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라크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다른 표기 언어 Iran-Iraq War

요약 이라크는 이란 국경지역에 위치한 풍부한 석유산출지역인 후제스탄을 장악하기 위해 호람샤르 시를 점령했으나 전쟁은 이내 교착상태에 빠졌다. 양국은 도시와 군사 및 석유시설에 대해 산발적인 공습과 미사일 공격을 가해 상대국의 도시, 군사 및 석유시설을 파괴했으며, 페르시아 만에 정박해 있는 상대국의 유조선들을 포격했다. 이라크의 전쟁 노력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그 밖의 중도적인 아랍 국가들로부터 공공연한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미국과 소련에서도 암암리에 후원을 받은 반면, 이란을 도운 동맹국은 시리아와 리비아뿐이었다. 군사적 교착상태가 계속되는 가운데 이란의 경제가 악화되고 이라크가 유리한 위치를 점유하자 이란은 지금까지 거부해오던 국제연합의 휴전중재안을 받아들였고, 이로써 전쟁은 끝났다.

이란-이라크 전쟁 (Iran-Iraq War)
이란-이라크 전쟁 (Iran-Iraq War)

1980년 9월 22일 이라크 군대가 양국의 접경지대에 있는 이란의 서부지역을 침공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전쟁의 근원은 이라크와 이란 사이에 산적해 있는 영토 및 정치 분쟁이었다. 이라크는 이란 국경지역에 위치한 풍부한 석유산출지역인 후제스탄을 장악하려고 했다. 이라크의 사담 아타크리티 후세인 대통령은 샤트알아랍 강 양안에 대한 이라크의 영토권을 재주장했는데, 샤트알아랍 강은 역사적으로 양국의 자연적 국경선이었던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의 합류 지점에 있었다.

또한 후세인은 이란의 새로운 이슬람 혁명정부가 이라크의 다수파인 시아파교도들 사이에서 반란을 선동하려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그는 이란에 선제 공격을 가하기로 결정했으며, 이 선제 공격은 표면화되고 있던 이란 신정부의 혼란과 이란 정규군의 사기 저하를 이용하려는 것이었다.

1980년 9월 이란을 급습한 이라크군은 넓은 국경선을 따라 신중히 후제스탄으로 진격해갔다.

이라크군은 호람샤르 시의 점령에는 성공했지만, 중요한 정유 도시인 아바단을 탈취하는 데는 실패했다. 1980년 12월 이란 영내의 약 80~120㎞ 지점에서 예기치 않은 이란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친 이라크의 공격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혁명의용군(혁명수비대)으로 정규군을 보강한 이란의 반격은 1981년부터 이라크군을 후퇴시키기 시작했다.

이란군이 처음으로 카룬 강 너머로 이라크군을 몰아낸 이후, 1982년에는 호람샤르를 탈환했다. 그해말 이라크는 이란의 모든 점령지역으로부터 자발적으로 군대를 철수, 이란과 평화협상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세인 대통령에 대해 개인적으로 큰 원한을 품고 있는 루홀라 호메이니가 영도하는 이란은 타협에 불응하고 후세인을 타도하기 위해 전쟁을 계속했다.

호메이니 (Ruhollah Khomeini)
호메이니 (Ruhollah Khomeini)

이라크는 강화된 방위시설로 자국의 영토를 방어했고, 전쟁은 이라크 국경을 넘나들며 참호전을 벌이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이란은 빈번이 보병 공격을 감행했지만, 부분적으로 훈련받지 않은 신병들로 구성된 군대의 공격은 이라크의 우세한 화력과 공군력에 의해 격퇴되어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양국은 도시와 군사 및 석유시설에 대해 산발적인 공습과 미사일 공격을 가해 상대국의 도시, 군사 및 석유시설을 파괴했으며, 페르시아 만에 정박해 있는 상대국의 유조선들을 포격했다.

이란이 쿠웨이트와 그 밖의 페르시아 만 연안국들의 유조선을 공격하자 이에 자극을 받은 미국과 서유럽의 여러 나라는 유조선을 보호하기 위해 페르시아 만에 전함을 배치하기에 이르렀다.

공습과 송유관의 차단으로 인해 양국의 수입과 외화 소득이 감소하자 양국은 대대적인 경제개발계획을 거의 중단했다. 이라크의 전쟁 노력은 사우디아라비아와 그 밖의 중도적인 아랍 국가들로부터 공공연한 재정적 지원을 받았고, 미국과 소련에서도 암암리에 후원을 받은 반면, 이란을 도운 동맹국은 시리아와 리비아뿐이었다.

1980년대 중반 이라크는 계속해서 평화를 호소했지만 이라크가 이란군에 대해 치명적인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보도들이 나오면서 이라크의 국제적 평판은 손상되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군사적 교착상태는 지속되었지만 1988년 이란의 경제가 악화되고 이라크가 전투지역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되자 이란은 지금까지 거부해오던 국제연합(UN)의 휴전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