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 포로

바벨론 포로

[ Babylonian Exile ]

바벨론 포로

바벨론 유수’로도 표현되는데,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인 또는 그 사건을 가리킨다. 바벨론 유수는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첫째는 남유다의 여호야김(B.C. 609-598년경) 제3년(B.C. 605년). 다니엘과 많은 귀족들이 끌려갔다(단 1:1-6). 둘째는 여호야긴 때(B.C. 597년경). 왕을 비롯한 지도자와 기술자들을 끌고 갔다(왕하 24:14). 세 번째는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 때(B.C. 598-586년경)이다.

특히 시드기야 때 발생한 세 번째 바벨론 포로시 예루살렘 성은 완전히 파괴되고 성전 성물들은 모조리 약탈되는가 하면 왕족이나 귀족, 학자 등 식자층은 모두 포로로 끌려가고 예루살렘에는 미천한 신분만 남게 되어 공동화 현상이 생겼다(왕하 24:10-16; 렘 25:9-11).

물론 이후 예루살렘에는 암몬 등 주변 족속들이 들어와 기거하게 된다. 이런 망국적 상황에서 유다의 신앙 전통은 상당히 약화되었다.

한편, 남유다 왕국멸망 이전에 북이스라엘은 이미 B.C. 722년경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당해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앗수르의 인종 혼합 정책에 의해 수도 사마리아는 앗수르에 의해 추방된 이민족들이 몰려들어 남아 있던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살았다(왕하 17:24). 이로 인해 사마리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민족의 순수성을 상실하고 훗날 신약 시대에 와서도 동족들로부터 이방 민족처럼 배척당했다.

유다 백성이 이렇게 나라를 잃고 유랑 생활을 하던 당시 포로지에서 하나님말씀을 선포하며 위로하고 소망의 빛을 비추어 준 선지자는 에스겔과 다니엘이다. 이에 비해, 예레미야 선지자는 예루살렘 멸망 당시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였다. 아무튼 70여 년에 걸친 포로 생활은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고레스가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모든 포로들의 본토 귀환령을 내리면서 마감되었다.

먼저 스룹바벨에 의한 1차 포로 귀환(B.C. 537년)이 이루어졌으며, 성전이 재건된 것도 이때였다. 이 당시 활동한 선지자가 학개와 스가랴다. 이어 학사 에스라가 주도하는 2차 포로 귀환(B.C. 458년)이 있었는데, 이때 율법에 따라 유일신 신앙을 확립하는 신앙 부흥 운동이 전개되었다. 마지막으로 느헤미야가 인솔하는 3차 포로 귀환(B.C. 444년)이 있었고 파괴된 예루살렘 성곽 재건이 있었다. 하지만 바벨론 제국에 머물러 있던 유다 백성도 많이 있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유대주의가 국제화되는 계기가 되었다. → ‘바벨론 포로에서의 귀환’을 보라.