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항

개항

[ 開港 ]

시대명 근대/개항기

항구를 열어 외국과 통상하는 일.

우리나라는 19세기 후반, 서구 자본주의의 활동으로 쇄국의 문호가 열리고 외국과 통상하게 되었다. 구미자본의 동양진출과 관련하여 조선에 대해 최초로 통상을 요구한 것은 동인도회사 소속의 영국상선 로드 암허스트(Lord Amherst)호였다. 그들은 1832년(순조 32) 황해도 몽금포 앞바다에 나타나 처음으로 통상을 청했다.

그 뒤 61년(철종 12) 러시아 함대가 원산(元山)에 와서 통상을 요구했고, 독일인 상인 오페르트가 3차에 걸쳐 통상을 요청했지만 모두 실패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의 통상요구, 2차에 걸친 프랑스 함대의 내침, 즉 병인양요(丙寅洋擾)를 비롯하여, 71년(고종 8) 미국의 통상요구와 신미양요(辛未洋擾)가 있었지만, 대원군의 강력한 쇄국정책으로 모두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던 중 일본이 도발한 운요호(雲揚號)사건[운양호 사건으로도 불린다]으로 병자수호조약(일명 강화도조약)이 맺어짐에 따라 쇄국정책이 무너지는 동시에 문호가 개방되었다.

일본과의 수호조약으로 80년 통상장정(通商章程)을 협정하여, 그 해 원산(1880. 3. 23 통상개시), 83년 인천과, 수호조약 때의 부산을 합해 모두 3개 항이 개항되었다. 일본에 대한 개항을 시발로 하여 82년(고종 19) 한 · 미통상조약, 한 · 청수륙교통조약, 83년 한 · 영통상조약, 한 · 독통상조약, 84년 한 · 이통상조약, 한 · 로통상조약, 86년 한 · 불통상조약 등이 체결되어 우리나라는 개항을 통해 세계 자본주의 체제 안에 편입되었다.

그러나 수공업 단계의 후진성을 극복하지 못한 채 세계시장에 나서게 된 우리나라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원료공급지와 상품시장이 되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개항지는 주로 부산 · 원산 · 인천이었고, 그 후 목포 · 군산 · 진남포 등 여러 항구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