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로탱
정의 및 이칭
감로탱(甘露幀)은 수륙재(水陸齋)를 거행할 때 거는 탱화로서 수륙화라고도 부른다.
유래 및 역사
한반도의 수륙재는 중국으로부터 전래되었는데,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신라 진흥왕 33년(572)에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들을 위해 7일 동안 팔관회를 설행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는 사실 수륙재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의 문헌기록에 나타나는 최초의 수륙재는 고려 광종(光宗) 19년 귀법사(歸法寺)에서 설행되었다. 고려시대의 수륙재는 중요한 불교행사의 하나로 무주고혼(無主孤魂)의 천도를 통하여, 민심을 수습하거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거행되었다.
조선시대의 수륙재는 정부가 주관하여 진관사(津寬寺)에서 거행하는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와 민간에서 거행하는 수륙재의 두 종류가 있었다. 국행수륙재가 폐지된 후에도 민간에서는 왕실, 양반층, 서민층에 의해 계속 수륙재가 설행되었다.
감로탱 안의 수륙재 관련 명문과 『조선왕조실록』의 기사에 의하면, 감로탱의 제작 의도에는 수륙재의 성격이 강하게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왕조실록』의 수륙재 관련 기사 중 감로탱과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임자년(1432) 봄에 크게 무차지회(無遮之會)를 열었사온데, 중들이 구름같이 모여서 한강가에서 하루가 지나고 열흘이 넘도록 극히 호화스럽고 사치스럽게 차려서 깃발과 일산이 해를 가리우고, 종과 북소리가 땅을 흔들었습니다. 천당과 지옥의 반야(般若)를 그리고, 사생(死生)과 화복(禍福)의 응보를 보여주니, 이에 귀천과 남녀를 논할 것 없이 모두가 보고 듣고자 모여, 도시는 이 때문에 텅비고 관문과 나루는 길이 막혀 통하지 못했습니다.
『세종실록』 16년(1434) 4월 11일 조인용문을 통해, 조선시대의 감로탱이 야외의 수륙재를 위해 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영산재(靈山齋)를 거행할 때 괘불탱(掛佛幀)을 야외에 설치하듯이, 당시는 수륙재를 위해서도 괘불탱을 이용했던 것이다.
감로탱 즉 수륙화는 수륙도량의 발전과 더불어 발전해 왔다. 수륙재를 지내기 위해 야단법석(野壇法席)을 차릴 때 감로탱을 걸어놓고 의식을 진행했는데, 감로탱은 수륙재의 성행과 쇠퇴에 따라 그리고 시대의 변천에 따라 시대상을 반영하면서 변모된 것으로 나타난다.
감로탱은 한국 불화의 특색과 불교 신앙의 성격을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지만, 언제부터 제작되고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현존하는 감로탱 가운데 제작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현재 일본 나라(奈良) 국립박물관에 있는 약산사 감로탱으로 1589년에 조성된 것이다. 그러나 앞서 인용한 『세종실록』 16년 4월 11일 조의 기사는 이미 조선 초(1432)에도 수륙재에서 감로탱이 사용되었음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내용 및 특성
감로탱은 그 도설 내용에 따라 상, 중, 하의 삼단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이 삼단의 내용은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즉 하에서 중으로, 중에서 상으로 전개되는 구성을 이루고 있다. 하단은 육도 윤회상을 나타내고 있고, 중단은 육도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재를 올리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성반(盛飯)의 모습, 재를 올리는 사람들이 부처님 덕을 기리는 모습, 수행 공덕을 상징하고 있는 수행 비구의 모습, 그리고 그러한 공덕을 모아 감로비를 내리는 번개신 등이 그려진다. 상단에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나타나는 일곱 여래(다보, 보승, 묘색신, 광박신, 이포외, 아미타, 감로왕)와 세 보살(인로왕, 지장, 관음)이 묘사되고 있다.
감로탱의 구성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바로 하단에 그려진 육도 윤회상이다. 육도윤회의 업을 반복해야 하는 미혹한 세계의 실상을 묘사하고 있는 하단은 아귀나 지옥고(地獄苦)뿐만 아니라 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의 고통상을 인간 세상의 다양한 현실생활에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다. 하단에 묘사된 인물들은 죽은 영혼들의 생전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이들이 바로 수륙재를 통해 천도되어야 할 대상이다.
감로탱의 하단부는 사회생활, 현실생활을 묘사한 내용으로서 그 주제가 인생의 고통, 재난, 인생무상을 표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불교에 귀의하고 해탈하도록 의도하고 있지만, 오히려 당시의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감로탱의 하단부에는 특히 전통연희의 공연장면이 많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 묘사된 다양한 유랑예인집단과 그들의 연희도 현실생활의 일부를 사실적으로 반영한 결과이다. 연희 장면의 연희자들은 죽은 사람의 생전 모습을 재현한 내용 가운데 일부로서 수륙재의 천도대상이다. 경남 고성의 운흥사(雲興寺) 감로탱(1730)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감로탱에는 연희자를 비롯하여 죽은 사람들의 생전 모습을 그려놓은 그림의 옆에 까맣게 그림자처럼 칠한 것이 존재한다. 그런데 한 방향으로 표시하지 않고, 어떤 것은 실물의 왼쪽에 어떤 것은 오른쪽에 그려 놓았으므로, 이것들은 그림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그림자가 영혼의 표현이며, 따라서 이 장면이 죽은 연희자의 생전 모습을 재현해 놓은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이 연희 장면에 묘사된 유랑광대들은 죽은 후에 무주고혼이 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바로 수륙재의 천도대상이다.
연희자를 비롯해 죽은 사람들의 생전 모습을 그려놓은 모습 〈운흥사 감로탱〉. 1730년
한편, 중국의 수륙화에도 연희자들이 그려져 있는데, 이들은 수륙재의 천도대상인 죽은 영혼들로서 그려진 것이다. 중국 명대(明代)에 그려진 산시성(山西省) 유위현(右玉縣) 보녕사(宝寧寺)의 명대(明代) 수륙화 중에는 난쟁이 연희자, 사자 가면을 든 사람, 장구를 어깨에 멘 사람 등 연희자 집단이 묘사된 것이 있다. 또 무부, 무녀, 산악 연희자 등을 묘사한 것도 있다. 여기서 그림 제목은 '모든 무부·무녀·산악 연희자 가운데 횡액을 당하여 죽은 혼과 여러 귀신들(一切巫師神女散樂伶官族 橫亡魂諸鬼衆)'이다. 그러므로 이 그림에 표현된 무당과 연희자들은 횡사한 혼에 해당한다.
이는 수륙재 의궤집의 내용을 통해 더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두타산 삼화사 소장의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 〈제22편 자리에서 내려오도록 간청함(召請下位)〉의 내용 중에 수륙재에 초청하는 무주고혼들의 일부로 귀신을 불러 섬기는 무당과 무녀(師巫神女), 괴상한 말을 하여 근심을 풀어주는 악사(解愁樂士) 등도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은 대부분의 수륙재 의궤집에서 일치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감로탱 하단부에 그려진 연희자들과 무당들도 바로 수륙재의 천도대상임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감로탱 하단부의 연희자들을 묘사할 때, 민간을 떠돌며 공연하던 유랑예인집단의 연희자뿐만 아니라, 연등회·우란분재·수륙재 등 불교행사에서 공연되었던 연희장면을 참조하여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
모든 무부·무녀·산악 연희자 가운데 횡액을 당하여 죽은 혼과 여러 귀신들(一切巫師神女散樂伶官族 橫亡魂諸鬼衆) 〈보녕사 수륙화〉. 명대
그런데, 한국의 감로탱에는 전통연희를 공연하고 있는 연희자들의 연희가 매우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중국의 수륙화는 연희자와 연희집단을 묘사하더라도 단순히 연희도구를 짊어지고 유랑하며 떠도는 모습을 그렸지만, 한국의 감로탱은 실제 연행장면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 이는 한국 감로탱의 독자성과 관련해 매우 주목된다.
수륙도량의 발전과 더불어 발전해 온 수륙화는 중국 종교화의 한 종류가 되었다. 만당(晩唐) 희종(僖宗) 중화(中和) 연간(882-885)에 화가 장남본(張南本)이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 보력사(寶歷寺) 수륙원에서 120여 폭의 수륙화를 그렸다. 이것이 문헌에 기재된 가장 이른 시기의 수륙화 작품이다.
한 세트의 수륙화의 수량은 명확한 규정이 없다. 적으면 몇 십 폭 많으면 120여 폭 등으로 같지 않다. 중국 국가 도서관은 명대 목판의 『수륙도량신귀도상책(水陸道場神鬼圖像冊)』을 소장하고 있는데, 그림 위에 순서대로 정한 번호에 의하면 전체 모두 150폭의 그림이 있어야 한다.
송대는 수륙화의 남상기라 할 수 있다. 작자는 모두 무명의 민간 화가이다. 『동파후집(東坡后集)』 권19의 〈수륙법상찬인(水陸法像贊引)〉에는 당시 수륙화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귀신, 사람, 가축, 지옥, 천당 등 망라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는 소식(蘇軾)이 쓰촨(四川)에 있을 때 죽은 처 왕(王)씨를 위하여 설행한 수륙도량의 상황이다.
앞서 살펴본 산시성 유위현 보녕사의 수륙화는 한 세트가 현재 139폭이다. 몇 폭의 큰 불상 외 대부분 불상은 높이가 120㎝, 넓이 60㎝이다. 이 139개의 그림들을 걸어서 하나의 큰 그림인 수륙화를 형성한다. 이 수륙화들은 청나라 때 2차례에 걸쳐 표구한 3폭의 그림 외에 불교인물화가 모두 108폭이다. 각종 세속인물화 12폭, 당시 사회생활상을 반영한 그림이 13폭이다. 각종 세속인물은 제왕(帝王), 왕비(妃), 효자(孝子), 어진 부인(賢婦), 열녀(烈女), 구류백가(九流百家) 등이다. 생활을 반영한 것은 고전노비(雇典奴婢, 상전에 의해 팔린 노비), 기황아표(饑荒餓殍, 굶어죽은 자), 기리처자(棄離妻子, 버려진 처자), 왕람무고(枉濫無辜, 억울함을 당한 자), 부형도시(赴刑都市, 형을 받아서 도시지옥으로 간 자), 유사폐뢰(幽死狴牢, 감옥에서 죽은 자), 병과도적(兵戈盜賊, 전쟁과 도적을 만난 자), 군진상잔(軍陣傷殘, 군대에서 부상을 당한 자), 수표탕멸(水漂蕩滅, 물에 빠져 죽은 자) 등이다.
중국의 수륙화에는 연희자들도 묘사되어 있는데, 이들은, 위에서 사회생활상을 반영했다고 제시한 인물 등과 함께, 수륙재의 천도대상인 영혼들의 일부로 그려진 것이다. 보녕사 수륙화 중 '옛날 온갖 학설과 제자백가와 예술을 했던 모든 대중들(往古九流百家諸士藝術衆)'에서는 난쟁이 연희자, 사자 가면을 든 사람, 장구를 어깨에 멘 사람 등 연희자 집단을 묘사하고 있다. 또한, '모든 무부·무녀·산악 연희자 가운데 횡액을 당하여 죽은 혼과 여러 귀신들(一切巫師神女散樂伶官族 橫亡魂諸鬼衆)'에는 무부(巫夫), 무녀(巫女), 산악(散樂) 연희자 등이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횡사한 망혼의 여러 귀신들(橫亡魂諸鬼衆)'이라는 제목이 있는 점으로 볼 때, 이 무당과 연희자들이 횡사한 혼에 해당하고, 바로 수륙재의 천도대상임을 알 수 있다.
의의
감로탱의 하단부는 사회생활, 현실생활을 묘사한 내용으로서 그 주제가 인생의 고통, 재난, 인생무상을 표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불교에 귀의하고 해탈하도록 의도하고 있지만, 오히려 당시의 사회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조선 후기의 다양한 유랑예인집단과 그들의 연희도 현실생활의 일부로서 매우 사실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감로탱의 하단부에 묘사된 전통연희는 줄타기(줄타기 및 남사당놀이의 어름), 땅재주(남사당놀이의 살판), 인형극(남사당놀이의 꼭두각시놀음), 접시돌리기(남사당놀이의 버나), 사당춤(봉산탈춤 제3과장 사당춤)처럼 현재까지 전승되는 종목도 있지만, 솟대타기, 쌍줄백이, 쌍줄타기, 방울 쳐올리기, 검무(풍각쟁이패 연희)처럼 이제는 사라져버린 연희종목도 있다. 따라서 감로탱에 묘사된 전통연희의 종목들은 한국전통연희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감로탱을 통해서 현재는 전승이 단절되고 명칭만 남은 연희들의 실체를 살펴볼 수 있기 때문에, 감로탱은 전통연희 분야의 연구 자료로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실전 연희들을 복원하거나 현대적으로 재창조하는 데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감로탱에 묘사된 연희집단은 사당패, 남사당패, 솟대쟁이패, 초라니패, 풍각쟁이패, 굿중패, 서커스단 등 모두 유랑예인집단이다. 이상 감로탱에 묘사된 유랑예인집단들은 한국전통연희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감로탱에 묘사된 유랑예인집단들 가운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것은 남사당패뿐이고, 솟대쟁이패·사당패·초라니패·풍각쟁이패·굿중패는 모두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다른 자료들에서는 이들의 활동상을 이처럼 구체적으로 묘사한 그림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 그동안 단편적인 기록들을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던 유랑예인집단들에 대해 이제는 감로탱과 함께 고찰함으로써, 이 집단들과 그 연희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감로탱을 통해서 현재는 전승되지 않는 여러 연희종목들의 내용, 그리고 이미 사라져버린 유랑예인집단들의 구체적인 활동상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 강우방·김승희, 『감로탱』, 예경, 1995.
- 김승희, 「조선시대 감로도의 도상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90.
- 연제영, 「감로탱화의 조성배경과 천도대상의 변화」,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3.
- 임종욱 역주, 『천지명양수륙재의찬요(天地冥陽水陸齋儀纂要)』, 동해시, 2007.
- 전경욱, 『한국의 전통연희』, 학고재, 2004.
- 전경욱, 「감로탱에 묘사된 전통연희와 유랑예인집단」, 『공연문화연구』 20, 한국공연문화학회, 2010.
- 진철승, 「불교의식과 민중의례Ⅲ」, 『海印』, 해인사, 1988.
- 통도사성보박물관, 『감로』(조선시대 감로탱 특별전 상하), 통도사성보박물관, 2005.
- 홍윤식, 「한국불교의식의 삼단분단법」, 『문화재』 9, 문화재관리국, 1975.
- 北京文物鑒賞編委會編, 『明淸水陸畵』, 北京 : 北京美術撮影出版社, 2005.
- 山西省博物館 編, 『寶寧寺 明代 水陸畵』, 北京 : 文物出版社, 1995.
- 北京市文物局編, 『明淸水陸畵精選』, 北京 : 北京美術撮影出版社, 2005.
참조어
수륙재, 수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