양 항행선이 다닐 수 있는 아랍 강의 수로 137km를 포함하는 950km의 내륙수로가 있다. 주요항구로는 바스라·움카스르·알파우가 있다.

바스라 항은 이란군의 폭격이 있은 후 1981년말에 폐쇄되었다. 바그다드와 바스라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수출품은 석유가 대부분을 차지하며, 소량의 대추야자 열매와 채소가 수출된다. 전기 기구와 기계류, 항공기를 비롯한 차량, 소비재 상품, 화학제품과 약품, 식품 등을 수입하며, 주요 교역상대국은 일본·프랑스·독일·미국 등이다.

이라크의 화폐
이라크의 화폐

정치와 사회

근대 이라크는 1932년 영국의 지배에서 독립한 이라크 하심 왕국에서 기원했다. 그러나 영국의 지속적인 간섭에서 완전히 독립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55년에 이르러서였다. 이라크 하심 왕국은 1958년 군부 쿠데타를 통해 붕괴되었고 이라크 공화국(Republic of Iraq)이 수립되면서 공화정으로 바뀌었다.

1968년 사회주의 바트당이 정권을 잡은 후 혁명위원회(The Revolutionary Command Council/RCC)에서 법률을 제정·선포하고, RCC 의장이 대통령·총리·군총사령관을 겸임하게 되었다. 명목상의 입법기관은 5년에 1번씩 선거를 통해 선출된 25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는 양원제 국회였다.

1970년대부터 실질적으로 바트당 지도자인 사담 후세인에 의한 통치가 시작되었으며, 1980년 이라크의 이란 침공으로 발발하여 1988년까지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과 합병에 이어 발발한 1991년의 걸프 전쟁에서 연이어 참패하는 가운데에서도 유지되었다.

2003년 미국과 연합군의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이 사망한 후 반군의 지속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2005년 새로운 헌법이 승인되었고, 12월에는 의회 선거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의회민주주의 공화국으로 총리가 실권을 행사하는 의원내각제 정부가 수립되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 및 국가 통합의 상징이며, 총리는 정부 수반 및 군 통수권자인 총리는 내각을 지휘하며 회의를 주재하도록 했다.

의원내각제 정부를 택하였으나 이라크 안의 종족과 종교의 대치 국면에 따라, 관례적으로 종족과 종파의 안배가 이루어졌으며, 대통령은 쿠르드족에서, 총리는 이슬람 시아파에서, 국회의장은 이슬람 수니파에서 맡는 관례가 시작되었다. 이러한 정치 체제는 2011년 미군이 철수한 후 계속된 이라크의 정치적 불안정 상황과 내전, 2019년의 민중 봉기 등에 의해 그 실질적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되었다.

이라크 바스라
이라크 바스라

초등교육과 중등교육의 무료 실시를 규정한 이라크에서는 원칙적으로 모든 어린이들이 6년제 초등학교에 다녀야 하지만, 실제로는 시설이 부족하여 농촌의 경우 전혀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린이들도 많다. 초등학교 졸업생은 중학교와 예비학교 과정으로 이루어지는 6년제 중등교육을 받을 수 있다. 문맹률이 중동지방에서 비교적 높은 편이며, 이라크 정부는 1970년대말부터 정부 주도로 문맹퇴치운동을 벌여왔으나, 계속되는 내전과 정치적 불안정에 의해 그 실질적인 성과는 미미하다.

역사

오랫동안 메소포타미아로 알려져온 이라크는 세계 최초로 문자기록 및 도시형성이 시작된 4대 고대 문명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기름진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그 역사는 고대 문명의 기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라크
이라크
고대 도시국가

수메르인들이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삼각주 지역에 나타난 시기는 BC 3500년 무렵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수메르인들은 설형문자를 개발하고, 우르·우루크·라가시·키시 등을 포함하는 도시국가연합을 형성했다. 이 도시국가들은 BC 2350년경 아카드 군주인 사르곤의 통치를 받는 제국이 되었다가 아카드인들이 쇠퇴하면서 2개의 새로운 중심세력, 즉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로 나누어져 발전했다.

아시리아인들은 BC 7세기에 고대 중동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광대한 제국을 세웠으나, BC 609년에 무너졌고, 그후 칼데아인을 중심으로 신(新)바빌로니아가 일어났으나, BC 550년경 이들을 포함한 메소포타미아 전체가 페르시아인들의 손에 넘어갔다. 페르시아인들은 BC 33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정복되었으며, 그의 사후(BC 323)에는 BC 141년까지 셀레우코스 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아바스 칼리프 왕조 수립

그후 파르티아와 로마, 곧이어 사산조 페르시아와 비잔틴 제국 사이의 전쟁으로 시달렸으며, 계속된 전쟁으로 쇠약해진 사산조 페르시아가 AD 7세기에 침략해온 아랍 이슬람교도들에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정복되면서 이슬람 제국의 치하에 들어갔다. 이슬람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된 이후에는 칼리프 자리를 놓고 싸우는 여러 세력들간의 싸움으로 다시 전쟁터가 되었다.

8세기에 아바스 칼리프 왕조가 수립되면서 바그다드가 수도이자 이슬람 세계의 중심지로 부상했으나, 1258년 아바스 왕조가 몽골족에게 멸망하면서 함께 붕괴되었다. 이라크는 16세기에 오스만인들에게 넘어가 1917년까지 여러 세기 동안 지배를 받았는데, 이 기간에 내부적인 반란과 이란을 비롯한 외부의 침략이 끊이지 않았다(오스만 제국). 17세기 중반에 페르시아 만 지역과 유럽의 교역이 시작되었는데, 19세기에 들어와 그 교역량이 더욱 늘었다.

1899년 오스만인들이 독일인들에게 내준 철도부설권에 자극받은 영국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중 이라크를 점령했다. 1921년 영국의 보호를 받는 군주국이 세워졌고, 1925년 헌법이 승인되었으며, 1932년에 이라크 하심 왕국으로 완전한 독립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중 친(親)독일정책을 고수해 1941년 영국에 재점령되었으며, 대전 후에는 정치 소요가 계속되었다.

사담 후세인의 통치
후세인(Saddam Hussein)
후세인(Saddam Hussein)

이라크 하심 왕국은 1958년 군부 쿠데타를 통해 붕괴되었고 공화정을 택한 이라크 공화국(Republic of Iraq)이 수립되었다. 1968년 무렵 사회주의 바트당이 정권을 잡았으며, 1970년대부터는 바트당 지도자인 사담 후세인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그는 국가의 산업화와 사회복지 개선에 막대한 석유 세입을 사용했으나, 1980년에 이란을 침공하면서 이란과 진퇴양난의 전쟁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1988년 휴전으로 중단되었다.

곧이어 1990년 8월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이듬해 1월 시작된 페르시아 만 전쟁에서 이라크는 국제연합(UN)의 지원을 받은 반(反)이라크 연합군에 패했다. 전쟁의 포화로 이라크 내의 여러 도시들이 파괴되었으며, 이라크군도 막대한 전력손실을 입었다. 패전 후 이라크 내 쿠르드족·시아파 등 주요 소수민족과 종교집단들의 분리주의 운동이 거세게 달아올랐으나, 연합군의 철수로 여력을 회복한 이라크 정부에 의해 무력으로 진압되었다.

이라크 전쟁

2001년 9월 미국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에 대한 테러 사건이 발생한 후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는 이라크가 미국에 반감을 갖고 대량살상무기(WMD)를 제조×보유하려고 하며, 테러 단체를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UN 안전보장이사회는 2002년 11월 이라크에게 무기사찰단 입국을 허용하고 이전의 모든 결의안에 따를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 1441호를 발표했다. 이라크는 무기사찰단을 받아들였지만, 부시와 블레어는 이라크가 계속해서 금지된 무기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UN의 결의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2003년 3월 20일 미국과 영국의 주도로 이라크에 대한 공습이 시작되었다. 4월 9일 수도 바그다드가 점령당했고 4월 말에 주요 전투가 끝났다. 바트당이 붕괴한 후, 이라크의 통치는 미국의 고위 외교관을 수반으로 한 연합군 임시행정처(Coalition Provisional Authority/CPA)가 맡게 되었다. CPA가 임명한 이라크 통치위원회는 한정된 권력을 가지고 있었다. 한편 사담 후세인은 2003년 12월 13일 티크리트 근방에서 숨어 지내다 붙잡혔다.

팔루자 전투

사담 후세인이 사망한 후에도 점령국인 미군에 대한 이라크 반군의 저항은 계속되었다. 2004년 3월, 이라크의 전략적 요충지인 팔루자에서 반란군이 미군 군납 회사 직원들을 사살한 후 시신을 모독하는 행위를 함에 따라, 4월 한달 동안 대규모의 미군이 팔루자 전역을 공격하는 팔루자 전투가 펼쳐졌다. 미군은 이 작전으로 팔루자를 장악하고 이라크 군에게 인계했으나, 팔루자를 담당한 이라크 여단의 병사들이 9월 들어 대부분 반군에 가담하는 결과를 낳았다.

11월 들어 팔루자에 대한 미군과 다국적군의 공격이 다시 시작되었으며, 반군과 격렬한 시가전이 펼쳐졌다. 압도적인 미군의 병력과 장비, 조직적인 전술로 반군은 와해되었고, 12월 들어 전투는 종결되었다. 이라크의 혼란 상황이 잠정적으로 지속되는 가운데 2005년 새로운 헌법이 승인되었고, 의회민주주의 공화국으로 총리가 실권을 행사하는 의원내각제 정부가 수립되었다.

시아파와 수니파의 대립

종족 간 안배 원칙에 따라 쿠르드족 출신 잘랄 탈라바니(Jalal Talabani) 대통령과 실권을 가진 알말리키(Nouri al-Maliki) 총리가 수장이 된 연립 정부는 2006년부터 미군과 다국적군에 의해 장악되었던 지역들과 이 지역들에 대한 군사적 권한들을 인계받기 시작했으나 수도 바그다드를 포함한 전역에서 반군들의 테러와 게릴라전은 계속되었다.

특히 시아파 출신 알말리키 총리가 집권한 후 이슬람의 대표적인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를 비롯한 수니파 반군과 시아파의 갈등이 심화됨에 따라, 이라크 정부군과의 복잡한 갈등관계가 이어졌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알 말리키 총리는 독재에 가까운 정치적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2010년 이라크 총선에서도 알말리키 총리의 연립 정부가 계속 집권하게 되었다.

IS 수립과 이라크 내전

이라크의 정치적 상황이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오르자 2010년 9월 미군은 이라크에서 철수할 것을 선언했다. 2011년 미군 전 병력이 철수했고,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의 내전이 다시 점증하기 시작했다. 시아파는 이라크 인구의 60~70%를 점하고 있지만 수니파였던 사담 후세인 시절 탄압을 받았으나, 시아파 출신 알말리키 총리 정부에서 수니파에 대한 노골적인 억압이 계속되자 수니파의 저항이 가속되었다.

2013년 이라크 정부군이 라마디의 수니파의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하자, 수니파의 무장단체가 반정부 세력을 규합하여 모술을 비롯한 이라크 북부를 장악하면서 이라크 내전이 발발했다. 2014년 6월 수니파 무장단체는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IS, Islamic State)를 수립했다고 발표했다.

IS는 극단적인 이슬람근본주의 성향을 보이면서 이라크내 유적을 '우상숭배'라며 파괴하는 한편, 파괴하는 모습을 영상을 통해 홍보해 국제 여론의 비난을 자초했다. IS는 모술 박물관과 고대 아시리아 님루드 유적, 또 고대도시 하트라의 유적 등을 '우상숭배'라며 파괴했는데, 님루드는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로 세계 문화유산 등재를 앞둔 유서 깊은 유적지였고, 하트라는 고대 파르티아 제국의 거대한 원형 요새 도시이자 최초의 아랍왕국 수도였다.

IS에 의해 파괴된 이라크의 팔미라 유적
IS에 의해 파괴된 이라크의 팔미라 유적

결국 2014년 총선에서 이라크의 알말리키 총리는 연임을 포기하고 알아바디(Haider al-Abadi)가 총리로 취임했다. 알아바디 총리 집권 후 정국이 안정되면서 2016년 10월 이라크 정부군은 미군과 다국적군의 지원 아래 IS가 장악하고 있는 모술을 공격했다. 오랜 전투 끝에 2017년 7월 모술은 이라크 정부군에게 함락되었다. 2019년 3월에는 IS의 마지막 근거지였던 시리아의 바구즈도 함락되었으며, IS는 사실상 지역적 기반을 잃고 와해 상태에 이르렀다.

물리적 기반을 상실한 상태에서도 인터넷 등의 매체를 통해 강력한 지도력을 발휘하던 '칼리프'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가 2019년 10월 26일 시리아 북부 이들이브에서 미군의 공격에 의해 사망하면서 IS는 지휘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IS는 10월 31일 알바그다디의 사망을 공식 인정하고, 후계자로 아부 이브라힘 알하셰미 알쿠라이시를 지명했으나 거의 동력을 상실했고, 2014년부터 이라크 정국을 혼란스럽게 했던 이라크 내전이 막을 내렸다.

반정부 시위와 혼란

내전이 막을 내리면서 이라크 국내 정세 안정에 대한 대중적 요구가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이라크 정부와 관료의 부패, 치안 부재로 인한 혼란이 계속되자, 2018년 7월부터 수도 바그다드를 비롯한 전역에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되었다. 2019년 10월 전국적인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자, 알아바디 총리에 이어 2018년 10월 취임했던 압둘마흐디(Adil Abdul-Mahdi) 총리가 2019년 12월 사임을 선언했다.

2020년 5월 알카드히미(Mustafa al-Kadhimi) 총리가 취임하면서 정국 혼란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했으나 수차례의 암살 시도가 알카드히미를 겨냥하여 일어났다. 혼란 가운데 시행된 2021년 총선에서 관례적으로 쿠르드족이 맡아온 대통령직에 압둘 라티프 라시드(Abdul Latif Rashid)가 선출되었고, 2022년 10월 알카드히미 총리 후임으로 알수다니(Mohammed Shaiyaa Sabbar Al-Soudani) 총리가 취임했다.

이라크와 한국과의 관계

이라크와 한국
이라크와 한국
외교

한국과 이라크는 1981년 7월 바그다드에 한국의 총영사관을 설치하면서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시작하게 되었다. 1989년 7월 9일에는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주 이라크 대한민국 대사관을 개설했다. 그러나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국제적인 제재조치가 내려진 가운데, 이듬해 1991년 1월 한국 정부는 이라크 내 공관을 잠정폐쇄했다. 1994년 5월 주한 이라크 대사관도 잠정폐쇄되었다. 2000년대에는 2004년 6월 김선일 피살사건으로 인해 한국 정부는 이라크 입국을 규제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한국 기업의 이라크 진출과 프로젝트 수행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게 되었다.

이후 2006년 8월부터 쿠르드 지역에 한해 단기 방문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게 되었고 2007년 2월 이후로는 기업 진출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여권법을 개정하고, 입국 제한을 완화했다. 그러나 2014년부터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S, Islamic State of Iraq and Syria) 반군이 이라크 서북부를 점령하여 치안이 불안정해지자 한국에서는 여행허가를 보수적으로 운용하게 되었다. 2017년 이라크 반군 사태가 안정화 되면서 여행허가 발급을 개시했고, 기업들의 진출도 재개되었다. 한편, 이라크와 북한은 1968년 1월 30일 수교했으나,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북한이 이란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1980년 10월 단교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라크는 한국의 비중 있는 해외건설시장으로 평가 받아왔으며, 1977년 3월 한국 건설업체의 진출이 시작된 이래 대형 공사들이 잇따라 한국인의 기술로 완성되어왔다. 현대건설, GS건설, 한화건설, 대우건설 등이 이라크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의 대이라크 주요 수출품은 보일러 및 기계류와 부품, 전기 및 전자기기와 부품, 철강제품, 자동차와 부품, 무기 및 총포탄과 부품 등이다. 주요 수입품으로는 원유 및 석유가 98%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2023년 기준 한국의 대이라크 수출액은 11억 8,797만 달러이며, 수입액은 81억 2,064만 달러이다. 이라크와 한국의 주요 협정으로는 무역 및 경제 기술 과학협정(1983. 3), 항공운수협정(1985. 5), 문화협정(1985. 9), 외교공관 부지교환협정(1987. 6)이 있다.

문화 교류·교민 현황

2000년대에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을 통해 이라크의 주요 TV방송매체인 알수마리아 TV 관계 직원들과 언론인들을 각각 초대하여 한국 문화를 알리고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한 바 있다. 또한 2013년 5월부터 한국 드라마 <허준>이 국영 이라키야 방송국을 통해 1년여간 방영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2023년 기준 이라크에는 934명의 재외동포가 거주하고 있으며, 2023년 기준 한국에 거주중인 이라크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450명이다.

참고자료

  • ・ 주 이라크 대한민국 대사관
  • ・ 한국무역협회 무역통계
  • ・ 외교부 재외동포 현황 2023 (2023년 기준)
  • ・ 법무부 등록외국인 국적별 현황 2023 (2023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