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자지라

알자지라

다른 표기 언어 al-Jazirah

요약 지형은 기복이 심한 불규칙한 고원으로,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있다. 북쪽으로는 신자르 산으로 막혀 있고 이라크 본토와는 타크리트와 안바르 사이의 경계선을 따라 구분된다.
알자지라가 비잔틴과 페르시아 두 제국 사이에 분할된 시기인 그리스도 기원 초기에는 수많은 도시와 시장이 있었다.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의 보호 아래에서 알자지라는 충돌과 반란의 중심지였다. 시아파나 하와리즈파 같은 집단은 알자지라를 중심으로 다마스쿠스나 바그다드 당국자들과 투쟁했다. 10세기에 알자지라는 모술의 함단 왕조, 바그다드의 부이 왕조, 디야르바크르의 마르완 왕조, 모술의 우카일 왕조 등의 지배를 받았다. 13세기 중반에는 몽골족이 침입하여 작은 도시들을 몽골에 복속시켰다. 현재 이라크의 알자지라 지역은 농사를 짓지 못하는 황량한 사막지대로, 낙타와 양을 치는 유목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농산물·공업특산품·상업활동으로 이름이 났다. 지형은 기복이 심한 불규칙한 고원(해발 240~460m)인 알자지라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에 있다. 북쪽으로는 신자르 산으로 막혀 있고 이라크 본토와는 타크리트와 안바르 사이의 경계선을 따라 구분된다. 알자지라가 비잔틴과 페르시아 두 제국 사이에 분할된 시기인 그리스도 기원 초기에는 수많은 도시와 시장이 있었다.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의 보호 아래에서 알자지라는 충돌과 반란의 중심지였다. 시아파(제4대 칼리프 알리의 추종자로서 알리의 자손만이 칼리프로 적법하다고 주장했음)나 하와리즈파(자격을 갖춘 이슬람교도라면 누구나 칼리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 호전적인 청교도적 집단) 같은 집단은 알자지라를 중심으로 다마스쿠스나 바그다드 당국자들과 투쟁했다.

9세기말에 알자지라는 이집트 툴룬 왕조의 종주권을 인정하면서 준자치권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892년 아바스 왕조는 이러한 권리를 박탈했다. 10세기에 알자지라는 계속 여러 독립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모술의 함단 왕조(905~991), 바그다드의 부이 왕조(977~983), 디야르바크르의 마르완 왕조(983~1085), 모술의 우카일 왕조 등이 그것이다. 잠시 동안 셀주크 제국의 일부가 되었던 알자지라의 각 지역들은 분리되어 존속했다.

알자지라의 동부에 위치한 가장 큰 지역인 디야르라비아의 역사는 이때부터 이 지역의 수도인 모술의 역사와 같이 전개되었다. 잔기 왕조, 맘루크 왕조, 페르시아의 일한국, 잘라이르 왕조, 투르크멘의 카라 코윤루와 아크 코윤루, 페르시아의 사파위 왕조가 차례로 이 지역을 지배했고 최종적으로 1637년 오스만 제국에 흡수되었다.

1918년 제국의 해체와 더불어 디야르라비아는 시리아와 이라크로 분할되었다. 서쪽 변경지역인 디야르무다르는 11세기 후반에 잠시 두 왕국으로 나뉘었다. 북부의 에데사에는 십자군에 의해 아르메니아인의 국가가, 남쪽 하란에는 투르크인의 이슬람 왕국이 들어섰다. 1144년 잔지가 에데사를 점령한 뒤 디야르무다르는 다시 이슬람교도의 통치를 받았다. 15세기에 투르크멘 부족들은 점차 디야르무다르를 잠식해들어왔고, 아크 코윤루 왕조가 마침내 1402년경에 차지했다. 이 지역은 17세기초에 오스만 제국에 병합되었으며 1918년 이후에는 투르크와 시리아로 분할되었다.

셀주크 제국이 혼란에 빠지자 이를 기회로 1092년 몇몇 투르크멘 부족은 알자지라의 가장 북쪽 지역인 디야르바크르에 자기들의 나라를 세웠다. 13세기 중반 몽골족이 침입하여 작은 도시들을 몽골에 복속시켰다. 디야르바크르는 잠시 동안 페르시아 사파위 왕조에 속했다가(1507~16) 오스만 제국의 지배하로 들어갔다(1516~1918). 이 지역의 수도, 아미드(지금의 터키 디야르바키르)는 문학과 학문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오스만 제국이 멸망할 때 이 지역은 터키 공화국으로 병합되었다.

현재 이라크의 알자지라 지역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북부지대로서 농사를 짓지 못하는 황량한 사막지대이다. 샴마르와 둘라임 부족처럼 낙타와 양을 치는 유목민들만이 유일하게 거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