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쿠웨이트

다른 표기 언어 Kuwait , (아)al-Kuwayt 동의어 쿠웨이트 국, State of Kuwait
요약 테이블
위치 중동아시아 아라비아반도
인구 4,349,380명 (2024년 추계)
수도 쿠웨이트시티
면적 17,818.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쿠웨이트 국 (State of Kuwait)
기후 사막성기후
민족 구성 쿠웨이트인(45%), 아랍인(35%), 남아시아인
언어 아랍어
정부/의회형태 입헌군주제 / 단원제
종교 이슬람교(85%), 그리스도교
화폐 쿠웨이트 디나르 (KD) 환율계산기
국화 아르파즈
대륙 중동
국가번호 965
GDP USD 135,305,000,000
인구밀도 245명/㎢
전압 240V / 50Hz
도메인 .kw

요약 페르시아(아라비아) 만 북서부 위쪽 모퉁이에 있는 국가. 수도는 쿠웨이트 시이다. 남북길이는 160km, 동서길이는 140km이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이라크, 남쪽으로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접해 있고, 동쪽으로는 페르시아 만에 면해 있다.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
  3. 경제
  4. 정치와 사회
  5. 문화
  6. 역사
  7. 쿠웨이트와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교류·교민 현황
쿠웨이트 국기
쿠웨이트 국기
지도
쿠웨이트

자연환경

쿠웨이트는 페르시아 만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높아져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 국경근처의 앗샤카야에서 최고 높이 290m에 이르는 완만한 평원에 자리잡고 있다. 쿠웨이트 만은 페르시아 만에서 내륙으로 48km까지 만입해 있다.

쿠웨이트 만 북서쪽 해안을 따라 145m의 높이로 단층애 앗자우르가 솟아 있으며, 남쪽 해안으로는 천연항이자 쿠웨이트의 수도인 쿠웨이트 시가 자리잡고 있다. 쿠웨이트 만 서쪽 끝에 있는 알자라 오아시스, 남동쪽과 연안지역의 기름진 몇몇 작은 구역을 제외하면 대부분이 사막지역이다.

기후는 아열대성에 속한다. 여름(4~10월)과 겨울(11~3월)의 기후차가 매우 크며, 여름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4~9월의 평균기온이 44℃이지만 때때로 54℃까지 올라가는 경우도 있다. 연강수량은 25~180㎜에 이른다. 비는 거의 겨울에만 내리며, 북부·서부·중부의 사막 분지 또는 플라야의 유목민들에게 신선한 물을 공급한다. 겨울 평균기온은 가장 서늘한 달의 경우 약 16℃이다. 바람이 자주 불며 주로 6~7월에 거센 모래바람이 휘몰아친다. 농경지는 거의 없으며 유일한 자원으로 광활한 유전과 천연 가스전이 있다.

20세기말 석유매장량이 전세계 매장량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이라크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제3위의 매장량을 기록한다. 천연 가스 매장량은 세계 총매장량 가운데 거의 1%를 차지한다.

국민

쿠웨이트 국민
쿠웨이트 국민

국민은 아랍인과 이슬람교도가 압도적으로 많다. 쿠웨이트에 사는 외국인은 남아시아인과 비쿠웨이트계 아랍인이 대부분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공용어인 아랍어를 쓰며 페르시아어와 영어도 사용한다. 거의 모든 국민이 도시에 거주한다. 연간 인구성장률은 주로 이주민들 때문에 전통적으로 높은 편이다. 정부에서는 쿠웨이트 토착민과 1920년 이전부터 조상이 쿠웨이트인이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시민권을 주고 있다. 2024년 추계인구는 434만 9,380명이며, 전체 인구가 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15세 이하의 유소년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은 26%이다(2024).

경제

경제는 공기업과 사기업의 혼합경제로 발전하고 있다. 국민총생산(GNP)은 인구만큼 빠르게 증가하지는 않지만, 1인당 GNP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가운데 하나이다. 국내총생산(GDP)의 주요원천은 원유와 천연 가스 생산 정제업이다.

농업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경제활동으로 GDP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채소를 가꾸고 가축을 기르기 위해 얼마 안 되는 경작지가 순환처리된 폐수 또는 염분이 있는 지하수로 관개되고 있다. 목초지는 전체 면적의 1/12 이하이며, 주로 양·염소·소 등을 사육한다. 페르시아 만에서 이루어지는 상업적 어업은 현지 소비를 위한 병어를 비롯해 냉동시켜 수출하는 보리새우와 작은새우잡이가 주종을 이룬다. 제조업은 GDP 가운데 약 8%를 차지하며, 거의 같은 비율의 노동력을 고용하고 있다.

다양한 석유제품 외에 주요제품으로는 플라스틱·시멘트·도자기와 석면제품, 금속 파이프, 전선, 건전지, 가구, 모직담요 등이 있다. 공장들은 앗슈아이바 공업단지와 미나압둘라 공업단지에 밀집되어 있다. 모든 전력은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다.

1970년대 이후 쿠웨이트의 경제발전은 정유·해운·마케팅 능력의 확장을 통한 석유산업의 수직적 통합으로 이루어졌다. 정부에서 모든 석유, 천연 가스 산업과 여기에서 파생된 산업체, 발전소, 증류수 공장을 국유화했으며, 건축자재·건설·무역·금융회사를 민영화시켰다. 1970년대말부터 정부는 대규모의 이국적 노동력을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최소한의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석유, 천연 가스 관련산업과 다른 저공해산업의 발전에 힘을 기울여왔다. 그밖에 많은 석유자산을 해외에 투자하고 있다.

막대한 석유 세입 덕분에 쿠웨이트는 예산적자 없이 여러 가지 산업을 성장시키고 국민을 위한 종합적인 사회보장제도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모든 일자리 가운데 거의 절반이 공공행정·국방·서비스 부문에 속해 있었으며, 예산 세입의 주요원천은 석유와 천연 가스였다. 쿠웨이트의 도로는 사실상 모두 포장되어 있다. 주요항구는 앗슈와이크·앗슈아이바·미나알아흐마디 등이다. 쿠웨이트 시에는 국제공항이 있다. 송유관으로 원유가 수송된다.

쿠웨이트의 도로
쿠웨이트의 도로

1970년대말과 1980년대초에는 수출액이 수입액의 3배가 넘었으나 국제시장의 석유가격 하락으로 1980년대말에는 무역이 거의 균형을 이루었다. 수출품은 주로 원유, 천연 가스, 정유제품이며, 주요 수출대상국은 일본·네덜란드·미국이다. 수입품은 주로 기계·차량·생활필수품·식품·동물이며, 주요 수입대상국은 미국·일본·독일이다.

쿠웨이트의 수출
쿠웨이트의 수출

정치와 사회

쿠웨이트는 사바흐 왕가(Āl ṣabaḥ)가 지배하는 입헌군주국이다. 1960년에 채택된 헌법에 따라 지배 가문은 군주를 뽑을 수 있는 권한이 있으며, 군주가 국가의 수장이 되고 자신이 임명한 총리와 각료회의를 통해 권력을 행사한다.

1976년 군주는 단원제 입법기관인 국회를 해산하고 사실상 헌법의 효력을 중지시켰다. 1981년부터 국회가 열렸으나 1986년 이란-이라크 전쟁과 석유가격의 폭락에 따른 압력으로 다시 중단되었다. 민법과 신분법에 관련된 문제는 이슬람 종교법에 의해 처리된다.

쿠웨이트 국회
쿠웨이트 국회

쿠웨이트에는 시민을 위한 종합적인 사회복지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가난한 시민에는 재정적인 지원과 집을 마련해주며, 고용된 모든 시민에게는 산재·노령·장애 혜택을 제공한다. 또한 정부에서는 국적에 관계없이 모든 거주자들이 적은 비용으로 의료보험제도를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 보건상태는 대체로 좋은 편이며, 1인당 의사의 비율도 상당히 높다. 또한 평균수명도 남자 72세, 여자 74세로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유아사망률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이 심각한 문제로 남아 있다.

정부에서는 쿠웨이트 원주민들에게 모든 단계의 교육을 무상으로 실시하며, 6~14세의 쿠웨이트 원주민은 의무적으로 교육을 받는다. 성인 인구 가운데 3/4 이상이 글을 읽고 쓸 줄 안다. 주요 고등교육기관은 쿠웨이트대학교(1962 설립)이다. 언론은 민간 소유이며 대체로 검열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각료회의의 권한에 따라 군주 또는 쿠웨이트 경제를 비판하는 신문의 발행을 중단시킬 수 있다. 공보부에 의해 관영 신문사와 라디오·텔레비전 방송국이 운영된다.

문화

쿠웨이트에는 이슬람 문화의 유산이 있다. 쿠웨이트는 이슬람교의 성도인 메카 순례에 참가하는 순례자들 일부가 거쳐가는 경유지이다. 쿠웨이트 '순례의 도시'에서는 이 여행객들에게 숙식과 함께 기본적인 서비스가 제공된다. 일부 쿠웨이트인들은 지금도 사냥과 낙타 경주 같은 전통놀이를 즐긴다.

역사

고고학적인 증거, 특히 쿠웨이트 만 파일라카 섬에서 발견된 증거에 의해 쿠웨이트는 수메르와 인더스 강 유역(BC 3000~2000)과 동시대에 속한 고대 문명지의 일부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파일라카 (Faylakah)
파일라카 (Faylakah)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도시들과 교역 중심지 딜문(지금의 바레인으로 알려진 곳)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파일라카 섬은 BC 1200년경까지 번영하다가 역사 기록에서 사라졌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시대(BC 323경)에 그리스 식민지 개척자들이 파일리카 섬에 들어와 아르테미스 여신을 섬기는 신전을 세웠다. 파일리카 섬은 셀레우코스 왕조로 넘어갔으나 로마 시대에 쇠퇴했다.

18세기초 아라비아 중부지역의 아니자족은 더 좋은 목초지와 물을 찾아 동쪽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때 그들은 쿠웨이트 시를 세웠는데, 전해지는 바에 의하면 시를 세운 연대는 1710년이라고 한다. 이어 1756년 알 사바흐 가문의 아보트 라힘을 수장으로 하는 자치 토후국이 건설되었다. 사바흐 왕가는 지금까지 쿠웨이트를 지배하고 있다.

쿠웨이트가 처음으로 유럽 강대국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세기말로서 독일이 베를린-바그다드 철도를 쿠웨이트 항까지 연장하려고 애쓰던 때였다. 독일과 오스만 제국의 영향을 막기 위해 영국과 쿠웨이트는 1899년 영국에게 쿠웨이트의 외교권을 넘겨준다는 내용의 조약을 맺었다. 1914년 영국-터키 전쟁이 일어나자 영국은 쿠웨이트에 보호령을 설치했다.

나지드(지금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는 1922년 타협적인 중립지대 설치를 포함한 알우카이르 조약을 맺어 해결되었다. 1923년에는 이라크와 북쪽 국경에 관한 합의가 이루어졌다. 1961년 6월 영국 정부는 쿠웨이트의 완전한 독립을 승인했다. 이에 대응하여 이라크는 쿠웨이트 전체가 이라크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쿠웨이트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파견했으며, 1961년 6월 20일 아랍 연맹이 쿠웨이트 독립을 승인함으로써 이라크의 주장은 수그러들었다.

쿠웨이트는 아랍 국가들 사이에서 전형적인 중립·중재 정책을 폈다. 그러나 1980년에 시작된 이란-이라크 전쟁은 페르시아 만의 석유 선적뿐만 아니라 쿠웨이트의 안보도 위협했고, 쿠웨이트는 1980년대 내내 많은 차관을 제공하여 암암리에 이라크를 지지했다. 그러나 전쟁 채무상환과 다른 여러 가지 문제들에 관한 협상이 결렬된 후 1990년 8월 2일 쿠웨이트는 이라크군에게 침공·점령당했고, 쿠웨이트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옮겨졌다(→ 걸프 전쟁).

걸프 전쟁(The Persian Gulf War)
걸프 전쟁(The Persian Gulf War)

한편 이라크군은 조직적으로 쿠웨이트 자산을 약탈했다. 국제연합(UN)은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몰아내기 위해 미국이 주도하는 대(對)이라크 통상금지조치를 승인했으며, 11월 29일 동일한 목적으로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을 승인했다. 1991년초 미국이 이끄는 연합군은 1개월 동안 이라크에 대한 공중폭격을 감행한 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작전을 시작, 2월 23~27일 쿠웨이트에서 이라크군을 몰아냈다. 몇 주일 후 쿠웨이트 망명 지도자들은 수도 쿠웨이트 시로 돌아왔다. 이라크군이 퇴각하면서 전국의 1,300개 유정 가운데 절반 이상을 파괴하여 초기의 재건 노력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많은 유정들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오랫동안 계속 타올랐다.

쿠웨이트와 한국과의 관계

쿠웨이트와 한국의 국기
쿠웨이트와 한국의 국기
외교

쿠웨이트는 1972년 7월에 한국 통상대표부가 설치된 데 이어 1979년 6월에 한국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한국은 1979년 7월에 쿠웨이트에 대사관을 개설했고 쿠웨이트는 1992년 10월에 주 대한민국 대사관을 개설했다. 한국은 1990년 8월에 이라크군의 침공으로 이의 철군을 요구하는 다국적군에 의한 걸프전쟁에 참전했으며, 1991년에는 의료 및 수송 지원단을 파견하여 쿠웨이트 전후 회복에 기여했다. 한국은 2007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국빈 방문한 이후 각 부처 장차관이 방문했으며, 쿠웨이트는 2015년 4월에 알오바이디 보건부장관, 2016년 3월에 야세르압둘 주택부장관이 방한했다.

한편 북한은 1970년 11월에 주 쿠웨이트 북한무역대표부를 설치한 이후 2001년 4월에 쿠웨이트와 수교했으며 2003년 9월에 주 쿠웨이트 대사관을 개설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한국의 해외건설 분야에서 쿠웨이트는 사우디아라비아·리비아·이라크와 함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건설시장이었다. 한국에게 쿠웨이트는 2017년 기준 원유 1.6억 배럴, LPG 525만 배럴을 도입하는 원유 및 LPG 제2위 도입국이며, 약 1.3억 달러의 건설공사 수주국이다. 2023년 기준 쿠웨이트의 대한국 수출액은 74억 365만 달러, 수입액은 2억 8,949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석유와 역청유, 광물성 연료, 선박과 수상 구조물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자동차, 전기기기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항공협정(1982년 1월), 문화협정(1983년 2월), 통상증진 및 경제기술협력협정(1984년 2월), 항공운수면세약정(1985년 12월), 이중과세방지협약(2000년 6월), SOFA협정(2003년 4월), 경제기술협력협정(2005년 11월), 형사사법공조조약(2007년 3월), 범죄인인도조약(2007년 6월), 수형자이송조약(2011년 3월), 외교관·관용·특별여권사증(비자)면제협정(2015년 3월)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양국 간에는 문화교류도 활발하여 한국의 국악공연, 현대 미술 전시, 태권도 시범단 방문, 한국 영화 및 관광전이 개최되었으며, 재쿠웨이트한인회가 결성되어 있고 한글학교도 설립되어 있다. 한편 한국문화 소개 및 한-쿠 양국 간 민간 문화교류를 위한 한-쿠문화디와니야가 2012년 발족하여 활동 중이다. 2023년 기준 쿠웨이트에는 532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한국에는 2023년 기준 49명의 쿠웨이트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자료

  • ・ 외교부
  • ・ 주 쿠웨이트 대한민국 대사관
  • ・ 한국무역협회 통계
  • ・ 외교부 재외동포 현황(2023년 기준)
  • ・ 법무부 등록외국인 국적별 현황(2023년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