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예술

민속예술

다른 표기 언어 folk art , 民俗藝術

요약 산업화되지 않은 사회에서 대체로 도시와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농부와 목동·뱃사람·기능공 및 상인들에 의해 형성된 예술양식.

목차

접기
  1. 민속문학
  2. 민속미술
  3. 민속음악
  4. 민속춤

민속예술은 문화적으로, 그리고 대개는 지리적으로 외따로 떨어져 생활함으로써 옛날의 특징을 보존하고 있는 사회적 소외계층이나 소수민족의 예술일 수도 있다. 때로는 도시인들의 민속예술이나 종교예술도 민속예술로 간주된다. 민속예술은 문학·음악·무용·미술을 모두 포함한다. 설화와 종교 또는 미신은 모두 특정 집단 내의 민속예술에 양식과 내용 및 소재를 제공한다.

민속예술은 정지해 있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며, 옛날의 전통적 형태에서 새로운 주제가 새로운 상황에 맞추어 끊임없이 전개된다. 또한 어떤 새로운 문화에 접하게 되면 이전의 형태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민속예술 형태가 나타날 수도 있다. 국경을 초월하는 민속예술을 비교·연구하려면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와 전통 및 환경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민속문학

민속문학이란 문자를 갖지 않은 문화에서 구전되는 전승을 말하며 거의 세계 모든 민족들에 의해 형성되어왔다. 선진 문화에서도 기록문학과 나란히 존재하며 아이들이나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도시 지역에서는 점차 신문·라디오·텔레비전 등이 민속문학을 대체해가고 있다. 주된 민속문학 형식은 민요·발라드·우화·민담·속담·수수께끼·주문(呪文) 등이다.

가장 오래된 형태의 민속문학은 민요로서 책보다는 듣는 것을 통해 가족이나 제한된 사회 조직 내에서 구전·보급된다. 세계의 민요는 각 나라의 일상생활의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농촌에서는 파종·추수·방아찧기·방적·방직·노젓기·아기재우기 등과 술마시기·놀이 등 여러 형태의 여흥활동에 관련된 민요가 불렸으며, 도시에서는 노동조합 활동이나 정치적 시위 또는 공장에서 노동을 할 때 민요를 부른다.

민요의 전통적인 역할은 새로운 소식과 소문을 전하고, 지방의 족보와 역사를 기록하며 어떤 민족의 전승 및 문학을 보존하는 것이었다. 오늘날에 와서는 이러한 요구의 상당 부분을 대중매체가 충족시키고 있어 민요 수집가들은 고유의 민속 전통이 사라져가고 있음을 염려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의 민요는 소수 단체의 단합 및 동일성을 상징하는 등 새로운 기능을 갖게 되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유럽에서 이민간 사람들의 2, 3세들이 그들이 한번도 가보지 못한 모국의 풍부한 민요들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미국 내에서도 미국의 역사·종교, 다양한 민족과 사회 단체를 중심으로 한 미국 고유의 민요가 많이 생겨났다.

민담은 여러 세대를 거쳐 구전으로 전해진, 내용면에서 보면 전통적인 산문 이야기이다. 가끔은 종교적 의미가 없는 신화적인 요소를 가지기도 하나, 학자들은 민담과 신화를 구분하는 데 확고한 선을 두지 않는다. 은혜 갚는 짐승들, 여러 가지 시련, 죽은 자의 환생 같은 모티프나 주요골격이 되는 플롯이 여러 유형의 민담에 나타난다.

민담은 문화에서 문화로 전해지기도 하며 기록문학에 유입되기도, 또 기록문학에서 나오기도 한다.

민담의 장르 중에는 동화, 가정 이야기, 지방 전승, 성인전, 동물 이야기, 요정 이야기, 영웅전, 해학 및 익살, 자연현상과 동물의 생김새, 또는 사회제도 형성의 원인을 설명하는 이야기 등이 있다. 사가는 북유럽의 구전 산문문학의 대표적인 소산이다(→ 동화, 메르헨, 전설). 한국의 민속문학에 대해서는 '구비문학'항목 참조.

민속미술

민간에 의해 전승되어온 미술을 말한다(→ 시각예술).

주로 기능적이거나 실용적인 목적으로 제작되는 민속미술은, 그것을 만든 사람이나 그 주변의 소규모 집단이 사용하기 위해 손으로 만든 것이 일반적이며 전통을 계승하고 보존한다는 특성을 갖고 있다. 대개 그 지방에서 나는 천연재료(짚·나무·가죽 등)와 평범하고 초보적인 도구를 활용해 만든다.

민속미술은 유용하면서도 아름다운 건물과 물건들을 만들어서 자신의 특수한 환경 안에서 조금이라도 문명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의 창조적 표현이다.

미국의 민속미술에서 볼 수 있는 초상화와 풍경화처럼 벽에 걸기 위한 채색민속화도 제작되었지만 대부분의 채색민속화는 시계와 서랍장 및 의자 같은 물건의 장식으로 그려졌다(→ 회화). 외벽에 그리는 벽화형태는 유럽과 북아프리카 및 인도의 민속미술에 널리 퍼져 있다. 조각 분야에서는 모양을 새긴 병과 플라스크 및 촛대처럼 실용적인 물건뿐만 아니라, 종교적 물건과 장난감 및 장식품도 만들었다. 나무가 보편적인 재료로 쓰였지만 돌과 금속도 사용되었다.

기본적인 주거공간과 단순한 공공물의 모습도 민속미술을 이루는 건축학적 요소로 생각할 수 있다. 스위스 알프스 지방의 주택과 미국 국경지방의 통나무 오두막은 주거용 민속건축인 반면, 동유럽의 목조교회들은 공공건물 분야의 민속건축을 보여주는 대표적 예들이다. 그밖에 흔히 볼 수 있는 민속미술은 목판으로 만든 판화, 스크림쇼(고래뼈에 새긴 조각), 도자기와 직물 및 의상의 무늬 등이다.

민속음악

민속음악은 구전되는 것으로서 제한된 사회구성원 안에서 보급되며 고전음악이나 대중음악과는 관계없이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고, 민속음악을 배워서 연주하고 노래하는 공연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재창작된다.

나라마다 독특한 가락이 있는데 이 가락은 민족적·문화적 경계선에 따라 바뀐다. 주요 민속악기는 4부류로 나눌 수 있다. 가장 단순한 부류는 딸랑이, 피리, 불로러(bullroarer), 휘슬, 알펜호른 같은 긴 나무 나팔 등이다. 2번째 부류의 민속악기는 다른 문화로부터 유럽과 미국에 유입된 것인데 백파이프, 민속 오보에, 벤조, 실로폰, 민속 피들 등이다.

3번째 부류의 민속악기는 유럽 문화의 단순한 악기에서 발전된 것인데 대표적인 것은 나막신 모양으로 만든 현악기인 돌레와 활로 켜는 리라이다. 가장 중요한 4번째 부류의 악기는 도시에서 발달한 악기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때로는 악기형태가 매우 변형되기도 했지만 바이올린, 베이스비올, 클라리넷, 기타, 공명현이 있는 바이올린, 허디거디(hurdygurdy) 등이 여기에 속한다.

새로 창작된 민속음악이 계속적으로 전승되기 위해서는 민중이 즐겁게 향유할 수 있도록 민중의 가치와 정서가 반영된 음악이라야 한다.

그러나 민속음악이란 일정한 틀이 없이 당시의 사회적 환경에 의해 자연스러운 변화과정을 거친다. 때때로 음악가들은 원래의 형태를 자유롭게 변형하고 아름답게 꾸민다. 공동체적 재창작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과정은 민속음악의 계승에 간과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오늘날은 녹음기술로써 대체로 한 형태의 음악을 보존·전승시키기 때문에 구전을 통해 전승되는 민속음악 특유의 다양한 형태의 음악과 변화과정을 맛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전통적인 민속가락은 대부분 단선율이지만, 유럽 남부와 동부에서는 다성음악(둘 이상의 성부가 동시에 나오는 것) 형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유고슬라비아의 〈강가 ganga〉에는 장2도 음정과 단2도 음정이 동시에 나오기 때문에 서양사람들의 귀에는 낯설고 자극적인 불협화음을 이룬다. 다성부 합창곡은 소련의 일부 지역, 특히 카프카스 지방에 많다. 초기 단계의 다성부 민속음악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또하나의 형태는 돌림노래이다. 대부분의 민속음악 가락에는 절(節)이 있는데, 이 절은 되풀이되며 각 절은 대개 4행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요와 서사시만이 예외에 속하는데 동요는 대개 단순하며 서사시, 특히 동유럽의 서사시는 하나의 행을 되풀이하면서 그것을 다양하게 변형시키거나 아름답게 꾸민다.

민요의 박자는 흔히 그 지역에서 사용하는 언어와 그 언어의 강세 유형에서 많은 영향을 받는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는 2/4박자와 4/4박자가 가장 일반적이지만, 불가리아를 비롯한 몇몇 지역에서는 비대칭적 박자유형을 특징으로 하는 '아크사크'(터키어로 '절룩거림'이라는 뜻) 박자를 흔히 볼 수 있다.

민속음악은 대체로 민족 특유의 전통적인 성격을 나타내며, 작곡가들은 오랫동안 민속음악에서 새로운 착상과 영감을 얻었다.

특히 19세기말에 민족주의적 정서가 싹트면서 민속음악에서 영감을 받는 관행이 더욱 뚜렷해졌다. 헝가리의 벨라 바르토크와 졸탄 코다이, 영국의 랠프 본 윌리엄스와 프레더릭 딜리어스, 노르웨이의 에드바르트 그리그, 미국의 애런 크플런드 같은 작곡가들은 모두 민속음악의 특징에 의존하여 작곡했다. 또 인도에서는 흔히 '대(大)전통'이라고 불리는 고전음악의 라가(선법) 및 탈라(리듬형)와 '소(小)전통'이라고 불리는 시골민요의 가락 및 박자 사이에 계속적인 교류가 이루어졌다.

한국 전통음악은 창작자·향유자에 따라 정악(正樂)과 민속악으로 나뉜다.

정악이라고 하면 가곡·가사·줄풍류·영산회상(靈山會相)·여민락(與民樂) 등 양반계층이 즐기던 음악을 일컬으며, 민속악이라고 하면 민요(民謠)·농악(農樂)·판소리·선소리[立唱]·잡가(雜歌) 등 민중들이 창작하고 즐기던 음악을 말한다. 옛 문헌에 있는 속악(俗樂)은 중국 아악(雅樂)에 대한 향악(鄕樂)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의 민속악의 개념과는 다르다.

고려가요(高麗歌謠)와 같은 음악은 맨 처음 창작자가 민중이었다 하더라도 뒤에는 양반들이 창작하고 향유하는 음악으로 바뀌었으므로 민속악에는 포함될 수 없다. 특히 음악의 분류법상 문제가 되는 것은 범패(梵唄)와 무속음악(巫俗音樂)인데 이 음악들은 민속의 영향 속에서 만들어지고 향유되었으나 엄밀하게 말하면 의식음악에 속하는 것으로 민속음악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무속음악은 민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민속음악으로 분류하는 경향도 있다.

민요는 민중들 사이에서 저절로 생겨나 전해지는 노래를 두루 일컫는다.

민요는 악보에 기재되거나 글로 전하지 않고 구전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본래 민요는 어느 특정한 지역에서 특정한 생활 기능을 갖고 전승되던 것이 본래의 기능에서 벗어나 노래로서만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민요를 보통 토속민요(土俗民謠)와 통속민요(通俗民謠)로 나누는데 토속민요는 각 지방마다 선율이나 가사가 다른 것이 특색이며, 통속민요는 소리꾼들의 노래로 세련미를 갖추고 있다. 〈모내기소리〉·〈맷돌소리〉·〈초부가〉·〈해녀노래〉·〈길쌈노래〉 등이 있고, 〈아리랑〉은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잡가는 소리꾼들이 부르던 긴 노래로 방안에 앉아서 부른다 하여 좌창(坐唱)이라고 한다.

민요와 다른 점은 민요가 짧은 장절(章節)로 되어 있는 반면 잡가는 통절(通節) 형식의 긴 사설로 되어 있는 것이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경기잡가·서도잡가·남도잡가로 분류한다. 〈유산가 遊山歌〉·〈곰보타령〉·〈맹꽁이타령〉·〈초한가 楚漢歌〉·〈새타령〉 등이 있다.

선소리는 여러 소리꾼들이 소고(小鼓)를 치고 발림을 하며 부르던 판염불에서 유래된 것이며 오늘날 입창이라고도 한다.

입창 역시 지방에 따라 특색을 달리하여 경기입창·서도입창·남도입창으로 나뉜다. 〈방아타령〉·〈산타령〉·〈보렴 報念〉·〈화초사거리〉 등이 있다.

판소리는 광대라고 불리는 하층신분의 예능인들에 의하여 가창·전승되었다. 소리명창인 광대는 고수(鼓手)의 북장단에 맞추어 긴 이야기를 소리와 아니리로 엮는 것이다. 본래 판소리는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한 사람이 여러 종류를 부를 수 있었다.

그 가운데 12가지를 추려서 판소리 12마당이라 했다. 후에 판소리의 길이가 점차 길어지자 한 사람이 여러 소리를 부를 수 없게 되어 오늘날에는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적벽가〉 5마당만 전승되고 있다. 또 판소리를 부르기 전에 창자가 목을 풀기 위해 짧은 노래를 먼저 부르는데 이를 허두가(虛頭歌)라고 한다.

산조는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 남부의 민속악인들이 주로 연주하던 기악독주곡을 말한다.

산조의 발생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무속음악인 시나위가 방안놀음에 쓰이면서 판소리의 진양조·중모리 가락의 영향을 받아 발전했을 것으로 본다. 연주하는 악기에 따라 가야금산조·거문고산조·대금산조 등으로 나뉜다.

농악은 본래 민간신앙의식에서 파생되었는데 뒤에는 주로 농부들이 두레를 짜서 일할 때 치는 음악을 일컫게 되었다. 농악은 당산굿·마당밟이·두레굿·판굿 등에 치며 악기는 꽹과리·징·장구·북·소고 등의 타악기 리듬이 주로 쓰이고 호적·나발은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또 농악을 지역적 특성에 따라 분류하면 경기농악·영동농악·호남우도농악·호남좌도농악·경남농악·경북농악으로 나뉠 수 있다(→ 농악, 민요, 산조, 선소리, 잡가, 판소리).

민속춤

민속춤은 일상생활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전통무용, 주술적 또는 경제적인 기능을 갖는 각국의 민속춤, 전문작가가 아닌 사람이 추는 춤 등으로 다양하게 정의되며 보통 원시적인 춤, 극장춤, 고전무용, 대중무용은 제외된다.

지방의 민속춤은 종종 고대 제의의 기원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으며 오락을 목적으로 하는 반면, 도시의 민속춤은 보다 근대적이고 세속적인 목적을 갖는 경우가 많다. 둘다 각 나라의 농사 달력을 기준으로 하는 축제를 축하하지만 교회 축제 달력도 받아들였다. 거의 전세계적으로 나이가 많고 노련한 남녀가 민속춤의 리더가 되고 아이들은 수련자가 되지만, 개인의 나이나 성별은 더 큰 공동체 안으로 통합되어 춤추는 여러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서 20세기 전반에 기록되고 묘사된 민속춤은 제의적인 민속춤과 사회적 민속춤이라는 2개의 부류로 양분된다.

의식적 민속춤은 몇 가지 경우(예를 들면 추수를 기념하여 동유럽에서 추는 춤)를 제외하고 모두 남자들이 춘다. 그리스도교 이전의 종교의식에서 유래한 의식춤은 대개 그 지방의 연례적 관습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것은 겨울 축제, 부활절, 노동절 및 한여름의 축제 같은 계절행사로 분류할 수 있다. 이 관습에는 크리스마스 가면극과 사육제의 가장무도회처럼 제의적 연극을 수반하는 춤이 포함되기도 하며 영국의 모리스 춤과 유럽의 봄 축제 때 추는 젊은 남성들의 춤처럼 오로지 춤으로만 이루어지기도 한다.

사회적 민속춤은 남녀가 짝을 지어 춤을 추는 것이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모든 춤을 망라한다.

사회적 민속춤은 풍년을 기원하는 의식을 거행할 때 주술사들이 처녀들과 함께 주술을 행한 데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다. 유럽에는 파랑돌과 플로랄, 그리고 여러 유형의 오월제 춤처럼 사람들이 줄을 지어 행진하거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도는 형태의 춤이 많이 남아 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의 춤은 긴 행렬을 이루어 추는 춤과, 오월제 기둥을 둘러싸고 추는 춤에서 발전했다. 수세기를 거치면서 실내무용에도 응용된 이 춤들은 무용교사와 음악가들의 관심을 자극하여 이들은 옛날 춤을 바탕으로 궁정이나 홀에서 출 수 있는 새로운 사교춤을 잇달아 만들어냈다.

이러한 사교춤의 물결은 북아메리카의 스퀘어댄스에서 볼 수 있듯이 춤의 발생지가 아닌 다른 나라나 다른 지방의 춤 형태와 섞여 더욱 풍요로운 형태의 춤을 낳았다. 남녀가 짝을 지어 추는 민속춤도 고대에 시작되었으며 스페인의 호타와 이탈리아의 살타렐로 무곡에서 나타나듯이 경쾌하면서도 관능적인 내용을 갖고 있다. 스페인 바스크 지방의 '아우레스쿠'와 노르웨이의 '홀링'에서는 남자 무용수가 좀더 많은 곡예를 보여준다.

오스트리아의 왈츠와 체코슬로바키아의 폴카 및 아르헨티나의 탱고처럼 특정한 나라에 예부터 전해내려오는 수많은 사교적 민속춤은 전세계적인 사교춤으로 자리를 굳혔거나 사교춤의 바탕을 제공했다. 고전적 형태의 발레를 비롯한 무대무용은 그 내용과 기법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많은 나라의 민속춤을 차용하고 있다.

아르헨티나 탱고
아르헨티나 탱고

한국의 춤에서는 춤을 향유하는 계층, 춤추는 사람, 춤추는 목적과 기능에 따라 춤의 명칭도 달라진다.

궁중정재(宮中呈才)는 지배계층인 왕족들에 의해 향유되었고 교방무용 역시 창우(唱優)들을 시켜 양반들이 즐기던 춤이며, 작법(作法)이나 무속춤은 신직자(神職者)의 춤이었다. 그러나 민속춤은 특정한 개인이 창작한 것이 아닌 피지배 계층인 민중에 의해서 창작되며, 향유자도 민중이 감상의 방식이 아닌 직접 참여함으로써 즐긴다. 민중 스스로 창작하고 스스로 즐기기 때문에 민속춤의 가장 큰 특징은 즉흥성에 있다. 즉흥적이란 스스로 꾸며서 추는 특징을 갖고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즉흥적 춤은 춤의 바탕이 되는 틀은 있으되 조직적인 구성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반면에 외국의 민속춤은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있고 춤의 유형이 조직적이다.

민속춤은 민족 기층문화의 한 영역을 차지하는 예능이다. 민속춤은 역사와 전통을 떠나서는 이해될 수 없고 민족문화로서의 고유성을 잃게 되면 민속춤으로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또한 민속춤은 어떤 전문예능인이 창작하는 것이 아닌 만큼 그 고유성이 지속되기 어려우며 대체로 문화 전반의 영향을 받으면서 변화된다.

따라서 민속춤의 범위를 정할 때 외래의 춤이 혼합되었다 하더라도 전통적인 원형을 바탕으로 민중 속에서 전래되고 있다면 민속춤의 범위 안에 포함된다.

민속춤의 발생은 고대사회의 사회적 배경에서 살필 수 있다. 고대 공동사회는 제사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은 제정일치(祭政一致)의 사회였다. 정월과 5월 파종기, 10월 수확기에 제사의식이자 민중들의 축제인 제천의식이 열렸는데 부여의 영고, 고려의 동맹이 그 예이다.

이러한 의식에서는 제사장이 신과 인간을 교류시키는 춤을 추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무속춤의 기원이며 민속춤의 뼈대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집단춤의 형태는 〈삼국지〉 마한전에 탁무(鐸舞)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농악과 비슷한 형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려시대에는 오락적인 춤과 새로운 종교의식춤이 만들어졌으며 조선 후기에는 민중문화가 발달하면서 당시 사회를 풍자하고 해학으로 엮어낸 표현적 춤들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춤들은 오늘날 설날·대보름·추석 등의 명절 때 세시풍속으로 계승되고 있다.

한국의 민속춤을 기능상으로 분류하면 궁중정재·종교의식무용·민속춤·예능무용으로 나눌 수 있다. 또 민속춤에는 대동(大同)춤으로 농악·탈춤·소리춤 등이 있으며 개인의 장기로서는 허튼춤·모방춤 등이 있다. 그밖에 무속춤이나 교방춤도 본질적으로는 민중문화에 기반을 두고 민속에서 자랐으나 그 기능이 종교의식이나 양반들의 유희를 위해 만들어졌으므로 민속춤으로 볼 수는 없다.

농악은 본래 무격(巫覡)들이 제천의식을 행할 때 신악(神樂)으로 사용하거나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귀신을 쫓고 복을 맞는 의식예능에서 파생되었으며, 이 의식예능 농악에서 노동농악, 걸립농악, 연예적 농악으로 발전했을 것으로 보인다.

농악은 음악과 곁들여 농악춤을 추기 마련인데 농악춤에는 발림춤·부포놀이·설장구춤·채상모춤·깨끼춤 등의 여러 춤이 있다.

탈춤에 대한 최초의 기록으로는 〈오경통의 五經通義〉에 지모무(持矛舞)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병기창(兵器槍)을 들고 춤을 추었다는 것으로 보아 지모무는 전투적 성격이 강한 무속적 가면춤이었을 것이다. 탈춤에는 양반계·천민계·승려계·할미계·영감계·무당계·괴물계·병신계·동물계 등 다양한 배역이 연희하는 연극적 춤이 있다.

소리춤은 민속춤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춤으로서 언어나 악기가 발달하지 못했을 때에는 소리를 내며 춤을 추었을 것이다.

대표적 소리춤으로는 강강술래가 있으며 남성계·여성계 춤 등 다양하다.

허튼춤은 대표적인 즉흥춤으로 제천의식에 관한 고문헌의 기록에 나온 "주야남녀군취가무"(晝夜男女群聚歌舞)에 근거하여 보면 종교의식 후에 오신행위(娛神行爲)로서 난장춤을 춘 데서 비롯된 듯하다. 허튼춤은 즉흥적으로 스스로 꾸며서 만들기 때문에 사람이나 지역에 따라서 춤의 유형이 다양하며 그 명칭도 다르다.

대표적인 허튼춤에는 보릿대춤·막대기춤·도굿대춤·덧배기춤 등이 있다. 모방춤에는 주술성이 내포되어 있다. 동물을 모방하는 춤을 추어 유감주술(類感呪術)로 삼았고, 농민은 농사의 풍요로움을 위해 땅을 밟는 춤을 추고 풍요를 비는 주술행위로서 성모의춤을 추기도 했다. 특히 병신춤은 병신 자체를 두고 흉내낸 것이 아닌 지배계층인 양반을 병신처럼 모방하고 풍자하여 춘 춤이다.

병신춤에는 문둥이춤·봉사춤·배불뚝이춤·곱사춤·히줄대기춤·요동춤·용두춤 등 다양하다. 그밖에 동물모의춤은 학춤·기러기춤이 있고 말이나 소를 흉내낸 춤도 있다.

한국의 민속춤은 예부터 농경생활을 배경으로 만들어지고 향유되었다(농경문화). 김매기할 때 소리춤을 추고, 나무를 하거나 풀을 벨 때 지게목발춤을 추었으며 봄철에는 화전놀이굿을 벌여 춤을 추며 즐겼다.

이러한 농경생활 속에서 창작되고 전승된 춤은 한국의 세시풍속에 남아 지금도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추는 춤은 힘든 노동의 피로를 풀어주고 능률을 올리며 오히려 일의 즐거움을 느끼게까지 해준다. 이때문에 한국의 민속춤은 생활춤으로서의 기능을 갖고 있다. 또 탈춤·소리춤·모방춤은 어디서부터가 예술이고 어디까지가 현실인지 가리기 어려울 정도로 몸짓·동작·노래에서 현실성이 강하다. 이러한 현실성이 한국 민속춤의 고유한 특징인 것이다.

한국의 민속춤은 옛날에는 두레들이 춘 춤으로 두레들의 연대의식과 노동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두레들은 농악을 위시한 탈춤·소리춤 등을 생활화하면서 양반계층과의 갈등에서 오는 어려움을 풀고 투쟁적 시위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들의 모든 춤은 마을의 이익을 기원하는 대동제였고 마을의 번영을 축원하며 공동체적 결속을 확인하기 위한 행위였다. 판굿의 각종 진풀이와 놀이에서는 전투적인 기능을 가진 춤을 추면서 공동체 구성원 상호간의 유대와 결속을 다지는 기능을 한다.

농악·탈춤·소리춤 등은 민중문화로 토착화되면서 전투적이면서도 종교적인 공동체, 신분공동체, 삶의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