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

다른 표기 언어 Saudi Arabia 동의어 사우디아라비아왕국, Kingdom of Saudi Arabia
요약 테이블
위치 아시아 아라비아반도
인구 37,478,559명 (2024년 추계)
수도 리야드
면적 2,149,690.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 (Kingdom of Saudi Arabia)
기후 사막성기후
민족 구성 아랍인(90%), 아프리카계 아시아인(10%)
언어 아랍어
정부/의회형태 군주제
종교 이슬람교(100%)
화폐 사우디 리얄 (SR) 환율계산기
국화 대추야자
대륙 중동
국가번호 966
GDP USD 748,003,000,000
인구밀도 18명/㎢
전압 220V / 60Hz
도메인 .sa

요약 중동의 국가. 아라비아 반도의 4/5 정도를 차지하며, 북쪽으로는 요르단·이라크·쿠웨이트와 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카타르·아랍에미리트·오만, 남동쪽으로는 오만의 일부, 남쪽과 남서쪽으로는 예멘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국민의 대부분이 아랍인이며 공용어는 아랍어이다. 종교는 공식적으로 이슬람이며, 수니파가 우세하다. 석유수출국기구에 속한 최대 석유 생산국이자 주요 석유 수출국 중 하나이다. 기타 생산물로는 천연 가스, 석고, 대추야자, 밀 등이 있다. 정치형태는 절대군주제를 취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교의 역사적 발생지이다.

목차

접기
  1. 사우디아라비아 자연환경
  2. 사우디아라비아 국민
  3. 사우디아라비아 경제
  4. 사우디아라비아 정치와 사회
  5. 사우디아라비아 문화
  6. 사우디아라비아 역사
  7.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교류·교민 현황
사우디아라비아 국기
사우디아라비아 국기

수도는 리야드이다. 아라비아 반도의 4/5 정도를 차지하며, 북서-남동 방향으로 약 1,950km 이상, 남서-북동 방향으로 1,240km가량 펼쳐진다.

북쪽으로는 요르단·이라크·쿠웨이트와 접해 있으며 동쪽으로는 카타르·아랍에미리트·오만, 남동쪽으로는 오만의 일부, 남쪽과 남서쪽으로는 예멘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쪽으로는 홍해를 사이에 두고 이집트·수단·에티오피아와 마주보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바레인 만 너머로 바레인이, 페르시아 만 건너편에는 이란이 자리잡고 있다. 국민의 대부분이 아랍인이다. 공용어는 이슬람어이다. 종교는 공식적으로 이슬람교를 믿으며, 수니파가 우세하다. 화폐단위는 사우디리얄(Saudi Rial/SR)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좁은 홍해 해안을 끼고 솟은 웅장한 산악지대에 위치한 고원으로, 국토의 9/10 이상이 사막이며, 남부에는 세계 최대의 연속 사막지대인 룹알할리가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속한 최대 석유 생산국이자 주요 석유 수출국 중 하나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매장량은 세계 총매장량의 1/4을 차지한다. 기타 생산물로는 천연 가스, 석고, 대추야자, 밀 등이 있다. 정치형태는 절대군주제를 취하고 있다. 왕이 국가와 정부의 수장이며, 왕세자가 보좌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슬람교의 역사적 발생지이다. 근대 이전에는 내부·외부의 지배자들이 이 지역을 차지하기 위해 끊임없는 각축전을 벌였다. 1517년 오스만 제국이 반도의 대부분에 대한 명목상의 통치권을 획득했다. 18~19세기에는 와하비로 알려진 이슬람 개혁집단이 사우드 왕조와 연합하여 중앙 아라비아 대부분의 지배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이후 그들은 정치적 쇠퇴를 겪었으나, 1904년까지 영토의 대부분을 회복했다.

영국이 사우디를 보호국으로 삼았으나(1915~27), 후에 헤자즈와 나지드 왕국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했다. 두 왕국은 1932년에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으로 통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우디 왕국의 통치자들은 중동의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지지하고 미국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유지했다. 2000년에 사우디아라비아와 예멘은 오랜 국경 분쟁을 타결했다.

지도
사우디 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 자연환경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앙고원은 세로로 좁다랗게 내려간 홍해 해안평야를 끼고 가파르게 솟아 장엄한 급경사면을 이룬다(→ 티하마). 이 해안 산악지대는 북부 헤자즈(알히자즈) 지방에서 고도 1,500m에 이르며 남부 아시르 지방에서는 해발고도 3,000m를 넘는다.

룹알할리(Rub' al-Khali)
룹알할리(Rub' al-Khali)

고원은 북동쪽으로 내리막을 이루는데 이중 용암과 자갈로 된 고원 황무지는 아치형을 이루는 광대한 몇몇 사막지대로 통합된다. 면적이 약 5만 7,000㎢인 북부의 나푸드 사막과 약 65만㎢의 면적을 가진 남부의 룹알할리(영어 이름은 Empty Quater) 대사막은 세계 최대의 연속 사막지대이다. 세로로 활 모양으로 생긴 여러 개의 산등성이들, 즉 케스타들과 다나 사막(1,450㎢)이 남부와 북부의 사막들을 연결한다.

전체적인 지형은 사막으로부터 동쪽으로 서서히 경사져 내려가다가 페르시아 만 연안의 알하사 지방에 이르러 저지 늪지대와 솔트 플랫을 형성한다. 페르시아 만의 해안선은 블규칙적이고 연안해역은 수심이 대단히 얕다. 1년 내내 끊이지 않고 흐르는 영구천은 전혀 없다. 전반적인 담수 공급은 지하수를 통해 이루어지고 얼마간은 오아시스와 같은 지표수로 이루어진다.

그밖에 수많은 내륙의 와디(강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사막지대의 특징적인 건곡)와, 지하 깊숙이 있는 대수층의 물이 투수되면서 채워지는 지하수를 끌어낸 우물에서 급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경작가능한 토지의 0.5%가 관개에 의존한다. 토양은 매우 척박해서 토양을 형성한 기반암의 구조를 잘 나타내준다. 광대한 지역이 크기가 고르지 않은 자갈들로 뒤덮여 있다. 와디와 강 유역과 오아시스 등지에서는 퇴적층이 발견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거의 전지역이 하나의 사막으로서 뚜렷한 3개의 기후지대로 나뉜다. 첫째 지대는 예멘 국경 가까이에 있는 아시르 지방으로, 연평균강우량 480㎜ 정도이며 습윤·온화한 기온을 나타낸다. 지역의 분포는 그리 넓지 않다. 둘째 지대는 서부 산악지대를 따라 초원지대가 펼쳐져 있는데 북부는 동서너비가 160km 미만이지만 메카 부근에서는 그 너비가 거의 480km에 이른다. 셋째 지대는 전국토의 95% 이상을 차지하는 건조한 불모 사막지대와 반건조 사막지대이다. 룹알할리 사막에서는 10년 동안 비가 전혀 내리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전국 기온은 겨울철이 14~23℃로서 상대적으로 시원한 편이고, 여름은 지독한 더위를 보여 6∼8월에는 38℃가 넘으며 종종 54℃까지 올라가기도 한다. 습도는 해안지대가 특히 높고 그 이외의 지역은 낮은 편이다. 식생으로는 유목민들이 사육하는 양과 염소의 사료가 되는 약간의 목초와 관목들이 있다. 도처에서 발견되는 대추야자는 이 나라에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자생 나무이다. 야생동물로는 늑대·하이에나·여우 등이 있으며 가젤·표범·산양 등 몸집이 좀더 큰 동물들도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매장량은 세계 총매장량의 약 1/4을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천연 가스 매장량은 세계 총매장량의 약 4%를 차지한다. 보크사이트·금·구리·납 등 고품위철광석도 매장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민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구 구성은 아랍인이 단연 우세하다. 홍해 연안지방에 셈족과 아프리카 흑인 사이의 혼혈인 검은 피부의 주민들이 많이 살며, 동부지방에서는 이란·파키스탄·인도 등과 인종적인 교류가 있었음이 명확히 드러난다. 수많은 외국 근로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슬람교의 발상지로서 거의 전인구가 수니파 이슬람교도이며 나머지는 이슬람교 제2의 종파인 시아파교도이다. 석유산업 근로자들을 비롯한 외국 사람들만이 그리스도교도이다. 공용어는 아랍어이고, 영어도 널리 쓰이고 있는데, 특히 석유산업이 집중되어 있는 동부지방에서 많이 사용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비교적 높은 출생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인구의 약 45%가 15세 미만이다. 광대한 사막들이 사람들의 거주지 사이에 놓여 있지만, 전체 인구의 약 3/4이 도시지역에 거주한다.

사우디아라비아 경제

아람코(ARAMCO)
아람코(ARAMCO)

사우디아라비아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함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혼합경제체제의 개발도상국이다.

석유의 생산·수출이 경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1970년부터 실시된 5개년계획으로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되었으며, 국민총생산(GNP)이 인구증가 속도보다 빠르게 증가하지는 않지만 1인당 GNP는 여러 선진국들의 GNP와 비슷한 수준이다.

농업은 전체 노동력의 약 1/7을 고용하고 있으며 GNP의 약 5%를 차지한다. 농업생산은 물의 부족, 토양 염분의 증가, 소규모 농지 등으로 인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1980년대에 정부는 농민들을 위한 광범위한 대출 지원계획을 마련했으며 지하수를 개발하고 농촌지역의 경제기반을 개선할 자금을 조성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여러 가지 품목들 가운데 밀·달걀·우유 등의 품목을 자급자족할 수 있게 되었다. 주요농산물은 밀·수수·보리·기장·알팔파 등이다. 그러나 아직도 식품 공급의 약 7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최대 산유국으로서 석유 생산량이 세계에서 3번째로 크며 세계 총생산량의 약 1/12을 생산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초에 걸쳐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 생산 전체를 담당하는 아람코(Aramco : Arabian American Oil Company)를 점차 인수하여 완전한 소유권을 획득한 후 페트로민(Petromin : General Petroleum and Mineral Organization)을 통해 관리하고 있다. 페트로민은 또한 석유의 개발·정제·판매 사업을 담당한다.

석유 수출국 기구(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석유 수출국 기구(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아람코에 의해 상당량의 천연 가스가 생산되며 그밖에 석회석·대리석·석고·점토·암염 등의 광물도 개발중이다.

공업 부문은 석유를 포함해서 GNP의 약 1/4을 차지하며 총노동력의 약 1/10을 고용한다. 사우디 공업화 계획은 1970년대 중반 정유 및 석유가공 공장의 건설을 기초로 시작되었다. 정부는 외국 회사와 합동으로 주요사업들에 과감한 투자를 해나갔다.

주요계획사업으로 석유화학제품·비료·압연강철 등을 생산하는 공장들이 건설되었으며, 정부는 제빵·인쇄업·가구제조업 같은 소규모 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사기업을 장려했다.

서비스업은 GNP의 약 2/5를 담당하고 있지만 고용 인구는 총노동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전기는 국영 전력회사에서 운영하는 4개의 지방 배전망에 의해 공급되며 전적으로 석유에 의해 발전된다.

통상적으로 정부 총세입의 약 2/3가 석유판매수입으로 충당되는데, 이것은 세출보다 다소 낮은 수준이다. 국방비와 치안경비가 예산의 최대 지출항목이다.

사우디아라비아 화폐국이 통화와 막대한 해외자산을 관리한다. 일반은행의 절반 이상이 사우디가 주축을 이루는 과감한 합작투자를 하고 있으며 여러 가지 해외업무를 담당하는 2개의 머천트 뱅크가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석유시장은 미국·일본·싱가포르·네덜란드·프랑스 등이다. 1981년 페트로민은 페르시아 만에서 홍해까지 아라비아 횡단 원유송유관을 완공함으로써 서유럽과 북아메리카까지의 수출로를 3,570km나 단축시켰다.

수입 품목으로는 다양한 제조품과 식품 등이 있으며 주요 수입대상국은 미국·일본·독일·영국·이탈리아 등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정치와 사회

사우디아라비아는 사우드 왕가가 지배하는 절대군주제 국가이다.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Salman bin Abdulaziz Al Saud)
살만 빈 압둘 아지즈 알 사우드(Salman bin Abdulaziz Al Saud)

왕족의 핵심구성원들이 왕을 선출하며 울라마라고 불리는 이슬람교 지도층의 동의를 받는다. 왕은 이슬람 법, 즉 샤리아에 따라 통치하며 왕의 제반 결정사항들은 왕족, 울라마, 주요부족의 지도자들, 군(軍), 관료집단 등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왕은 정책을 결정하고 관료집단을 이끌어나갈 내각을 임명한다. 사법제도는 이슬람법 샤리아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왕은 국가 최고의 상소법원 역할을 한다. 군대는 미국과 여러 서구국가들로부터 정교한 무기들을 구입함으로써 크게 현대화되었다. 징병은 지원제로 이루어진다.

정부의 사회복지제도는 모든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하며 실직·산업재해·질병·출산·신체장애·노령 등의 경우에 보조금을 지급한다. 또한 모든 국민과 외국인 거주자들에게 무료로 의료혜택을 주고 있으며 리야드 교외에 있는 '킹 파이잘 메디칼 시티'에는 세계 최신의 의료장비들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보건 및 공중위생 상태는 일반적으로 열악한 편이다. 말라리아·트라코마·결핵·이질·콜레라 등의 질병이 지금도 곳곳에서 발병하고 있다. 유아사망률은 중동 내부에서도 비교적 높은 편이고 평균수명은 겨우 56세이다. 이런 보건상의 제반 문제들은 의료 요원의 부족으로 더욱 나빠지고 있다.

교육은 모든 학생들에게 무상으로 실시된다. 교육제도는 6년제 초등교육, 3년제 상급 초등교육, 3년제 중등교육으로 이루어지며, 고등교육기관으로는 2년제 기술·상업 대학과 4년제 종합대학교가 있다. 일부 소수 학생들은 외국 유학을 위한 장학금을 받는데 국내로 돌아와 일해야 할 암묵적 의무가 부과된다.

15세 이상의 국민 중 약 50%라는 높은 문맹률에도 불구하고 아동취학이 의무로 되어 있지는 않다. 신문사는 민간인 소유지만 대부분의 사우디 사회가 그렇듯이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띠고 있어 정부에 대한 비판은 거의 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주요일간지 중의 하나인 〈알마디나 알무나와라 al-Madinah al-Munawara〉는 왕가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으며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국영이다.

KAUST 실험실
KAUST 실험실
사우디 아라비아 대학 건물
사우디 아라비아 대학 건물

사우디아라비아 문화

마스지드 알 하람(Masjid al-Haram)
마스지드 알 하람(Masjid al-Haram)

비교적 자유로운 아랍 여러 나라의 영향이 여과되어 들어오고 외국 유학생들이 여러 서구적인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아라비아의 문화는 엄격한 이슬람교 율법의 지배를 받고 있다. 시, 정형적인 산문, 웅변 등이 이슬람 시대 이전부터 지금까지 최고의 예술로 여겨지고 있으며 많은 시인과 순회 이야기꾼이 존재한다.

19세기말 연대기의 편자인 우스만 이븐 비슈르가 최고의 작가로 꼽히며, 유목민들과 문맹인 부락민들이 여전히 민속문학의 본류를 잇고 있으나 오늘날에는 신문과 정기 간행물에 문학작품들이 실리기도 한다. 엄격한 와하브 법전에 의해 대중 앞에서의 공연은 금지되어 있지만 음악과 춤은 항상 사우디인들의 일상생활 속에 일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시각예술은 기하학적인 디자인, 꽃 문양이나 추상적 디자인, 장식서체 등에 한정되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역사

아라비아 반도(Arabian Peninsula)
아라비아 반도(Arabian Peninsula)

아랍족의 발생지는 중앙 아라비아와 북아라비아로 추측된다. 이슬람 이전 시대의 중요한 아라비아 부족으로는 홍해 연안 헤자즈 지방 북부에 자리잡고 살던 타무드족과, 데단과 그 주위에 살던 리히아니트족을 꼽을 수 있다. 아라비아 반도 외부의 아랍 민족들은 고대부터 아라비아를 지배하고 영향을 끼쳤다.

트란스요르단으로 알려진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라흠 왕조는 아랍어를 공용어로 사용한 최초의 왕국으로 남아라비아의 국경지대까지 그 세력이 미쳤다. 중앙 아라비아 서부의 킨다 국이 4세기와 5세기에 라흠 왕조로부터 중앙 아라비아 대부분의 지배권을 강제로 빼앗았으나 528년에 다시 밀려났다.

622년 메카에 거주하는 쿠라이시가(家)의 마호메트가 알라 신(神)을 유일신으로 설교하면서 메디나로 이주하여 이슬람교를 창시했다. 이로써 서구세계의 3대 일신교 가운데 가장 늦게 이슬람교가 성립되었다. 마호메트는 메디나에서 더욱 많은 신도를 얻었으며 메카로 돌아와 이곳을 점령하고 메카·메디나 두 곳을 자신이 창시한 새 종교의 성지로 삼았다. 그러나 661년 이슬람 왕조 우마이야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아 건국함으로써 이슬람교의 정치 중심지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다마스쿠스로 넘어갔다.

마호메트(Muhammad)
마호메트(Muhammad)

중세 아라비아는 아라비아 반도의 지배권을 차지하려는 내부·외부의 지배자들 간에 끊임없는 각축전이 벌어졌다. 이들 대부분은 칼리프에게 충성을 맹세했으나 자치를 보장받았으며 사실상 독립되어 있었다. 1517년 오스만 제국이 정권을 인수하기 전까지는 아라비아에서 카르마트파(派), 파티마조(朝), 셀주크 왕조, 아이유브조, 맘루크조 등 여러 세력 사이에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아라비아의 현대사는 오스만 통치에 대한 반감이 증대되고 18세기초에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면서 시작되었다. 1745년 무하마드 이븐 아브드 알 와하브가 이슬람의 외적 형식주의와 근대주의를 탈피하고 〈코란〉에 밀착하는 교리 엄수주의를 제창하기 시작했다. 그는 디리야의 무하마드 이븐 사우드 왕의 지지를 받았고, 그결과 와하브주의 운동이 아라비아 반도에 널리 퍼져나갔다(→ 와하비). 이들은 오스만 제국과 이집트의 저항으로 난관에 부딪혔으나 싸움은 19세기 내내 계속되었다.

1904년까지는 이븐 사우드(아브드 알 아지즈 2세) 왕에 의해 중앙 아라비아(나지드 지방)의 원래 사우디의 영토 모두를 되찾았다. 1915년 이후 사우디는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가 1927년 헤자즈와 나지드 왕국의 독립과 주권을 인정받았다. 두 왕국은 1932년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우디아라비아는 중동의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지지하고 미국과 긴밀한 유대를 유지해오고 있으며,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81년 사우디아라비아는 페르시아 만 연안의 여러 나라를 포함하는 하나의 지역 경제·방위 협정인 페르시아 만 협력회의(Gulf Cooperation Council/GCC)의 중심지가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의 관계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
사우디아라비아와 한국
외교

사우디아라비아는 1962년 10월 16일에 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계속 우호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비동맹중립외교노선을 표방하고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친서방정책을 펴고 있다. 한국은 1973년 7월에 젯다에 주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을 개설했다가 1984년 9월에 리야드로 이전했으며, 사우디아라비아는 1974년 4월에 주 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대사관을 개설했다.

1962년 외교관계 수립 이후 1970-80년대 한국의 제1차 중동건설 진출을 계기로 양국관계가 본격화되었다. 이후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석유에 의존하는 경제 탈피 및 산업 다변화를 위해 2016년 4월 Vision 2030 정책을 발표하고, 한국을 중점 협력국 중 하나로 선정함에 따라 새로운 전기로 접어들었고 양국은 2017년 10월 공동위원회를 개최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1987년 11월에  술탄 왕자, 1998년 10월에 살만 압둘라 왕세제(현 국왕)의 방한 이후 각 행정부처 장관이 방한했으며, 한국은 1980년 5월에 최규하 대통령, 2007년 3월에 노무현 대통령, 2012년 2월에 이명박 대통령, 2015년 3월에 박근혜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바 있다. 한편 사우디아라비아는 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지 않았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1973년 12월에 한국 민간기업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하기 시작한 후, 1970년대와 1980년대 전반기를 거치면서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의 해외건설 부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시장으로 평가되어왔다. 그동안 한국업체들이 시공한 건축구조물로는 현대건설이 1976년 6월부터 3년 6개월 간에 걸친 공사 끝에 완성한 주베일 산업항을 비롯, 사우디아라비아 외교단지(1978. 9-1986. 10), 국방항공성건물(1980. 5-1986. 4) 등이 손꼽힌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의 핵심 해외 건설시장 중 한 곳으로, 2018년 누계 한국 기업의 건설수주액은 1,416억 달러(1,803건)를 기록했다. 2017년 기준 약 43개의 한국 기업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해 있다. 한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한국 기업의 진출 및 상담을 돕기 위해 리야드무역관을 설치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한국의 주요 교역 대상국이다. 2023년 기준 한국의 사우디아라비아 수출액은 37억 9,343만 달러, 수입액은 295억 3,342만 달러이며,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 탱커, 무기 및 총포탄 등이고, 주요 수입품은 석유 및 광물성 원료, 무수암모니아 및 무기화학품 등이다. 에너지원의 수입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원유의 대부분을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이중 광물성 원료(원유 등)의 비중이 약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는 경제 및 기술협력협정과 문화협정(1975), 항공협정과 감천항 개발차관 협정(1984), 항공운수소득면제 협정(1990), 투자보장협정(2002), 이중과세방지협정(2007), 원자력협력협정(2011), 국방협력협정(2013), 해운협정(2015), 사증(비자)발급간소화 MOU(2018) 등이 있다.

문화교류·교민 현황

사우디아라비아에는 한글학교 1개교가 설립되어 있어 교민과 사우디아라비아인의 한글교육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한인회는 한인사회의 발전과 권익보호를 도모하고 양국의 이해와 친선을 증진하고 있다. 한편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태원에 개설된 사우디아라비아문화원은 사우디아라비아 문화를 알리고 양국 예술인의 인적 교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23년 기준 사우디아라비아에는 2,098명의 재외동포가 있으며, 이들 대부분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인 리야드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에는 2023년 기준 854명의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적의 등록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참고자료

  • ・ 외교부
  • ・ 주 사우디아라비아 대한민국 대사관
  • ・ 한국무역협회 통계
  • ・ 국가통계포털
  • ・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