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니패
초라니패는 조선 후기에 발생한 유랑예인집단의 하나이다. 조선 후기에는 이전부터 존재했던 세습무계의 재인(才人), 북방 유목민 계통의 수척과 반인, 재승 계통의 연희자와 별도로, 남사당패·사당패·대광대패·솟대쟁이패·초라니패·풍각쟁이패·광대패·걸립패·중매구·굿중패 등 다양한 명칭의 유랑예인집단이 생겨나 활약했다.
초라니패는 본래 잡귀를 쫓고 복을 불러들이는 의식에서 가면을 쓰고 놀음을 벌이던 놀이패였다. 마을을 돌며 집집마다 들러 장구도 치고 〈고사소리〉를 부르며 동냥을 하는 놀이패로 변했다. 나중에는 〈고사소리〉 외에도 여러 가지 잡희를 벌이는 놀이패로 바뀌었다가 일제강점기로 접어들면서 사라졌다. 신재효본 〈변강쇠타령〉에 나오는 초라니패는 걸립패나 굿중패들이 부르는 고사염불과 같이, 해당지역의 민요 선율로 사이사이에 장구를 치며 자진모리로 노래를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초라니패의 초라니도 솟대타기를 했다. 원래 '초라니'는 요사스럽게 생긴 가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초라니패는 '초라니굿'이라 부르는 가면극을 위주로, 풍물·얼른·죽방울받기 등을 공연하며 떠돌아다녔다. 신재효본 〈변강쇠타령〉에서는 변강쇠의 치상(治喪) 과정에 등장하는 초라니에 대해 '솔대 밑 친구'라고 표현했다. 솔대 밑 친구는 솟대쟁이를 이르는 말이므로, 초라니가 솟대놀이도 했다는 뜻이 된다.
장구를 어깨에 메고 솟대에 오르고 있는 초라니 〈만월산 수국사(滿月山守國寺) 감로탱〉. 1832. 프랑스 기메 박물관 소장
솟대장이인 초라니의 생김새는 감로탱을 통해 더욱 확실히 알 수 있다. 프랑스 기메 박물관 소장 〈만월산 수국사(滿月山守國寺) 감로탱〉(1832)에는 장구를 어깨에 메고 솟대에 오르는 초라니가 묘사되어 있다. 이 초라니는 얼굴에 가면을 착용하고 있는데, 초라니의 가면을 "도리도리 두 눈구멍 흰 고리테 두르고, 납작한 콧마루에 주석(朱錫)대갈 총총 박고, 꼿꼿한 센 수염이 양편으로 펄렁펄렁"이라 묘사한 〈변강쇠타령〉의 내용과 완전히 일치하는 모습이다.
참고문헌
- 신근영, 「솟대타기의 역사적 전개와 연희양상」, 『민속학연구』 20, 국립민속박물관, 2007.
- 심우성, 『남사당패연구』, 동화출판공사, 1974.
- 전경욱, 『한국의 전통연희』, 학고재,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